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날 줄 모르는 여인 / 윤 모 춘
동네 밖을 한참 벗어난 산 밑에 물레방앗간이 있고, 겨울이면 그곳이 곧잘 걸인들에게 숙소가 됐다. 여남은 살 때의 고향 얘기지만, 그 물레방앗간에 장발(長髮)을 하고, 누더기 위에 마대를 망토처럼 걸친 중년 걸인이 있었다. 무엇인가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혼자서 숙설거리며 다녀, 사람들은 그를 숙설거지라고 불렀다. 하지만 정작 밥을 얻으러 와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대문간에 우두커니 서 있을 뿐이었다. 정신 이상의 이 걸인 모습은, 지난날 한때의 나의 모습 바로 그것이었다.
1950년 12월 말, 민족상잔의 비극이 다시 고조되고 있을 때이다. 서울의 청장년들은 중공군 침입으로 재현될 적치(赤治)를 벗어나기 위해 ‘국민방위군’이란 이름으로 마산까지 전략적 남행을 해야 했다. 서울의 외곽을 벗어나 망우리 고개를 넘어서자, 북한강 기슭 밤길에는 칼날 바람에 눈보라마저 거세었다. 만성적으로 병약했던 나는 처절한 상황의 운명을 향방 없는 발길에 맡겼을 뿐이었다. 소금물에 뭉친 하루 두 덩이의 밥이 생존을 건 전부였고, 이것이 장장 20여 일의 도보 행군을 버티게 한 유일한 보급품이었다. 지금은 역사의 갈피 속에 잊혀진 지 오래되나, 이 대열이 희대(希代)의 독직사건(瀆職事件)-수십만 장정을 굶어 죽게 하고 폐인을 만들었던 국민방위군 대열이다.
호남지방으로 내려간 난민들은 인심이 후했다는 후일담이 있다. 그러나 타들어 가는 물꼬에 모여든 올챙이처럼, 함빡 쓸어다 풀어놓은 판이어서, 어느 고장의 인심인들 별도리가 있을 수는 없는 일이었다. 마산으로 삼천포로 종착점도 없이 끌려다니던 기아(飢餓) 부대는, 급기야 무장지졸(無將之卒)이 되었고, 하루아침에 걸인부대로 전락하였다. 장정들은 걸식에 이골이 나기 시작했으나, 나에겐 감당하기 어려운 일 중에서도 당해 내기 어려운 일이었다. 인정(人情)의 대명사격으로 열려있던 사립문들도, 집집마다 잠긴 지가 오래였다. 지금도 기이하게 여기는 것은, 그런 상황에서 어떻게 내가 우물가의 젊은 아낙의 뒤를 따랐는지 모를 일이다. 아낙들의 냉랭한 눈총을 받아야 했던 때에, 앞장을 서며 따라오라는 여인의 뒤를 따라 사립문을 들어섰을 때, 방 안에선 아침상 수저 소리가 평화로웠다. 여인은 더운 국밥을 말아 주면서, 추위에 상한 나를 부엌 안으로 들여세웠다.
“퍼뜩 자시이소, 시부모가 아시믄 안 됩니더.”
여인의 말에 급히 퍼 넣으려 했으니 목에 걸려 넘어가질 않았다. 목을 메게 한 것은 국밥이 아니라, 어느새 여인이 어머니상으로 바뀌어진 까닭이었다.
“날마다 장정들 사정을 딱하게 여기다봉이, 내 먹을 게 없능기라요.”
목이 멘 나는 대꾸할 말을 찾지 못하였다. 어머니처럼 어루만져 주는 여인, 그에게 나는 누구였을까. 전쟁 마당에서 뼈와 가죽만이 남아 돌아온 남편이었을까. 모성애로 감싸야 했던 아들이었을까.
‘숙설거지’ 모양의 말없는 나에게, 숨어서 자기 몫을 내주던 여인- 환영(幻影)조차 그릴 수가 없는 고령(高靈) 땅의 그때 그 여인은, 지금도 내 곁에서 떠날 줄을 모른다.
(19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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