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 있는 자 / 박 양 근
창밖에 나무가 서 있다.
그 나무가 말을 한다. 줄기에서 눈을 뜨고 눈 속에서 말 기운을 돋워낸다. 가지 끝마다 눈부시게 부활한다. 온몸으로 말하는 나무가 조그만 변화로서 우주의 힘을 전해준다.
느낌을 중재하는 것이 자연이라면 나무는 자신의 속을 읽어주는 유일한 생명체다. 뿌리는 대지가 품은 영감을 일러주고, 잎은 가지를 가리면서 약한 것이 강한 것을 지켜주기도 한다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가지 끝에 피는 잎은, 무언가를 타이르는 입 모양 같다.
나무가 말을 건네는 것이다.
나무를 창을 통해 바라본다. 맑고 투명한 창은 언제나 밖을 쉽게 내다볼 수 있어 좋다. 턱이 낮은 창이면 밖에서도 안을 훤하게 들여다볼 수 있으리라. 낮으면서도 맑은 창, 바람결이 술술 드나드는 창은 세상의 따뜻한 이야기를 전해주는 왕눈이 된다.
그 창을 통하여 지나가는 사람을 바라보면 사람들이 나무로 보일 때가 있다. 걸어가는 나무, 이야기하는 나무, 일하는 나무, 고개를 숙인 나무···. 흐르는 냇가에 서 있는 나무는 자신을 비추어보고, 숲 속 나무는 친구가 있어 외롭지 않다. 산등성이에 자리한 나무는 새들을 친구로 불러 모은다. 그들 덕분에 창 안에 있는 나는 한 그루 나무가 되는 꿈을 꾸어본다. 나무 덕분에 방안의 나무는 가만히 등을 기대어 있기만 하여도 행복하다.
다시 진짜 나무가 눈에 들어온다. 사람이 지나다니면서 가려진 나무다. 창을 통해 바라보는 곧은 자태가 의연하여 어진 사람을 지켜보는 듯하다. 늘 서 있는 자가 아닌가. 그런 사람이 세상 어디엔가 있다면 달려가서 만나고 싶다. 힘들기도 할 텐데, 어떻게 일생 동안 한 번도 몸을 굽히거나, 앉거나 눕지도 않으면서, 내내 등신불로 서 있을까?
그 나무는 자尺가 된다. 험한 상처마저 나이테에 숨기면서 나무는 둥글게 웃는다. 세상 사람들을 대신한 온갖 아픔이 웅이로 못 박여도 싱그럽게 웃는다. 해코지며, 험담이며, 모함마저 송진으로 녹여 내리며 부드럽게 웃는다.
특히나 겨울나무는 땅과 하늘을 잇는 자가 된다. “나무는 자다.”는 말이 저절로 되뇌어진다. 침묵으로 세월을 재는 자. 그래서 좋은 사람은 그냥 서 있는 나무와 같다.
요즘 나무가 예사롭지 않게 보인다. 나무가 자尺로 다가오는 듯해서다. 올곧은 나무를 볼 때면 다가가서 만져주고 싶고, 만짐으로 그가 내 손만이라도 잡아주기를 은근히 기대하게 된다. 갈수록 절감하는 것이지만 나이를 먹는다는 표시는 살아온 세월을 잴 무언가 가졌으면 하는 변화라고 여겨진다. 꽃도 잎도 떨어뜨린 겨울나무인들 상관이 없다. 그게 더욱 좋으리라는 느낌이 들 때도 있다. 나무는 추위에 부대낄수록 옷을 벗고, 삭풍이 칠수록 숨겼던 뿌리를 드러낸다. 반면에 사람들은 춥다며 옷을 껴입고 몸을 웅크린다. 어디 추위만을 피하기 위해서일까.
창으로 바라본 나무가 하늘을 건드린다. 하늘은 사방 천지가 열려진 궁전이다. 둘러친 울타리가 없고 닫힌 문도 없다. 별의 자궁과 다름없는 하늘이다. 그런 까닭에 두 눈으로 쳐다보면 이내 닿을 듯하지만 빤히 보일수록 하늘은 찾아가기가 힘들다. 불러야 들어가는 곳이라서 더욱 어렵다. 별이 되어야 들어가는 하늘, 나무는 계절마다 역할을 달리한다.
여름이면 명상의 시간을 알려주는 푸른 종이 된다. 가지마다 매달린 작은 종이 바람에 술렁이며 갖가지 소리를 낸다. 그 소리를 제대로 들을 수 있는 사람들이라야 나무를 타고 하늘로 오를 수 있겠다. 가을나무는 핏덩이 같은 꽃을 피운다. 모두가 수확하지만 알곡이 없지 않느냐고 피울음을 우는 게 단풍이라는 생각이 든다. 겨울이 다가오면 나무는 이번에는 제 옷을 벗는다. 벗은 몸으로 사람에게 말한다.
“내 벗은 몸으로 당신의 벗은 마음을 재시오.”
눈보라가 치고 바람이 불어도 나무의 몸체는 움직이지 않는다. 무엇이든 선 채로 있어야 제 할 일을 하는 모양이다. 나무가 사계의 변화를 알려주기도 하지만 정작 하는 일은 우리의 영혼을 재는 일이다. 어쩌다 허리가 휘고, 눈 무게로 설화목이 될 때도 있으나 언제나 제자리를 지켜낸다. 나무의 몸이 곧은 이유가 이것이겠다.
창을 통해 바라보면 나무가 하는 일이 짐작된다. 나무가 있어 창이 제 역할을 한다고나 할까. 만일 창밖으로 나무가 비치지 않으면 어떨까. 등잔불로 매화 가지가 드리워진 한지 창문이 아름다운 이유도 매화가 방주인의 맑고 깨끗한 마음을 비춰주기 때문이다. 그 예스러운 정취를 생각하며 창으로 보이는 나무의 깊은 이야기를 생각해본다.
노을빛이 벽을 따라 들어온다. 내 마음의 창은 잿빛인데 방의 창은 바람과 빛을 고스란히 들여보내 준다. 창보다 못한 몸을 기대어 밖을 지켜보니 나뭇가지에 석양이 걸려있다. 봄도 아닌데 가지마다 붉은 피가 도는 듯하다. 이처럼 나무는 결코 절망과 시련에 굴하지 않는다. 길을 걷는 사람들의 얼굴이 밝고 발걸음이 힘찬 이유도 그런 나무 곁을 지나기 때문이다.
한 해를 보내는 동짓달쯤이면 나무는 눈금 하나를 긋는다. 내 눈금은 어떨까 하고 짐작해 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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