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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언어가 당신을 선택 한다 / 이 명 화

수필작법 도움 글

by 장대명화 2021. 6. 6. 0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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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신의 언어가 당신을 선택 한다 / 이 명 화

 

당신의 언어가 당신의 운명을 좌우한다면 우리는 어떠한 말을 골라서 써야 할까? 언어에 내 삶의 무게가 실리고 자신의 정체성이 드러난다면, 언어의 선택이야말로 생존을 위한 최대의 전략일 수 있다. 올바른 언어생활은 건조한 일상을 촉촉하게 하고, 우리의 정서를 보다 아름답게 순화시킨다. 일상에서 쓰는 언어의 파장이란 실로 그 계산이 불가능하다. 그러기에 펜이 칼보다 강하다하지 않던가? 타인에게 비춰지는 언어는 마치 자신의 의지를 표현하는 나상과 같다. 언어의 의미를 정확하게 인지했을 때 자신의 신념을 투철하게 반영할 수 있고, 타인의 삶에 눈을 떴을 때 보다 폭넓은 인간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

긍정적인 말을 자주 하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평범한 일상이 새로워지고 사유의 지평이 달라짐을 느끼게 될 것이다. 베르그손은 “ 한 나라의 언어를 아는 사람은 결코 마음속 깊숙한 곳에서부터 그 나라를 미워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언어를 익힌다는 것은 그 나라의 문화 자체를 내면화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의 말은 우리가 다른 문화와 언어를 배움으로써 증오를 뛰어넘어 인류애로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이런 일화에서 나타나듯이 그의 철학은 줄곧 자기애나 가족애, 민족애를 넘어서 인류 전체에 대한, 나아가 생명 전체에 대한 공감과 애정을 역설하고 있다.

따뜻한 말 한마디는 실의에 빠진 사람에게 소망의 닻이 되어 잠든 에너지를 태우게 하지만, 무심코 던진 말 한마디 때문에 평생 가슴을 닫고 사는 사람도 있다. 가시 박힌 말은 독버섯보다도 무서운 사회악이 될 수 있다. 언어는 곧 그 사람의 인격이자 정신의 뿌리며 영혼의 심지다. 나무는 뿌리가 깊어야 잎이 무성하듯 사유의 바탕이 견고해야 건강한 에너지가 나온다. 우리는 날마다 언어를 통해 세상과 만나고 참여를 통하여 존재의 의미를 확장해 나간다. 그래서 웃자란 언어는 잘라내고 매끄럽지 않는 언어는 고루 다듬어야 한다. 긍정적인 말을 자주 하다 보면 매사에 자신감이 넘쳐 적극적 삶을 살게 된다.

언어도 식물처럼 희망을 발아하는 생명의 언어와 열매를 맺지 못하는 사망의 언어가 있다 한다. 생명언어가 좋다는 것은 누구나 잘 알고 있지만, 실제로 입술을 통해 흘러나오는 말의 대부분은 사망의 언어에 가깝다. 언어학회의 통계에 따르면, 사람들이 하루에 주고받는 말 가운데에는 긍정적 언어보다는 부정적 언어가 무려 9배나 많다고 한다. 아침에 일어나면 피곤해 죽겠다, 배불러 죽겠다, 외로워 죽겠다, 심지어 좋아 죽겠다까지 연발하는 걸 보면 현대인들은 어느새 부정적 언어습관에 길들여져 있음이 분명하다.

모든 언어는 신뢰의 바탕에 뿌리를 내릴 때 제 생명을 다한다. 그러나 실재적 삶으로 이어지지 않는 말은 공허하다. 자기 체험이 없는 말은 울림이 없듯이 그 어떠한 가르침도 내 삶에 성정의 향상이 없다면 말은 무의미하다. 말에 생명이 없으면, 들어도 깨달음에 도달하지 못하면, 사람의 입을 거쳐 나오는 배설물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생명의 언어는 나락에 떨어진 사람을 다시 세워 인생의 방향을 제시해준다. 인류역사는 언어를 통해 또 하나의 길을 만든다. 수많은 언어가 세상에 태어나지만 건강한 언어만 살아남는다. 수돗물을 거르듯 언어에도 여과장치가 있었다면 우리사회에 언어폭력의 피해자가 조금은 줄었을 것이다. 나 역시 말을 더 아끼며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말속에 기적이 있고, 말속에 보화가 숨어있다는 사실을 짐짓 모르고 살았기 때문이리라.

아무리 값비싼 보석도 시간이 지나면 질감이 떨어지듯, 하나의 생명이 태어나 영원한 가치를 누린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언어는 대중의 선택에 의해 탄생하지만, 제 몫을 다하면 사회조류에 밀려 서서히 사라진다. 사회의 정의와 질서는 언어를 통해 이루어진다. 말이 자라서 열매가 되고 새로운 신화를 창조하여 후대에 물려줄 때까지, 불의에 대응하고 맞서 싸우는 과정이 언어의 일생이다. 대상이 있는 분노는 새로운 질서를 만들고, 비판적 언어는 밝고 건강한 사회를 만드는 동력이 될 수 있다. 반사와 굴절을 통한 사회적 언어는 기존의 질서에 대응하는 반향을 일으킨다. 언어는 앎의 세계를 확장한다. 언어에 대한 편견을 버리고 모든 언어를 담담하게 받아들일 때 그 진의를 제대로 파악할 수 있다.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인생의 방향이 달라지듯, 건강한 삶은 타인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앞서 간 사람들의 삶을 보면 일찍이 위대한 선각자나 훌륭한 스승을 만났기 때문에 성공적인 삶을 누릴 수 있었다. 또한 그들의 성공은 적극적 의지와 긍정적 사고에 의해 이루어졌다. 그들이 사용한 언어는 모두가 인류의 꿈을 실현시킬 수 있는 희망과 배려가 담겨있다. 그들의 정신 속에는 인류를 향한 뜨거운 사랑과 이 땅에 위대한 문화적 업적을 남기고자 노력한 사람들이었다. 이렇듯 사유의 만남은 서로의 능력을 향상시키고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가는 동력이다.

말을 함부로 하면 상대의 폐부를 찌르고, 거칠면 독이 되어 골수를 쪼갤 수 있다. 건강한 언어는 신념을 관철할 수 있는 도구다. 지금도 세상 어느 곳에선가 어지러운 세상의 희망이 되기 위해 자신의 뼈를 깎는 사람이 있다. 이들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는 봄날의 태양과 같다. 기다림의 끝이 절망이라 해도 날마다 세상과 씨름하며 투쟁적인 삶을 살아야 하는 사람도 있다. 이들에게 소망을 주는 말 한마디는 망망한 바다의 등대와 같다. 자신이 선택한 삶을 위해 평생을 침묵하는 사람도 있다. 이들에게 부드러운 말 한마디는 실의에 빠진 사람을 구원하는 신앙과 같다. 누구나 그 사람의 내면을 들여다보면 크고 작은 문제와, 아픔의 편린이 박혀 있음을 알 수 있다. 모든 생명체의 몸짓은 그 연출에 따라 삶의 짐이 될 수도 있고, 시대를 초월하는 창조의 예술이 되기도 한다.

하루도 말 안 하고 살 수 없는 세상에서 할 말 다 하고도 당당하게 살아가려면 화살을 피할 수 있는 방패와 말을 더 아껴 쓰는 지혜가 필요하다. 날마다 새로운 정신을 다지고 새로운 마음으로 하루의 일과를 시작한다면 그 삶은 위대한 탄생일 수 있다. 살아있다는 것은 끊임없는 분자의 운동이며 언어의 씨 뿌림이다. 하나의 문장을 완성하려면 충분한 여과를 거쳐야 훌륭한 텍스트가 된다. 늘 마음의 문이 열려있어야, 나를 자극하는 것들을 폭넓게 받아들일 수 있다. 언어는 분명 생명력 넘치는 화초다.

언어의 체계화를 통해 우리는 또 하나의 문화를 만들어간다. 새로운 문화의 창달을 위해서, 우리의 언어도 세심하게 가꿔야만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있다. 내 안에 분노의 감정이 사라졌을 때, 상대가 한 말을 생각해보면 그의 심리상태를 파악할 수 있다. 살다 보면 인생의 속력에도 가속도가 붙어 마라톤을 해야 할 때도 있지만, 우리의 삶은 사색과 명상을 통해 삶의 중심에 설 수 있다. 누군가 나의 입술을 통해 내 삶의 무게를 측량한다면 언어의 선택은 결코 가벼이 넘길 일만은 아니리라. 날마다 숨 가쁘게 돌아가는 세상에 살면서 마음에 상처를 내지 않으려면 말을 더 아끼고 생명의 언어를 적극 활용해야겠는 생각이 든다. 나의 언어는 언제 어떻게 선택될 것인가? 오십을 훌쩍 넘긴 나이에 다시 한 번 고민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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