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짝이던 작은 포구 / 정 태 원
지난 여름 우리는 만리포 해수욕장을 시작으로 변산반도와 다도해 해상국립공원을 거쳐 동해 화진포까지 해안선을 한바퀴 돌아서 왔다. 우리나라의 바다는 세계 3대 미항美港으로 꼽히는 나폴리가 무색할 정도로 아름답고 환상적이다. 특히 변산반도와 동해의 드라이브 코스는 세계적인 명소로도 손색이 없을 것 같았다. 크고 작은 섬들이 그림처럼 떠 있는 다도해 해상국립공원은 또 얼마나 매혹적인가.
그 중에서도 가장 인상 깊었던 곳은 정도리였다. 정도리는 완도에 있는 아주 작은 포구로, 해변은 반짝이는 금빛 모래 대신 반들반들 윤이 나는 검은 돌로 뒤덮혀 있었다. 오랜 세월 바닷물에 씻긴 검은 돌은 모두 둥굴둥굴한 것이 꼭 어른 주먹 크기만 했다.
아스라이 펼쳐진 옥빛 바다와 눈부시게 쏟아지던 투명한 햇살, 검은 돌 일색인 해변과 짙푸른 해송의 무리들, 고기잡이 갔던 아들이 돌아오자 달려가 붙들고 울부짖던 노모의 애절한 모습이 지금도 눈앞에 생생하게 떠오른다.
해변의 검은 돌들이 금방 푸드득 푸드득 알을 깨고 수천 수만 마리의 새로 날아오를 것 같은 환영에 젖어 있을 때, 멀리서 통통배 소리가 들려왔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소리만 들리던 수평선 저 멀리서 차츰 고깃배의 윤곽이 드러난다.
경운기를 타고 나와 있던 아내와 아들이 만선의 기쁨을 안고 돌아오는 가장을 반기며 손을 흔든다. 어린아이처럼 경운기에 앉아 하염없이 바다를 지켜보고 있던 노모는 배가 해변에 닿자 허겁지겁 반색을 하며 달려간다.
"엄니 왜 또 나오셨어요!"
50대 후반으로 보이는 가장이 자신을 얼싸안고 얼쩔 줄 몰라하는 노모에게 큰소리로 꾸짖듯 말한다.
"얼마나 기다렸는데, 왜 지금 오시는 거요. 아버지도 엄니도 다 돌아가셨당께. 아이구 순덕이도 배앓이를 하다가 죽고, 흑흑흑……."
80 노모가 갑자기 30대의 억센 아낙처럼 50대 아들을 붙들고 통곡하기 시작한다.
"할머니는 가끔 아버지를 돌아가신 할아버지로 착각하고 저렇게 우셔요."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 서 있는 우리에게 온몸이 구리빛으로 그을린 건장한 손자가 들려준 사연이다.
50년 전에 바다에 나갔다가 풍랑을 만나 돌아오지 않는 남편을 80이 넘은 아내가 지금도 기다리고 있다는 기막힌 이야기다.
"엄니. 나요. 나! 석이 애비라고. 아이구 정신차려요!"
아들이 노모의 어깨를 흔들며 소리소리 지른다. 노모는 가는귀가 먹은 듯했다.
"아버지 제사상에 놓으라고 이맘때는 꼭 조기가 재법 잡힌다니까. 엄니. 조기 받으시우!"
노모는 갑자기 넑이 나간 듯 그자리에 털썩 주저앉는다. 지금 막 잡아온 멸치를 소금물이 펄펄 끊는 가마솥에 넣었다가 채반에 건져 널고 있는 며느리와 손자를 멍한 눈으로 쳐다본다.
청상의 설움을 알리 없는 바다는 한낮의 작열하는 태양 아래서 더욱 빛나고 있었다.
해변을 뒤덮은 검은 돌들이 시커멓게 탄 노파의 가슴만 같아 눈물겨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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