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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귀비 꽃의 추억 / 이 종 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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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대명화 2019. 9. 7. 2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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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귀비꽃의 추억  / 이 종 옥 

 

   옛날 인도에 아름다운 꽃밭을 가진 왕자가 있었는데, 어느 날 다리에 금실을 단 예쁜 새가 날아 왔다. 왕자는 그 새를 사랑으로 길렀으나 울지를 않았다. 어느 날 밤, 꿈에 한 공주가 나타나서 자기는 ‘아라후라’의 공주이고, 그 새는 자기의 새이며, 새 이름과 자기 이름이 같고, 자기 이름을 아는 사람과 결혼을 한다고 하였다. 그리고 그 새는 자기 정원에 있는 어떤 꽃을 보아야만 우는데 그 꽃 이름도 공주 이름과 같다고 하였다. 꿈에서 깨자 왕자는 새벽에 아라후라의 궁전으로 몰래 들어가서 생전 처음 보는 꽃을 꺾어 가져와 새에게 보여 주었다. 새는 “파파벨라! 파파벨라!”하고 울었다. 공주의 이름은 파파벨라였던 것이다. 그리하여 왕자는 아름다운 공주와 결혼을 하게 되었다. 그 후 왕자는 파파벨라 공주와 결혼하여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다. 인도의 국화이기도 한 이 ‘파파벨라’꽃은 ‘양귀비꽃’이라고도 한다.
   옛날 8.15 해방 전, 을사보호조약이후 한일합방시절 때이다. 현재는 양화대교가 있고 자유로가 생기고, 아파트와 문화의 공간으로 가득 채워져 역사의 현장은 전혀 찾아 볼 길이 없는 곳으로 변모되어 있다. 지금은 가고 안 계시지만 아버지로부터 생전에 들은 슬픈 이야기다. 식민지 시절에 일본사람들이 우리에게 얼마나 많은 고통을 주었는지 지금 젊은이들은 모르기 때문에 알리고 싶다.
   그때 농민들은 자기 마음대로 농사도 못 지었다. 일본사람들이 강제로 양귀비꽃을 심게 해 그것이 꽃이 피고 열매가 열면 줄기에서 진[아편]을 채취하게하고, 모아지면 공출을 해간다. 몇 푼도 안 되는 대가를 주고 말이다. 농민들은 가난에서 벗어나기가 어려워 진을 채취할 때마다 몰래 조금씩 빼서 뭉쳐 두었다가 소공동 중국촌으로 천둥치는 가슴을 부여안고 팔러갔다고 한다. 생활에 보탬이 될까하고 말이다. 그러나 아버지는 그러한 얘기를 듣고는 마음만 아플 뿐 말릴 수도 없었다 한다. 그때 그곳 농촌에는 밭에서 나는 감자나 채소가 아닌 양귀비 꽃밭이 아름다워야 할 꽃은 아름답기는커녕 슬픈 가시나무 밭이었으리라!
   아편을 전쟁에 이용을 했던 것이다. 군인들에게도 아편을 복용시켜 전쟁에서 총탄을 가리지 않고 용감하게 싸우게 하는데 이용했던 것이다. 그것이 바로 ‘가미가제’라는 특수훈련을 받는 젊은 나이로 구성된, 군비행기에 무기를 싣고 빌딩이며 배를 함락 시킬 때, 자살폭격을 하는 훈련병이다.
   상상을 해 보라. 요즈음 같으면 그 양귀비 꽃밭이 얼마나 아름답고 환상적일까!
   오월 어느 날이었다, 용인에 있는 모 랜드에 청밀 밭에 양귀비꽃이 촘촘히 섞여있는 꽃밭을 보았다. 초록 물결에 울긋불긋 양귀비꽃들이 얼굴을 내민 모습이 얼마나 아름답던지 사진작가들까지 많이 모여 들었다. 우리도 밀릴세라 그 곳에 들어가 사진을 찍었다.
   환경에 따라 아름답게도 볼 수도 있고 슬프게도 볼 수 있는 것이다. 그야말로 지옥과 천당의 차이 같기도 하다. 그때가 지옥이라면 지금은 천당이 된 것이다. 그래서 그 이름도 ‘양화교楊花橋’라 했던가? 지금의 합정동과 망원동이란다. 한강이 말없이 흘러가는 강가에 이렇듯 애환의 목소리가 잠겨있을 줄 누가 알겠는가?
   세월이 흘러 갈수록 그 이름도 거룩한 양화교 근처는 한강의 르네상스 프로젝트란 거대한 명분으로 탈바꿈하려는 모습으로 꿈틀거리고 있다.
   그때 그 백성들의 원한이 이제야  명분다운 이름으로 하늘을 가르며 소리쳐 승화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늘에서 꽃비가 내린다.
무지개 빛 꽃이 내린다.
금의환향 하며 내린다.
한강의 기적을 안고 꽃나비가 날아든다.
양화교가 흐느낀다.
아리수가 기쁨의 눈물로 출렁거린다.
솔솔 바람이 얼굴을 간질이며 속삭인다.
때가 왔노라
예쁜 양귀비의 혼령이 춤을 추며 무지개 타고서…….

------   졸시 <양화교>

 

   야생화의 성품은 은은하고 잔잔하게 우리에게 다가오지만, 천하일색 양귀비라 이름 붙어서이지, 실제로 양귀비꽃을 보니 관능미와 화려함의 극치다. 따가운 햇살에 등줄기에 땀이 흐른다. 관상용으로 가꾼 양귀비였지만 눈과 가슴은 환각상태가 되고 만다. 자신이 피어날 시간에 제 몸의 가장 뜨거운 열기를 밀어 올리는 세상의 무수한 꽃들을 생각하면 고마운 생각이 든다. 다가서면 관능이고 물러서면 슬픔이다. 아름다움은 적당한 거리에만 있는 것. 너무 가까워도 너무 멀어도 안 된다. 어두운 사랑처럼 활활 타오르는 꽃, 그 아름다움은 관능과 슬픔이 태워 올리는 빛이다. 만개한 양귀비 꽃밭을 보며 나는 숨을 죽이고 바라본다. 저 오색 빛의  꽃잎은 명주고름처럼 얇고 부드럽고 빛은 곱고 매혹적이다. 내 숨소리가 착한 꽃들이 달고 있는 주머니를 흔들어 터트려 버릴까 두려워지기 때문이다. 그 옛날 그 곳의 양귀비꽃을 생각하면서 그리움과 안타까움을 회상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