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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박꽃 / 반숭례

추천우수 수필

by 장대명화 2020. 4. 2. 0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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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박꽃 / 반숭례

 

 소낙비가 한바탕 쏟아지고 나면 서녘하늘은 저녁노을이 곱게 번져 손을 내밀면 금세라도 봉선화 같은 꽃물이 함빡 들을 것만 같다.

 

 돌담을 타고 올라간 호박넝쿨마저 붉게 물이 들어 시들어가는 호박꽃도 유난히 아름답다. 노을에 젖은 호박꽃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으니 어린 시절이 떠오른다. ‘어이 호박하고 부르던 소리에 뒤돌아보면 시침을 뚝 떼고 있다가 다시 돌아서면 이라고 부르며 킬킬거리던 동네 오빠들의 짓궂은 웃음소리다.

 

 나는 호박꽃이라고 놀려대던 소리가 싫어서 울었다. 아니 그 소리를 듣지 않으려고 장난꾸러기들이 지나가는 기척만 있어도 숨어 버렸다. 삼십년의 세월은 너무나 많은 내 인생을 변화시켜 놓았건만 지금 바라보는 호박꽃은 예나 지금이나 변한 데가 없다.

 

  호박꽃? 왜 하필이면 호박꽃이라고 불렀을까.

 

  정열의 여왕 장미도 있고, 울안에 가득히 피어 향기도 그윽한 백합이나, 그도 아니면 담 밑에 옹기종기 피어나던 채송화, 봉숭아도 있는데 그런 꽃을 두고 천둥 맞게 호박꽃이라니.......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는 꽃들 중에서 내게 붙여진 여학교 시절의 호박꽃 별명은 큰 상처가 되었고, 아름다움만을 추구하던 내 수수한 어린마음은 남자애들 소리만 들리면 늘 기를 펴지 못했다.

 

  아버지는 딸을 낳으면 뜰에 꽃나무를 심으셨고 아들을 낳으면 장작을 패셨단다. 그리고 어머니가 오뉴월 녹음 속에 고운 빛깔의 장미꽃 같이 아름답게 느껴졌던 것은 장미처럼 가시가 숨어 있기 때문이라고 하셨다. 아마도 딸을 많이 둔 지난날의 서운하신 마음을 은근히 이렇게 달래려 함 이였으리라.

 

 창문 새로 먼 하늘을 바라보며 바위고개에 숨어서 님을 기다린다는 가곡을 부르던 목련꽃 같았던 큰언니, 몸이 약해 늘 툇마루에 앉아서 책을 읽던 키만 멀슥한 해바라기를 닮은 둘째 언니, 두리 뭉실하고 펑퍼짐한 몸매로 이미자의 노래를 멋들어지게 부르던 동백꽃 같은 셋째언니, 소월의 시 개여울을 여울물 같은 맑은 목소리로 감미롭게 부르던 국화 향기 같은 동생, 지금은 까만 수도복에 정결한 모습으로 수녀원에서 살고 있는 코스모스처럼 귀여운 막내. 그 막내는 언제나 나를 들국화언니라고 불러 주었다.

 

 이런 언니들과 동생들 틈에 끼어 있다 보니 위아래로 봐서 내가 남자들의 밉지 않은 놀림 대상이 되었을 지도 모를 일을 미쳐 깨닫지 못했나보다.

 

 장난꾸러기 오빠들은 개구멍으로 들어와 애호박에 말뚝을 박아놓고 오이를 따가도 아버지는 모른 척하셨다. 자식 기르는 사람은 입찬소리를 앓아야 한다, 시며 형제간은 한 넝쿨에 열린 호박들이니 우애 있게 지내라는 말씀을 하셨다.

 

 사람들은 흔히 호박꽃도 꽃이냐고들 하지만, 호박꽃은 여름 아침이면 함박만한 웃음을 가득 담은 종처럼 생긴 노란 꽃들이 피어난다. 다른 꽃들처럼 예쁘지는 않지만 어딘지 모르게 믿음직스럽고 풍만해 보인다. 꿀벌들은 새벽부터 윙윙거리며 꿀을 채취하고 꽃가루를 다리에 묻혀 가기도 한다.

 

 뜨거운 태양이 작열하는 한 낮이면 넓적한 잎사귀 뒤에서 애호박을 기물답게 키웠다. 비라도 부슬부슬 내리는 날에는 동글동글한 애호박을 뚝 따다가 부침개질을 하면 향긋하고 상큼하면서 풋풋한 맛이 난다. 누름 국을 할 적에는 꾸미를 만들어 넣으면 한결 입맛을 돋워 준다.

 

 가을이면 종가 댁 맏며느리 같은 몸짓으로 치장 할 것 없이 울퉁불퉁 생긴 대로 익어갔고, 앙상한 줄기만 남아있게 되면 달덩이 같은 탐스런 늙은 호박이 주렁주렁 달려있다. 그뿐이 아니다. 누렇게 익은 늙은 호박은 아기를 낳은 산모에게 부석부석한 몸의 부기를 빼기 위한 약재로는 그만이다. 우리 몸에 체액을 중성으로 유지시킨다는 건강식품을 만드는데도 호박을 당해 낼만한 재료가 없다고 한다.

 

 이렇게 요긴하게 쓰여 지기 위해서는 뙤약볕의 따가움을 참아내고 비바람이 몰아치는 수많은 시간들의 고통도 이겨냈으리라. 사람으로 따지자면 모욕적인 말을 들어도 화내지 않고, 절망에도 굽히지 않고 넓은 마음으로 포용할 줄 아는 마음씨일 것이다.

 

 그렇게도 듣기 싫던 호박꽃소리가 세월을 거듭 할수록 애착이 가는 것은, 여리디 여린 애호박의 인생길에서 어느새 누렇게 익어가는 늙은 호박으로 변모해 가는 불혹을 넘기는 길목으로 접어든 까닭인지 모른다. 역경에 처해도 당황하지 않고 침착하게 헤쳐 나가는 호박 넝쿨이 지니고 있는 강인함을 닮고 싶고 호박이 지닌 덕성을 배워가는 나이가 되었기 때문이다.

 

 호박꽃이라 부르고 달아나는 오빠들의 뒷전에서 발을 동동 구르며 울고 있는 나에게 사람이란 만나면 만날수록 보면 볼수록 정이가고 친해지고 싶어 하듯 끌어당기는 멋이 있어야 한다고 하시던 아버지. 그것은 외양의 아름다움이 아니고 마음이 곱고 행실이 반듯해야 한다며 호박꽃이라 불러도 웃어 보일 수 있는 너그러운 호박꽃으로 피라 시던 어머니.

 

 나이가 든 지금에서야 그 꽃이 담고 있는 보이지 않는 의미를 조금은 알 것만 같은 요즘, 옛 추억 속의 오빠들은 어디에서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을까. 요염하거나 진한 향기는 없어도 실한 열매를 맺는 호박꽃처럼 중년의 여인이 되어 있는 내 모습을 생각이나 할까. ‘어이 호박~이제는 어이 호-이라고 부르는 소리만이라도 듣고 싶어진다.

                                              (1994년 문예한국 등단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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