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비린比鄰구멍. 민달팽이 / 허 숙 영

추천우수 수필

by 장대명화 2022. 3. 25. 02:18

본문

                                                      비린比鄰구멍 / 허 숙 영

 

  도시의 뒷골목을 걷는다. 누군가 마주치면 몸을 옆으로 돌려 게처럼 걸어야 할 것 같은 이 길이 낯설지 않다. 비 오는 날이면 우산을 접든지 높이를 달리해야 비켜갈 수 있다. 퀴퀴한 하수구 냄새 진동하는 골목에는 허드렛물이 홈통을 타고 길바닥으로 쏟아지는 일도 예사다.

 조무래기들이 흘린 '자유시간'이란 과자 봉지는 뜯겨 자유는 하수구를 따라 흘러가 버리고 시간이란 글자만 뎅그러니 맨홀 뚜껑에 걸려 있다. 이 골목에 세 들어 사는 사람을 대변하고 있는 듯하다. 돈에서 자유롭지 못한 이들에게 남아도는 것은 시간일 테니까.

 하루 종일 해도 들지 않고 낮고 음습한 지대, 부엌 하나 방 하나가 대부분인 이곳에는 질병에 익숙해진 노인들이 참으며 살아간다. 대로에서 밀려난 사람들이 살고 있으니 아이들도 학원에 가지 않고 딱지치기나 술래잡기를 하고 논다. 이곳 사람들은 폐지 하나 허투루 버리지 않는다. 오히려 주워 모으는 버릇이 있다. 버린 신문지나 철 지난 광고지를 가져다 벽을 도배하고 종이박스와 플라스틱 조각들은 동네의 한 중앙, 배꼽 같은 우물 곁에 첩첩이 쌓아두고 있다.

 뙤창을 열면 숨소리마저 닿을 듯한 거리이건만 문이 열린 집은 없다. 누구도 탐낼 만한 물건을 가졌을 것 같지는 않은데 시멘트 담장 위로 깨진 유리조각들을 촘촘히 박아 접근조차 못하게 으름장을 보내고 있다. 가슴에 금가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골목을 걷고 있으니 스무 살 언저리의 내가 말을 걸어온다. 생각하는 것만큼 삭막한 풍경은 아니라고. 벽돌 한 장만큼의 비린구멍은 얼마든지 있을 거라며 다독인다.

 사십여 년 전 살림집들의 풍경이 대부분 이랬다. 주인은 안방 하나만 남기고 방 한 칸만 있어도 처마 밑에 부엌 한 칸 덧대어 세를 놓았다. 그 속에 우리의 자취방도 있었다.

 두어 사람이 누울 만한 공간과 슬레이트 한 장 처마에 덧붙인 것이 전부였다. 부엌이라 이름 붙였지만 대낮에도 알전구를 켜야만 하는 시커먼 연탄아궁이가 이웃집 부엌과 맞닿아 있었다. 그 사이에 가로 막고 있는 벽은 얇았지만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성역이었다. 한 발짝 내디디면 닿을 수 있는 이웃이었는데도 출입문이 반대 방향이어서 한참 돌아가야 했다. 음식 냄새가 먼저 건너오고 나면 소리로써 그 집의 동태를 짐작할 뿐이었다. 하지만 앞날을 장담할 수 없었던 고단한 자취생들은 남에게 관심을 가질 여유가 없었다. 담을 넘어 심심찮은 신음이 들려올 때까지만 해도 그랬다.

 "살려주세요." 끊어질 듯 이어지는 숨넘어가는 소리의 향방을 찾아 귀를 기울이고 상황을 알기 위해 급한 대로 밥상으로 디딤돌을 만들었다. 한쪽 발을 올리려는데 "저기 봐"라는 친구의 외침이 들렸다. 연탄 창고 한쪽 옆으로 벽돌 한 장이 빠져나간 듯한 틈을 발견한 것이다. 그곳에 실눈을 갖다 대던 친구의 얼굴이 굳어갔다. 우리는 컴컴한 부엌 바닥에 엎어져 있는 여자를 구하기 위해 칼날 같은 바람을 뚫고 내달렸다. 연탄가스 중독이었다. 부엌묵을 열어젖히고 찬장을 뒤져 김칫국물을 떠 넣으며 난리법석을 피우자 그녀는 부스스 눈을 떴다. 우리 또래였던 그녀는 야간 일을 마치고 까무룩 잠이 들었다가 목마름을 느끼며 몸을 일으키려는 찰나 쓰러졌다고 했다. 가까스로 부엌까지는 기어 나왔지만 다시 엎어지고 만 것이었다.

 그 후로 구멍은 우리를 이어주는 연결고리가 되었다. 전화가 없던 시절, "언니"라고 외치는 소리 들리면 부침개 두어 장이 접시에 담겨 건너왔다. 빈 접시를 돌려보내지 못해 사과 몇 알이 붉어진 얼굴을 디밀었고 "놀러와""놀러 와"라는 말이 수시로 넘나들었다. 나는 그 구멍을 비린구멍이라 여긴다.

옛 흙담은 기왓장을 얹는 것으로 마무리가 되는데 수키와 암키와를 맞붙이면 손이 들락거릴 만큼의 구멍이 만들어진다. 그곳을 통해 별식이 오가고 편지도 드나들었다. 이웃 간 정이 넘나들기를 바라는 통로로 만들어진 그것을 비린구멍이라 불렀다.

 마음에 담을 쌓고 살던 우리에게는 소통의 창이었다. 꽉 막힌 현실을 탈출하게 하는 비상구였다. 내일을 즐겁게 여는 공간이었다. 내 젊은 날의 외로움과 고단함을 풀어주는 해결사였다. 객지에서 피붙이처럼 안부를 물어주고 걱정해 주는 것만큼 큰 힘이 되는 것도 없다. 시멘트 얇은 틈바구니가 생명을 키우듯 그것은 푸근한 인간미를 느낄 수 있는 틈이었고 여유였다.

 벽돌을 한 장 들어내어 비린구멍을 낸 사람도 사람이 그리웠을까. 무심코 지나치면 모를 듯한 심장 높이에다 틈을 만든 것은 어떤 의미였을까. 희망이라곤 보이지 않던 컴컴한 부엌에서 관심 가지고 바라보면 찾을 수 있는 행운의 부적 같은 것이었다고 믿는다. 볕뉘 한 줄금 들어와 쉬었다 가듯 우리에게는 서로가 빛으로 다가선 것이다.

 자신을 통때로 내어주지 않아도 좋다. 햇살 잠시 머물 수 있는 만큼의 틈이라면 족하다. 조금만 곁을 내어 준다면 따습고 다정한 이웃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바람 한 점 드나들 수 없도록 두터운 마음의 벽을 허물지 못하는 견고한 아파트에 살고 있다. 소통의 마지막 보루인 대문마저 철커덕 닫고 돌아서면 정신이 아득해진다.

 정을 담뿍 담아 들이밀던 소박한 접시가 그립다.

 *비린比鄰ㅡ 처마를 잇대고 있는 이웃

 *볕뉘

1.작은 틈을 통하여 잠깐 비치는 햇볕

2.그늘진 곳에 미치는 조그마한 햇볕의 기운

3.다른 사람으로부터 받는 보살핌이나 보호

                                                           

                                                                  민달팽이 / 허숙영

 

소나무 밑둥치에서 민달팽이 한 마리 기어오르고 있다. 거칠고 골이 깊은 나뭇결위에서 천천히 배밀이를 하며 허공에 촉수를 뻗는다. 까슬하게 날을 세우는 소나무 갈기에 민달팽이의 여린 몸이 상처라도 입지 않을까 염려스럽다. 하필이면 왜 소나무 둥치를 택했을까. 몸매 매끈한 은사시나무나 단풍이 아름다운 옻나무도 옆에 있다. 봄이 되면 맨 먼저 꽃망울 터뜨릴 산벚나무도 지나치고 민달팽이는 멀고도 험한 길을 가려하고 있다.

 

부지런히 쉼 없이 오르고 오르면 애초에 갖지 못한 집이라도 있는 것일까. 높은 자리에서 세상을 바라보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방향을 잘못 잡은 것 일수도 있다.

 

방관자일 뿐이지만 나는 한참 바라보다 다시 발걸음을 내딛는다. 환영처럼 끈적끈적 달라붙는 민달팽이위로 요양병원에 누워있는 숙모가 겹쳐진다. 어머니같이 여기리라 하면서도 자주 찾아가지도 못하고 내 머릿속에서 떨쳐버릴 수도 없는 사람이다. 집 한 채 갖지 못하고 연체동물처럼 허물어져 누워있는 숙모를 생각하면 목에 가시가 걸린 것처럼 따끔거린다.

 

얼마 전 찾아갔을 때 기능을 잃어버린 다리를 손으로 끌어다 놓으며 “내 신세가 왜 이렇게 됐을까.” 라며 옷자락으로 눈물을 훔쳤다. 숙모의 하얗고 성근 머리카락의 밑뿌리가 서러워 고개를 돌려 버렸다.

 

열여덟 푸른 나이로 새색시가 될 때만 해도 햇살 가득한 날만 기대하고 있었으리라. 신혼의 단꿈에서 깨기도 전에 전쟁이 터졌고 삼촌은 나라 지키는 일에 앞장서야 한다며 자원입대를 해 버렸다. 그때 바짓가랑이라도 붙잡고 놓아주지 않았다면 상황은 달라졌을까. 주검으로 돌아 왔을 때라도 새 길을 찾아 나섰더라면 평범한 행복을 누리며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 먼저 가버린 남편에 대한 분노에 오기를 부리지 않았더라면 훨훨 하늘을 비상하고 있지나 않을까.

 

숙모는 스스로 자웅동체 민달팽이가 되기로 했다. 남편의 빈자리에 업둥이를 들여 채웠다. 아버지 노릇이라고 못할 게 없을 듯했다. 행여 아이 귀에 업둥이라는 삿된 소문이라도 들어가면 큰일이었다. 시댁에서 남편의 알량한 보상금마저 나누자고 하지는 않을까하여 아이를 품에 안고 낯설고 물선 도시로 미련 없이 떠났다. 그러나 자굴산 그늘을 벗어난 숙모가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었다.

 

질척이는 시장바닥에 쪼그려 앉아 좌판을 벌리고 고사리나 도라지를 팔아 생계를 꾸렸다. 습곡을 택해 억척스레 살았지만 누구를 밟고 올라선다거나 위를 쳐다본 적은 없었다. 눅눅한 밑바닥이 자신이 있을 자리임을 안 까닭이었다. 처음부터 물려받은 집한 채 없었으니 무릎 한번 쭉 펴고 일어서는 일도 쉬운 게 아니었다. 삶의 행간마다 소나무껍질처럼 울툭불툭 거칠고 골까지 패였지만 괘념치 않았다. 한발자국씩 옮기다 보면 소원하는 곳에 가 닿으리라 여겼다.

 

심연의 밑바닥은 오히려 조용하다했던가. 지쳐 쓰러져 잠드는 시간이 쌓이면서 들볶이던 가슴도 조금씩 누그러졌다.

 

업둥이로 얻은 내 사촌은 키워주는 것에 보답이라도 하듯 동그라미로 꽉 찬 시험지를 무시로 내밀어 주었다. 비위도 잘 맞추어 숙모의 마음을 흔흔케 했다. 신도 부러워한다는 직장도 가졌다. 결혼을 하고 떡두꺼비 같은 손자까지 안겨 잠시나마 심장이 뜨겁게도 만들어 주었다. 그렇게 그 녀석으로 인해 밑바닥을 탈출하여 숨을 쉴 수 있는 지상으로 올라오는 듯했다. 그러나 민달팽이는 하늘을 날 수 없다는 사실을 숙모는 잠시 잊고 의기양양했는지 모른다.

 

아들 녀석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호적등본을 발급받으러 간 고향에서 자신이 업둥이라는 사실을 알아버린 날 그의 머릿속에는 회오리가 일었다. 걷잡을 수 없는 바람은 태풍이 되어 집안을 휩쓸어 버렸다.

 

태풍은 가까스로 바닥을 벗어난 민달팽이를 후려쳤다. 방탕한 생활에 가산 탕진은 물론이고 가족도 해체시켜 버렸다. 쌓아올리기는 어려워도 허무는 것은 한 순간이었다. 주변사람들에게조차 돈을 빌려 써 형편을 어렵게 만들었다. 숙모의 발바닥이 칼날에 베인 상처에 과산화수소를 들이붓듯 화끈거리는 증상이 생긴 것도 그때쯤이었다. 하지만 그런 것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몸도 마음도 만신창이가 된 숙모는 남루를 숨길 곳으로 나의 큰언니 곁을 택했다. 아들을 피해 숨어들다시피 이사를 왔다. 어떻게 사는 길이 잘사는 길인지 의문부호 하나 남겨놓고 방향을 튼 것이다. 이제는 더 이상 험준한 길을 올라가야할 이유도 없어졌고 그만한 힘도 없었다. 아무런 간섭도 없는 곳에서 이태를 지내면서 한 숨 돌리는가 싶더니 덜커덕 병이 나버렸다.

 

누구나 앞날을 예측하기는 어렵다. 꿈꾸는 세상을 향해 힘겹게 나무 위를 기어오르고 있는 민달팽이 같이 미욱한 존재일 뿐이다.

 

나는 민달팽이의 소식이 궁금해 올랐던 길로 되돌아 내려온다. 진척 없을 것 같은 느린 배밀이로 어느새 내 키를 훌쩍 넘는 높이까지 올라가 있다. 민달팽이도 그 곳에서는 편히 쉴 수 없다는 걸 안다. 흙과 가까운 낙엽 밑이거나 뿌리근처라야 안전하게 겨울을 나리라. 안타까워하는 마음을 알았는지 달팽이가 몸을 돌린다. 물음표가 만들어진다. 세상을 향해 물음표하나 던져놓고 다시 내려 오려한다.

 

방향을 잡으려 고개를 쳐들고 아래를 내려다보나 쉽지 않은 모양이다. 거친 나무껍질을 움켜잡았지만 머리를 둘 곳이 마땅하지 않은지 허공에서 두리번댄다. 순리를 거슬러 온몸의 진액을 짜 끈끈한 흔적을 남기며 올라왔던 길을 되돌아보니 곁에는 아무도 없고 흙으로 돌아갈 일이 꿈만 같다.

 

숙모의 여든 다섯 굽이 등이 눈앞에서 출렁거린다.*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