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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6년 토지문학상 수필 대상작 “울지 않는 반딧불이"외1편 / 박일천

추천우수 수필

by 장대명화 2021. 7. 14. 1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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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16년 토지문학상 수필 대상작 울지 않는 반딧불이/내 마음의 뒤란 / 박일천

 

 시골집 대문 안에 들어서자 텃밭에서 푸성귀를 솎아내던 시어머니께서 흙 묻은 손을 털고 일어서며 환한 얼굴로 우리를 맞이하신다. 가끔 다녀가는 자식들이 적적함을 밀어내는 말동무이리라. 이것저것 물어보며 세상 밖 이야기에 귀 기울이신다. 밭에서 솎은 어린 배추로 얼갈이김치를 담고 챙겨간 찬거리로 저녁밥을 지어 먹었다. 귀뚜라미 소리에 이끌려 그이와 함께 개울가로 나갔다.

 

 동구 밖을 지나 갈대가 사운거리는 둑길을 따라 걸었다. 동산 너머로 열나흘 달이 얼굴을 내밀었다. 벼들이 그득 찬 들녘은 달빛에 젖어 희붐하다. 내 키보다 큰 갈대들은 냇둑 위에 그림자를 길게 늘이고 있다. 갈대밭 언저리로 작은 불빛 하나가 깜박거리다 사라진다. 잘못 보았을까. 내 눈을 의심하기도 전에 또 다른 등불이 환하게 내 곁으로 다가온다. ‘와아, 반딧불이다.’ 파리한 불빛이 보일 듯 말 듯 여기저기 떠다닌다. 손으로 잡으려 발돋움해도 어느새 저만치 날아간다.

 

 내 초록의 날에 잡으려면 날아가는 꿈처럼 반딧불이는 자꾸만 멀어져 갔다. 밤하늘에 등불을 켜고 날기 위하여, 반딧불이는 물속이나 땅 밑에서 일 년 가까이 애벌레로 살아간다. 대학교를 졸업하고 반딧불이 애벌레처럼 움츠리며 지낸 적이 있다. 취직이 되지 않아 넓은 세상으로 나가는 꿈은 구겨진 일기장에서 졸고 있었다. 갈 곳이 없어 저녁나절에나 문틈으로 햇살 한 자락 들이밀던 단칸방에서 시간에 거미줄을 치고 있었다. 빛의 건너편에서 누런 벽지에 그려진 문살 그림자를 세며 하루를 건너갔다. 피 끓는 젊음이 매일 일 없이 지낸다는 것은 견디기 어려운 고행이었다. 그보다 나를 더 힘들게 하는 건 부엌에서 밥을 지으시며

 

 “저 하나 보고 애면글면 갈쳤구만. 허구 헌 날 방구석 신세라니…….”

 

 방문 틈으로 들려오는 어머니의 한숨 소리였다. 어렵사리 가르친 딸이 밥벌이도 못 하고 빈둥거릴 때 당신 속은 새까맣게 숯덩이가 되었으리라.

 

 날마다 놀기도 민망하여 용돈이라도 벌려고 수예점 문을 두드려 수틀 속에 명주실로 동양자수를 놓아 갖다 주면, 손에 들어오는 것은 라면값 정도였다. 보기에 딱했던지 이웃집 아저씨가 일자리를 소개해 줘서 시오리를 걸어서 작은 사무실을 찾아갔다. 사장이라고 한 사람 덩그러니 앉아 있었다. 사정이 좋지 않으니 다음에 연락하겠다는 말을 듣고 나오는 내 등 뒤엔 서글픔이 매달렸다. 하릴없이 골목을 왔다 갔다 하는 내가 안쓰러웠는지, 동네 아줌마들이 아이들을 하나둘 보내줘 과외를 하며 백수 시절을 견뎌냈다.

 

 요즈음 청년들도 일자리가 없어 아르바이트하고 도서관에서 밤낮없이 취업 준비하느라, 가로등 불빛을 세며 그림자처럼 살아간다고 한다. 얼마 전 지인 아들도 몇 년째 임용고시에 도전했는데, 또 떨어졌다는 말을 전하며 그녀는 눈시울이 붉어졌다. 낙담하는 그 모습에 오래전 방구석에서 뒤척이던 내가 떠올라 콧날이 시큰거렸다. 푸릇한 날에 햇빛 속에서 엽록소를 생성하지 못하고, 응달에서 누렇게 시들어가는 나뭇잎처럼. 청춘의 뒤안길에서 눅눅한 어둠 속을 느릿느릿 기어가는 나는 한 마리 애벌레에 불과했다.

 

 검은 밤의 한가운데를 삼 년을 서성거리다가 드디어 조각방에서 벗어났다. 기다리던 발령을 받고 교단에 서게 되었다. 쉬는 시간이 아까울 정도로 열정을 다해 가르쳤다. 집에 가면 소꼴을 베느라 숙제할 시간이 없는 아이들이 교실에 남으면 같이 공부했다. 산 그림자가 유리창에 살금살금 걸어올 때까지 산골 아이들과 환경도 꾸미고 풍금 치며 노래도 불렀다. 간간이 간식거리를 챙겨주면 쑥스러워 머리를 긁적이던 순박한 산골 애들은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아마도 세상의 그늘에서 애벌레처럼 웅크리지 않았다면, 아이들을 향한 그 많은 정이 샘처럼 솟아 나오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반딧불이가 하늘에 오르는 날을 기다리며 암흑 속에서 등불을 준비하듯이. 오랜 기다림은 내 가슴에 끝없는 도전과 열정을 심어 주었다. 시간의 나이테가 켜켜이 쌓여가도 무언가 끊임없이 배우고 새로움을 찾아 떠난다. 덧없이 흘러간 초록의 날을 되찾아 오려는 듯이.

 

 개울가로 불빛 하나 호로록 날아간다. 갈대밭 곳곳에 파리한 불빛이 도깨비불처럼 나타났다가 가뭇없이 사라진다. 반딧불이가 등불을 어디에 매달고 다닐까. 어릴 적 호기심이 발동하여 허공에 팔을 휘저었다. ‘나 잡아 봐라.’ 약을 올리듯 불빛은 멀어져갔다. 가까스로 한 마리를 손안에 넣었다. 반딧불이를 조심스레 땅 위에 내려놓고 스마트폰 불빛에 비쳐 보았다. 죽은 척하고 검은색 벌레는 가만히 있었다. 뒤집어서 불빛이 어디서 나오는지 살펴보았다. 머리에서 빛이 나오리라 생각했는데 검붉은 배아래 쪽에 담황색 야광등을 달고 있다. 몸길이는 새끼손가락 한마디쯤 될까. 그 작은 몸에 발광체를 달고 날아올라 밤하늘에 빛을 뿌리다니 경이로웠다. 반딧불이를 살며시 집어 날려 보냈다. 푸르스름한 빛을 깜박이며 날아가다 고맙다는 듯, 급히 선회하여 머리 위에서 빙빙 돌다 사라졌다.

 

 슬픈 발광發光이다. 반딧불이는 오랫동안 암흑 속에 머물다가 우화하여 불을 밝히고 날지만, 열흘 뒤면 풀숲 어딘가에 쓰러져 생의 종말을 맞으리라. 반딧불이는 다른 풀벌레처럼 울지 않는다. 울음이 아니라 등불을 켜기 위하여 이슬만 먹고 몸을 가볍게 한다. 자신을 비워 어둠을 뚫고 하늘을 비행한다. 풀벌레들이 지상에서 시끄럽게 울 때 그는 조용히 세상을 빛으로 밝힌다. 아무도 흉내 낼 수 없는 반딧불이의 초월적 힘이다.

 

 흙탕물이 굽이치는 동안 말갛게 가라앉듯이, 이끼 낀 마음도 흐르는 세월에 닦여져 반딧불이가 먹는 이슬처럼 투명해질 수는 없을까. 비워진 가슴에 맑은 샘물이 고이면 사람들에게 좀 더 따뜻하게 다가갈 수 있으리. 반딧불이가 여느 풀벌레처럼 울지 않고 생의 마지막을 빛으로 밝히듯이, 내 삶의 끝자락도 환하게 사랑의 등불을 켜다가 스러졌으면.

 

 반딧불이가 너울너울 포물선을 그리며 허공을 떠간다. 빛의 경계 너머에서 움츠리던 내 젊은 날의 꿈이, 깊어가는 내생의 가을에 별이 되어 날아간다.

 

                                                 내 맘의 뒤란 / 박 일 천

 

  어렸을 적 어머니는 나를 데리고 외갓집에 자주 갔다. 철길 아래 굴이 있고 그 굴다리 밑을 지나야 외갓집에 갈 수 있었다. 굴다리를 지날 때마다 천장에 맺힌 물이 머리 위로 떨어졌다. 그 옛날 이리역 철길 아래 뚫린 그 굴은 비가 오지 않아도 곳곳에 물이 고여 있었다. 돌아가면 먼 길이라 질척거리는 바닥을 더듬거리며 어머니는 내 손을 잡고 깜깜한 굴다리를 건너가셨다.

굴다리를 건널 때마다 축축하고 우중충한 그곳이 싫어 얼른 빠져나가려고 발걸음을 재촉했다. 하지만 희미한 조명 아래 축축한 물웅덩이를 피해 가려면 조심조심 걸어갈 수밖에. 어둑한 굴다리를 벗어나면 따가운 햇볕이 머리 위로 쏟아졌다. 먼지가 풀풀 날리는 신작로를 한참 걸어가야 묵동 외갓집 동네에 다다랐다. 땀에 젖어 고샅길로 들어서면 버드나무가 그늘을 드리우고 우리를 맞았다. 버들가지 아래 우물에서 어머니는 두레박을 던져 샘물을 떴다. 뙤약볕에 목마른 나는 벌컥벌컥 물을 들이켜고 어머니는 얼굴을 씻고 머리카락을 쓸어 올리셨다. 물 한 모금에 파릇해져 외갓집 사립문 안으로 들어서면 쓰르라미 소리가 포플러 이파리를 흔들었다.

마당엔 한낮의 태양이 주인인 양 누워 있고 집안엔 인기척이 없었다. 엄마는 외할머니를 찾아 뒤란으로 갔다. 나는 툇마루에서 앉아 허공을 빙빙 도는 쌀 잠자리를 따라 하늘바라기를 하면. 마당을 스치는 ‘쓰윽 쓱’ 소리와 함께 기다란 단수수를 끌고 외할머니가 나타나셨다. 토방 앞에 단수수를 내려놓고 낫으로 토막을 내서 할머니는 “옜다. 먹어라.” 하며 건네주었다. 무뚝뚝한 할머니가 손녀딸에게 주는 정표다. 껍질을 벗겨 한입 베어 물면 달착지근하고 시원한 맛이 입안에 사르르 녹았다. 그 시절 외할머니께서 챙겨 주던 단수수는 지금은 시골에서도 구경하기 힘든 그 옛날 간식거리다.

저녁이면 멍석을 깔고 둥근 상에 둘러앉아 밥을 먹었다. 눈썹이 유난히 까만 외삼촌은 밥상머리에서 나를 흘끔거리며 밥을 먹었다. 행여 내가 조기 꼬리라도 먹을라치면 눈꼬리를 치켜 올렸다. 외할아버지 제사를 지내러 여름방학 때마다 와서 밥을 먹어대는 조카딸이 얄미워서일까. 눈칫밥으로 먹는 밥상은 보리밥 한 수저에 설움 한 사발이었다. 누구나 배고픈 시절에 며칠씩 묵어가는 우리가 눈엣가시였을지도 모른다. 말없이 눈총을 주는 외삼촌이 무섭고 싫었다. 혹여 심부름이라도 시키려 나를 부르면 못 들은 척 슬금슬금 모퉁이를 돌아 뒤란으로 갔다. 그러면 부리나케 달려와 큰소리로 야단을 쳤다. 사람이나 짐승이나 자기를 귀히 여기는지 함부로 대하는지 금방 알아본다. 조금만 따뜻하게 대했으면 그토록 내가 기겁하고 달아나려 했을까. 어쩌다 외갓집이 떠오르면 여린 가슴을 슬프게 한 설움이 기억의 바닥에 숨어 있다가, 어느 순간 불쑥 솟구쳐 올라 목울대를 아릿하게 훑고 지나간다

외삼촌에게 야단맞고 뒤란에서 훌쩍거리면 갓 시집온 외숙모는 살며시 다가와 나를 다독여주었다. 그리고 언덕바지에 있는 텃밭으로 데리고 갔다. 그곳에는 청포도가 알알이 열리고, 꺽다리 단수수가 바람에 하늘거렸다. 아직 덜 익은 연두색 청포도를 한 송이 따주며 외숙모는 나를 달랬다. 어린 시절 구겨진 마음 자락을 어루만져준 외숙모의 다정한 손길은 추운 겨울 아랫목처럼 아늑했다.

종종 다녀가는 우리가 귀찮기도 하련만 외숙모는 언제나 우리를 반겼다. 외삼촌의 눈총에도 엄마 따라 외갓집에 가고 싶었던 것은 어쩌면 청포도와 단수수, 외숙모의 온화한 미소 때문인지도 모른다. 어느 겨울날 외숙모는 까만 벨벳 한복을 입고서 내 손을 잡고 교회로 갔다. 눈이 펄펄 내리는 언덕을 넘으면 흰 눈을 덮어쓴 첨탑이 뾰족한 교회당이 보였다. 그때 들은 ‘고요한 밤 거룩한 밤…’ 노래는 내 마음도 고요하고 평안하게 해주었다.

어느 해 가을 추수철에 어머니가 외갓집 동네 벼 훑기를 하느라 오래도록 묵어간 적이 있었다. 홀로 삶의 굴레를 이고 가는 어머니는 이것저것 일거리를 가리지 않고 하루하루를 건너가셨다. 철부지 나는 그 동네 애들과 마당에서 줄넘기하며 신나게 놀았다. 마실에서 돌아온 외할머니는 계집애들이 뛰고 시끄럽다며 바지랑대를 들고 애들을 쫓아냈다. 나는 숨을 죽이며 장독대에 숨어 할머니 역정이 가라앉기를 기다렸다. 그때도 외숙모는 살금살금 다가와 사그랑이 불에 묻어둔 군고구마를 내게 건넸다. 손끝에 전해지는 군고구마의 온기에 움츠러든 내 마음도 따뜻해졌다. 어스름을 안고 머릿수건을 털며 홀연히 장독대에 나타난 어머니는 “자네, 맘 씀씀이가 고맙네.”하며 외숙모 손을 덥석 잡았다. 우리가 외갓집을 떠날 때는 외숙모가 보리쌀과 고구마를 보따리에 싸서 엄마에게 건넸다. 그 시절 넉넉지 않은 형편에 우리를 챙기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 지금 생각해 봐도 가슴이 훈훈해진다.

집으로 돌아갈 때도 철길 아래 있는 굴다리를 걸어갔다. 눅눅하고 어두운 굴은 마치 어머니의 젊은 날, 지난한 생의 한복판을 건너가느라 휘청거리는 모습이 아닐까. 어두컴컴한 굴속 희미한 불빛 아래 발을 조금만 잘못 디디면 시궁창에 빠져 허우적거렸으련만. 어둠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게 손잡아 주던 당신은 멀리 떠났지만. 그 당찬 어머니가 계셨기에 깜깜한 터널을 지나서 햇빛 속으로 발걸음을 옮길 수 있었으리라.

몸이 약해서인지 외숙모는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혼자 남은 외삼촌은 술만 마시다가 쓸쓸히 생을 마감했다. 그들은 떠나가고 상처는 희미해져 가지만, 포근한 정을 준 외숙모는 내 가슴에 봄날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른다. 그 옛날 무심히 지나지 않고 가녀린 풀꽃 같은 동심을 감싸 안은 그네의 따사로운 눈길. 내 안에 화롯불이 되어 회색빛 잿더미 속에서도 꺼지지 않는 사랑의 불씨로 남아 있다.

초록이 사위어 단풍으로 물들어가는 언덕에서, 누군가의 가슴에 나는 무엇으로 남을 것인지 생각해 본다. 시골집 뒤란에 청포도 올리고 채소를 가꾸며 두릅나무로 울타리를 만들어 볼까. 바구니 가득 푸릇한 정을 수북수북 담아 정겨운 이들에게 건네고 싶다. 앞에서 보이지 않아도 사람들 마음을 따뜻하게 해주는 그런 보물이 그득한 뒤란을 가꾸어 보련다.

 

[박일천] 수필가, 시인, 전북문협 이사

* 2015년 에세이스트 수필, 2015년 지구문학 시 등단

* 『바다에 물든 태양』, 『달궁에 빠지다』,『경계 넘어 세상을 걷다』

* 토지문학제 대상(수필) , 해운문학상 본상(수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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