걸어 다니는 거울 / 김 황 태
거울은 볼 수 없는 나를 보여 준다. 나를 보여 주면서 자신의 뒤는 보여 주지 않는다. 웃으면 웃고 울면 울고 따라 쟁이이다.. 미워도 좋아도 보기 싫어도 짜증을 내고 화를 내도 있는 그대로 투영한다. 사실과 진실만을 보여주고 거짓이 없다.
노인은 큰일이 났다고 울먹이신다. 손목시계가 없어졌다는 것이다. 누가 와서 훔쳐갔다고 하시다가 약을 넣으라고 누구에게 주었다며 횡설수설하신다. 잘 찾아보라는 말에 아무리 찾아도 없단다. 손목시계에 전화를 걸어 달라 신다..
그 시계는 금시계로 막내딸이 해준 것이라 애지중지하신다. 고장 난 시계를 고쳐드린다고 해도 절대 주지를 않는다. 어디에 숨겨 놓고 없어졌다고 난리를 치시는 것이다. 수시로 있는 일이라 그러려니 하면서도 먹먹하기만 하다. 듣기 좋은 꽃노래도 한두 번이지. 짜증이 나다가도 미래의 내 모습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흠칫한다.
초등학교 선생이 자기가 가리키는 아이와 성행위를 하였다는 보도에 혀를 찼다. 유명인사가 성추행, 성폭행에 연루되어 사회적으로 매장되는 경우를 자주 대한다. 도대체 성이 무엇이기에 신세를 망치고 패가망신하면서 이러는지.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다가도 나도 그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얼굴이 화끈거린다.
마광수 교수가 목을 매 자살을 하였다. 본성(本性)을 묘사했는데 왜 외설이냐를 항변했던 그였다. 법은 그를 심판하였고, 결국 감옥살이를 해야 했었다. 교수사회와 문학계에서 따돌림을 당하고 심한 우울증을 겪었다고 한다.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예수의 말씀처럼 그에게 과연 돌을 던질 사람이 있을지.
인간 모두는 악과 음흉함이 내재하여 있지 싶다. 천진난만한 어린아이를 보면 성선설을 믿고 싶지만 흉악한 범죄를 보면 성악설을 믿고 싶다. 본래는 착했는데 살아가면서 악해지는 것이지 싶다가도 내 마음속에도 악이 존재함을 느낀다. 본래 인간은 악한데 다만 이성이 존재하여 자제되는 것이 아닐까. 나는 아니라고 할지 몰라도 나도 그럴 수 있음이다.
내가 나를 모르고 보지 못하는 것이 내 뒷모습이다. 보이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고 보이지 않는 것도 나인데 나를 망각할 때 가 있다. 세상만사가 남의 일이 아니고 다 내 일이다. 앞에 걸어가는 사람의 뒷모습이 나의 모습이요. 뒤에 오는 사람은 지나온 나이다. 마주치는 사람은 모두 나의 앞모습이다. 찔뚝거리며 걷는 이가 나일 수 있고, 구부러진 허리 세 발로 걷는 이가 나의 내일일 수 있다.
내려올 때를 알고 떠날 때를 아는 사람은 뒷모습이 아름다운 사람이다. 박수받을 때 무대에서 내려와야 한다. 남의 눈에 내가 있다. 남 속에 내가 있음이다. 나는 어떤 사람인가. 내 모습은 어떠한가.
나를 보려 해도 볼 수가 없다. 나를 보아 주는 사람은 내가 아니라 남이려니. 그 남이 바로 나이다. 내 뒤에 오는 사람도 내 앞에 가는 사람 다 나의 거울이요. 그들을 통해서 나를 본다. 걸어 다니는 저들이 나의 과거요 현재요 미래이며 걸어 다니는 거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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