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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뎅양복점 / 박 영 자

추천우수 수필

by 장대명화 2019. 12. 4. 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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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뎅양복점 / 박 영 자

 

 샤워실 앞 수건걸이 끝에 걸려있는 옷솔이 눈에 들어온 것은 우연이었다. 매일 수건을 쓰고 걸고 하면서도 어째서 그리도 무심했을까. 몇 년을 눈길 한 번 주지 않았으니 옷솔로서의 역할은 물론 아예 관심 밖이었던 것이다.

 

 30cm는 족히 되는 이 큼지막한  옷솔도 세월 따라 니스 칠이 벗겨져 얼룩이지고 나이든 티가 역력하다. 검버섯처럼 번져 나온 거무티티한 점들이며 목에는 주름살처럼 나뭇결에 실금이 나 있지만 계란형 얼굴 한 복판에 고딕체로 큼지막하게 로뎅양복점이라고 쓰인 글자는 선명하다. 그 밑에 좀 작은 글씨로 청주 (한일은행앞) TEL 2-8992’ 이라는 글씨도 약간 흐려지긴 했지만 알아볼만하다. 전화 번호 앞자리가 2국이라는 한 자리 숫자인 것으로도 세월을 읽는다. 지금 청주의 일반 전화 국번호는 세 자리 숫자가 되었으니 격세지감을 느낀다.

 

 초록색 끈에 매달려 한쪽만을 바라보며 몇 년을 꼼짝 않고 누군가의 손길을 기다렸을 옷솔을 내려 털 것도 없는 내 옷을 툭툭 털어보니 애잔한 마음에 가슴이 찡하다. 이 옷솔을 거기에 걸어 놓은 사람도 애용한 사람도 남편이다. 외출하려면 그는 양복을 들고 샤워실에 들어가 옷솔로 툭툭 털어내고 입고 나가곤 했었다. 결국 주인을 잃은 옷솔은 6 년 가까이 하릴없이 주인을 마냥 기다리고 있었을 것이다.

 

 로뎅양복점은 남편의 단골이었으며 청주에서 일류 양복점이었다. 청주의 중심가에 위치하기도 했지만 웬만한 신사들은 다 거쳐 갈 만치 유명한 양복점이었다. 남편은 고집스럽게도 그 양복점만 드나들었고 양복을 맞출 때면 꼭 나를 대동하고는 했다. 맞추러 갈 때 함께 가서 천과 색깔을 고르고, 가봉할 때도, 찾으러 갈 때도 동행을 해야 마음이 놓이는 모양이었다.

 

 사장님은 양복 짓는 솜씨도 일품이었지만 인품도 넉넉하고 훈훈하여 값은 비싼 편이었지만 늘 성업 중이었다. 오직 한 사람 각자의 특별한 신체 구조에 맞추어 손님을 만족시키기 위한 장인정신이 투철한 분이었다. 양복 한 벌을 완성 하는 데는 적어도 5~6일은 걸려야 한다며 정성을 다 하는 분이었다.

 

 독일에 사는 시누이 내외가 결혼하고 첫 방문을 한 때였다.. 독일 사람인 시누이 남편은 한국의 갖가지 풍물을 구경하러 시가지 골목골목까지 누비고 다니길 좋아했다. 남편이 퇴근하면 같이 밤에 시가지 구경을 나가는 것에 재미를 붙였다. 다방(茶房)에 데리고 갔더니 독일에는 없는 문화라며 예쁜 다방 아가씨들을 신기해하고 시간만 나면 다방에 가자고 졸랐다. 양복점 앞에서는 독일에서는 특별한 사람이나 맞추어 입는 것이라며 자기는 기성복 외에 입어본 일이 없다고 부러워했다.

 

 우리는 그에게 선물로 양복 한 벌을 맞추어 주기로 했다. 그는 손사래를 치며 그 비싼 것을 받을 수 없다고 사양했지만 결국 로뎅양복점에서 세로 줄이 들어간 진한 회색빛 양복을 맞추게 되었다.

 

양복점 사장님은 키가 크고 등치가 만만치 않은 그를 보고 양복 두 벌 값을 받아야 겠네.” 라고 농담을 하며 독일까지 자기의 솜씨를 뽐낼 수 있는 기회이니 최선을 다해 만들겠다고 거듭 다짐하기도 했다.

 

 양복을 찾아 온 날 시누이 남편은 가족들 앞에 입고 나와 맞춤옷은 평생 처음이라며 기쁨에 겨워 춤을 추기 시작하자 우리아이들과 한바탕 춤판이 벌어지기까지 했다. 그는 독일에 가서도 친구들에게 맞춤양복을 자랑하며 즐겨 입었다고 전한다. 이제 몸이 불어 작아져서 입지 못하면서도 버리지 못하고 간직하고 있다고 시누이가 작년에 와서 귀띔했으니 그 때 함께 넣어 가지고간 그 옷솔도 아직 건재 할까 궁금해진다.

 

 80년대만 해도 청주에 양복점이 100여 군데가 넘었다고 한다. 이젠 기성복에 떠밀려 설자리를 잃고 양복점들이 거의 문을 닫았다. ‘로뎅양복점도 어느 샌가 자취를 감추었다. 지금도 성안길에서 중앙공원 들어가는 입구에 있던 그 양복점 앞을 지날 때면 발길이 멈추어지고 예사로 보이지 않는다. 먼 나라로 떠난 남편과의 추억이 서린 곳이 그 곳 뿐일까만...

 

 지금은 소수의 특수체형을 가진 사람이나 노신사들이 몇 개 남지 않은 양복점의 명맥을 이어가고 있어 청주에 너 댓 군데에 지나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요즈음 다시 개인의 취향과 개성이 존중 되면서 복고풍의 맞춤 양복에 관심을 갖는 분들이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요즈음 새로 생긴 맞춤 양복점들은 이지 오더(easy order) 시스템 양복라고 해서. 치수를 재고 원단을 선택하면 공장에서 제작 해 주는 방식이라고 하니 순수한 맞춤 양복이라고 하기엔 좀 그렇다.

 

 사라져 가는 것이 양복점뿐이겠는가. 그 많던 맞춤양장점도 거의 없어졌고, 맞춤구두집도 거의 사라지고 기성화가 판을 친다. 옷은 사람의 몸과 영혼이 담긴 그릇이 아닐까.

 

 미래의 양복은 어떻게 발전 할까, 이제 인공 지능(AI)이 발달 되고 3D 프린터가 기업에서 학교를 거쳐 소비자의 집으로 보급될 날이 머지않았다. 자신이 디자인 한 옷을 3D 프린터가 찍어내는 날이 올 수 도 있지 않겠나.

 

 애용하던 사람은 갔고 크게 쓸 일도 없을 것 같은 옷솔을 다시 그 자리에 걸어 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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