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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석과 모퉁이 / 최 장 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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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대명화 2020. 6. 16.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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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석과 모퉁이 / 최 장 순

 

  그림자가 웅크리고 있다. 당긴 두 무릎을 손깍지로 가둔 채. 원초적이고 무방비한 태아 같은 자세를 받아주는 구석. 그 바깥, 걸음이 서둘러 돌아오는 곳은 모퉁이다.

 두 개의 벽면이 만나면 정확히 두 개의 공간이 생긴다. 구석과 모퉁이다. 구석은 안이고 모퉁이는 밖이다. 두 공간의 의미는 사뭇 달라서 구석이 닫힌 공간이라면 모퉁이는 열린 공간이다. 구석이 어둡다면 모퉁이는 밝다.

  구석을 좋아하는 이들은 은밀한 곳을 찾는다. 강의실에서, 레스토랑에서, 영화관에서 그들이 믿는 구석은 은폐가 주는 위로와 안도가 있다. 권투선수가 3분 동안 4각의 공간에서 죽을힘으로 싸우고도 버틸 수 있는 것은, 매 라운드마다 90초간 쉴 수 있는 코너 덕분이다. 오픈된 링에서 사각의 구석은 안심할 수 있는 장소다. 로마의 원형경기장이 무자비했던 이유는 구석이 없는 까닭이다. 흥분한 눈들을 벗어날 곳은 아무 데도 없다. 속속들이 비밀을 꿰고 있는 신 앞에 최초의 인간은 얼마나 두려웠을까. 언제든지 죄수를 감시할 수 있도록 원형으로 만든 파놉티콘panopticon 감옥처럼, 은신할 구석이 없어 여유를 잃어버린 세상은 얼마나 불안할까. 애써 손에 넣은 사냥감을 숨겨놓은 구석은 짐승이 안심하며 먹을 수 있는 곳이다.

  구석은 탐욕과 허영을 버린 겸손한 자를 받아들인다. 부끄러움을 내려놓거나 가식을 벗은 자를 끌어안는다. 마음 깊숙이 잠자던 고독을 깨우고 잃어버린 사색을 찾아주는 구석은, 부풀린 욕망의 몸피를 작아지게 한다. 웅크린 자세를 좋아하는 것도 그 까닭이다.

  구석을 잘 아는 사람은 성공의 앞줄에 선다. 중심에서 키우는 목청이 잘 들릴 테지만, 후미진 곳의 애환을 모르고 살아온 사람을 누가 따르겠는가. 선거에서 이기는 쪽은 구석구석을 파고든 사람이다. 리더는 구석의 눈물을 알기에 그 구석들이 힘을 모아 지도자를 만든다.

  슬픈 소식이 오거나 사랑하는 사람이 사라지는 곳이 모퉁이다. 매정한 그림자를 남긴 서늘한 이별은 서둘러 모퉁이를 돌아서 나간다. 사랑이란, 어쩌면 서로의 틈을 메우는 일인지도 모른다. 가지 말라고 매달리는 울음을 떼어놓고 돌아서는 이별은 벌어진 틈을 끝내 메우지 못해서이다. 믿음의 울타리가 허물어지던 날, 미안하다는 말 한 뭉치를 던져놓고 돌아간 걸음은 다시 모퉁이를 돌아오지 않았다.

  모퉁이는 간절한 시선이 머무는 곳이다. 누가 올까. 무엇을 가져올까, 무슨 일이 생겼나, 끝도 없는 궁금증이 뿌리에서 줄기로, 줄기에서 열매로 이어지듯 확장된다. 낯선 도시에서 본 적 없는 풍경에 눈이 번쩍 뜨이듯, 길모퉁이를 돌아서면 멋진 세계가 있으리라는 기대가 모퉁이 너머를 동경한다.

  언젠가 골목을 힘들게 오르다 만난 부암동 카페 이름은 ‘산모퉁이’였다. 도심을 빠져나온 모퉁이, 산과 인접한 그곳은 기분마저 경쾌하게 만들었다. 인왕산과 성곽 길을 한눈에 바라본 것은 보너스였다. 일 년에 겨우 두서너 잔 마실까 한 커피가 그날따라 기분 좋게 목을 타고 넘어갔다.

  구석은 생활의 4각 링으로 나가기 위한 충전소. 하지만 구석은 지친 일상이 오래 머물기를 원치 않는다. 지극히 개인적인 공간이면서 생명의 힘을 얻는 곳이다. 세상의 한가운데서 시달린 육신을 받아주는 곳이면서 동시에 세상으로 나갈 준비를 하는 곳이다. ‘방구석’ ‘집구석’ ‘촌구석’, 얕보듯 하찮게 발음하던 그곳에서 나는 에너지를 충전했다. 넥타이를 바짝 고쳐 묶고, 산발 끈을 조이면서 삶의 중심을 향해 힘찬 발걸음을 내디뎠다.

  구석은 부끄러움이 많아 좀처럼 밖으로 나가지 않는다. 그러나 바깥을 향한 호기심은 끝없이 커져서 청각과 후각이 자라는 곳이다. 구석이 구석을 벗어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시린 마음에 군불을 지피며 숨죽여 울 수 있는 부엌은 어머니의 구석이었다. 하지만 그곳을 나올 때면 언제 그랬냐는 듯 환해지셨다. 그런 어머니를 내내 기다리던 곳은 모퉁이였다. 산자락이 휘돌아 나오는 그곳을 지켜보던 눈이 반짝, 빛나는 순간 저 멀리서 미소가 다가왔다. 어스름 속에서도 가쁜 숨소리가 느껴졌다. 작은 가게 모퉁이를 돌아나간 소년은 따스한 품에 안겼다.

  모퉁이는 여전히 설렘이다. 예상한 시간에 맞춰 찾아온 환한 웃음은 짜릿하다. 지극한 기다림 끝에 맛보는 기쁨. 사랑이 조바심을 일으키기도 하지만 그 조급증을 누르며 기다릴 수 있는 것은 설렘이라는 마지막 모퉁이가 있기 때문이다.

그 모퉁이에 추억을 부르는 소리들이 있다. 이슥한 밤, 담 모퉁이를 돌아 나오던 “찹쌀떡” 외침은 추억을 입맛 돌게 한다. 계절의 모퉁이를 돌면 귀뚜라미가 글을 읽고 가시덤불을 헤치며 노래하는 찌르레기가 있다. 바람에 실려 온 모퉁이엔 낙엽 구르는 그리움이 있다. 때로 지루하고 짜증스러워도 끝내 기다리는 기쁨, 모퉁이에서는 시각이 끝도 없이 자란다.

  청춘의 기다림이 하루 종일 스마트폰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것도 사랑한다는 연인의 기별을 보기 위해서다. 모퉁이를 돌아온 소식은 잘 익은 포도주처럼 반가운 향기를 풍긴다. 먼 북쪽을 돌아온 정겨운 소리가 채근한다. “일어나거라” “밥 먹어라” “체할라” 그 소리가 새벽의 모퉁이를 돌아와 나를 깨울 때면 불현듯 그리움이 치민다. 그 소리들은 이미 이승의 모퉁이를 돌아나갔다.

  사물들을 가만 살펴보면 구석과 모서리가 있다. 어디 사물뿐이겠는가. 어둡지만 아늑하게 숨은 공간이 있다면, 밝게 열려있는 공간도 있다. 어떤 대상이든 한쪽 면만으로 다 알 수 없다. 양면을 다 알아야 진면목이 보인다. 안과 밖을 모두 알아야 비로소 오해와 편견은 멀어지고 이해와 배려는 가까워지는 것이다.

  어느덧 구석을 볼 줄 아는 나이, 허물을 이해하고 배려하는 포용 속에서 나는 구석을 벗어나거나 모퉁이를 돌아나간다. 곧게 뻗은 길이 성공에 이르는 지름길로 알았지만, 번번이 모퉁이를 만나면서 속도를 줄여야 함을 깨닫는다. 모퉁이가 없는 길은 어디에도 없다. 모퉁이는 돌아가는 지혜를 일깨워 준다. 들숨과 날숨을 조절하며 오늘도 나는 구석과 모퉁이를 오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