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 / 최 병 호
그 무렵, 나는 곧잘 어머니의 경대鏡臺 빼닫이(서랍)을 뒤졌다. 하루는 구리무(크림)통 뚜껑을 막 여는데 '억'하는 손길이 어깨를 감쌌다. 어머니였다. "사나이가 경대 앞에 오래 앉아 있으면 섹경(석경石鏡) 귀신이 나와서 잡아간단다." "응!?" 나는 화들짝 큰방으로 달아났다.
이내 장롱 빼닫이가 궁금했지만 손이 닿질 않았다. 문득, 쌀이나 보리 등의 곡식을 될 때 쓰는 말이 떠올려졌다. 찾아다 엎어놓고 보니 안성맞춤이었다. 맘대로 빼낸 빼닫이 속엔 뒤적거리고 꺄우뚱거릴 자질구레한 물건들이 많았다. 경대서랍 놀이는 뒷전이 되었다.
목소리가 우렁우렁해지고 빨간 뾰루지가 온 얼굴에 듬성듬성 치솟던 시절, 앞선 친구들이 걸핏하면 거울을 끌어당겼다. 거뭇하게 머리를 내민 익은 뾰루지들을 짜내버리기 위해서다. 나도 조만간에 저리되려니 하는 설렘이 있었지만 어찌된 일인지 감감소식이었다. 뜻밖에 어깨등치에서 동통 같은 기별이왔다. 손을 넘겨 만져보아도 아리송했다. 이를 확인한 친구 왈. "뾰루지도 너를 닮았구나. 겸손하게…." "뭐? 아니야, 뾰루지가 제 체면을 챙긴 게지. 내 얼굴 같은 박토에 머리를 내밀어보았자 '뻔할 뻔자' 아니겠냐. 소식이나 남기자고 살짝 어깨등치를 긁은 거지. 고맙지 뭐냐!" 결국, 나는 거울 앞에서 '청춘의 첫 표상'을 감촉하지 못한 얼뜨기가 되었다.
나는 여러모르 무취미한 편이다. 파적破寂거리가 마땅찮을밖에. 사뭇 궁금해지면 아무 책이나 잡히는 대로 뒤적뒤적하기 일쑤였다. 별 재미가 없고 어려워도 건성건성 글자만이라도 훑어보는 괴벽 같은 면이 있었다. 그런 읽기에서 우연히 나르키소스(나르시스) 신화를 접했다.
미소년 나르키소스가 샘물에 비친 제 얼굴에 혹해 샘 속으로 뛰어들어 수선화가 되었다는, 참으로 지순한 얘기였다.
샘물에 하늘이 내려앉으면 거울이 되는 것은 다 아는 일. 그 물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이 얼마나 아름다웠으면 생명을 무릅쓰고 뛰어들었을까? 어쩌면 그는, 그 모습이 자신의 것이 아니라 다른 어떤 대상으로 착각했던 게 아닐까? 아니면 물거울 귀신이 그 지순한 사랑이 안타까워 샘 속으로 불러들여 수선화로 환생시킨 것일까? 내가 만일 어머니의 경대 앞에서 구리무를 바르고 그 아름다움에 취해서 죽치고 앉아 있었다면 섹경 귀신이 나를 어디로 끌고 갔을까? 아무래도 잡초 무더기 같은데 팽개쳐버렸을 테지. 실없는 생각에 피식피식 웃음이 나왔다. 그것 참, 거울이란 게 무얼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두 딸이 아들 하나씩을 두었다. 그 녀석들이 집에 오면 나는 자동적으로 녀석들의 동무가 되었다. 귀찮기도 했지만 녀석들의 말과 움직임과 웃음이 한데 어울려 굽이굽이 흐뭇했다. 작은딸이 왔을 때의 일이다.
나는 녀석을 무릎 위에 돌려 앉히고 초립동이같이 상체를 가만가만 흔들면서 가족들의 얘기판에 귀를 기울였다. 조용한 흔들기가 신기했던지 잠시 잠잠했다. 이내 양발차기를 했다. 그 신호를 어찌 모르랴. 화급히 일어섰다. 달라진 시계視界를 '휙' 굽어보곤 별게 아닌지 또 발을 내뻗었다. 천천히 거실과 주방과 현관 마루를 이어 돌았다. 문득 현관 쪽 벽에 붙은 거울 앞에 섰다. 녀석을 가리키며 "저게 누구냐?" 녀석은 심드렁해졌다. "쟤가 너야, 너!" 녀석은 머쓱해하며 고개를 돌렸다. 한 손을 거울에 대주니 재빨리 거둬들였다. "하-! 녀석, 낯가림을 하는 건가?"
아직 눈도 귀도 여린 아기는 오직 '먹는 욕심'만 팽팽하다. 포근하게 안고 젖을 물리고 정겨운 말로 눈빛을 맞추며 다독거리는 엄마의 손길은 바로 아기 자신의 충족充足이다. 이런 충족이 더해지면서 아기는 엄마의 모습을 익히고 목소리를 왼다. 곁에 있는 아빠나 할머니도 어느새 또 다른 '엄마'가 된다. 그 밖의 다른 사람들이 팔을 벌리면 선뜻 고개를 돌리거나 심하면 '앙'하고 울음을 터트리기도 한다. 이게 낯가리기다.
녀석이 거울에 비친 '저'를 보고 뜨악해진 건 그게 본적이 없는 '다른 사람'인 탓이다. 아무리 그렇더라도 저와 '저'는 무언가 좀 당기는 면이 있을 법도한데…. 그것 참. 결국 녀석은 거울에 비친 '저' 자신을 '다른 사람의 눈'으로 보게 된 것이다. 알다가도 모를 거울의 속성이다.
훌쩍 자란 녀석을 오랜만에 참으로 오랜만에 거실에서 만났다. 유치원을 졸업하게 된다고 했다. 농구공만한 풍선공으로 축구를 하자며 부산을 떨었다. 함께 설치다 나는 그 거울 앞에 녀석을 불러 세웠다. "쟤가 누구냐?" 하고 '녀석'을 가리켰다. "저요." "그게 어찌 너냐. 네 눈으로 네 얼굴이 보이냐?" "사진도 똑같이 나왔는데요." "음- 그래. '그 녀석'하고 더러 부딪치기도 하냐?" "네에. 제가 멋지게 꾸몄는데 촌스럽게 나올 때요." 녀석은 이미 거울 속의 '그 녀석'과 여러 말을 나누고 지낸 것 같았다. "부지런히 겨뤄 보기도 하고 손잡기도 해봐라!" 녀석은 무엇을 알기나 한 것처럼 "네." 하고 풍선 공을 힘차게 차올렸다.
'우리는 세계를 보고 있는 것이 아니라 비추고 있을 뿐이다. 모두가 세계의 거울에 불과하다.'는 말이 있다. 녀석은 엄마를 비추는 거울이고 엄마는 녀석을 비추는 거울이란 말 아닌가! 그렇다면 두 거울이 어떻게 얼마만큼 다채롭고 깊게 서로 비추어 하나가 되느냐에 따라서 성장의 모습이 크게 달라지지 않겠는가.
녀석은 이미 저와 '저'를 어슬프나마 소통하기 시작한 것 같다. 그에 이어 녀석이 할 일은 거울의 구조와 속성을 잘 살피면서 세계 도처에 도사리고 있는 찬란한 그 '타자라는 거울' 앞에 '나-우리의 거울'이 더욱 눈부시게 비치도록 갈고 닦는 일이다.
최병호 ----------------------------------------------------------
성균관대학교 졸업·고려대학교 대학원 수료.
충남에서 장학사·장학관 역임.
한국 국공립 중학교장회 충남 회장.
한국 교육행정연수회 충남 회장.
한국문협·한국수필가협회·수필문우회·현대수필문학회·한국수필문학회 회원.
현 덕성여자대학교 평생교육원 전담교수.
들리는 것 들리지 않는 것 / 김 국 자 (0) | 2021.06.17 |
---|---|
시간의 단면 / 맹 난 자 (0) | 2021.06.17 |
나이듦에 대하여 / 송 보 영 (0) | 2021.06.17 |
불의 예술 / 이 방 주 (0) | 2021.06.17 |
망초꽃 핀 언덕 / 박 영 수 (0) | 2021.06.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