엿장수 우리 할아버지 / 김 용 택
할아버지께서 엿장수를 하실 때였다. 어느 날 엿판을 메고 어느 마을을 지나는데 느닷없이 소낙비가 쏟아져 할아버지는 비를 피하고 강을 건너 다른 마을로 가게 되었다. 강물 앞에 이르니 강물이 금세 불어나 붉덩물이 흐르더란다.
할아버지는 아랫도리 옷을 홀딱 다 벗어 엿판 위에 얹고 조심조심 강을 건너기 시작했다. 조심조심 발로 강바닥을 더듬으며 차츰차츰 강 가운데로 들어갔다. 깊은 데가 있겠지, 깊은 데가 있겠지… 하며 말이다.
그런데 강 가운데를 지나 강물을 다 건너도록 물 깊이가 무릎을 넘지 않아, 그냥 벌거벗은 아랫도리를 홀라당 드러낸 채 물을 다 건넜다는 것이다. 강 건너에서 그 모습을 보던 사람들이 얼마나 웃었겠는지 지금 생각해봐도 절로 웃음이 나온다.
할아버지는 그렇게 엿판을 메고 노래를 멋들어지게 부르시며 이 강산을 떠도셨다. 나중에는 나무를 켜서 판자를 만들어 파시기도 했으며 한봉을 많이 키우기도 하셨지만 가난에서 벗어나지는 못했다.
할아버지의 얼굴을 나는 기억하지 못한다. 약간 얽은 얼굴이셨으며 지독하게 노래를 좋아하셨고 놀기를 좋아하셨다고 한다. 마음이 너그러우셔서 며느리들이 그릇을 깨거나 실수를 해도 나무라는 말씀을 하신 적이 없으셨다.
할아버지는 5남3녀를 두셨고, 우리 아버님이 넷째였다. 할아버지는 6.25 전쟁 때 군인들이 마을을 소각시킨 후 순창으로 피난을 시키는 과정에서 군인의 총에 맞아 돌아가셨다. 한번도 가난에서 벗어나신 적이 없는 할아버지, 엿판을 짊어지고 가윗소리에 맞추어 노래를 부르며 진달래 핀 산길을 돌아오시곤 하셨다는 할아버지, 때론 엿판 위에 진달래꽃을 꺾어 짊어지고 돌아오실 때도 있었다는데, 그럴 땐 꼭 술이 얼근하신 채, 희야다지게 육자배기를 부르며 동네에 들어서시곤 했단다.
아, 노랫소리가 멋지셨다는 우리 할아버지, 그 할아버지 얼굴을 나는 기억하지 못한다.
노래로 남은 시인 / 반 숙 자 (0) | 2021.09.20 |
---|---|
청마의 우체국 연인 / 구 활 (0) | 2021.09.16 |
나와 구두의 관계 / 안도현 (0) | 2021.09.07 |
가을 바람소리 / 김 훈 (0) | 2021.09.07 |
비설거지 / 송 귀 연(2017 전북도민일보 신춘문예당선작) (0) | 2021.09.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