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자반 / 이상국
한 밤중 아내가 콩자반을 조린다. 가스레인지 위에 까만 냄비, 까만 냄비 안에 까만 콩들이 불리고 뒤엉키고 삶아지며 이리저리 몰리고 타넘고 궁굴리며 꿈틀거린다. 저게 살아 움직이는 거지, 아마. ··· 봄이 오는가. 눈 내리는 지하철, 검은 코트와 검은 부츠와 검은 미니스커트로 막 들어와 단정하게 부츠를 닦던 여인의 스타킹 근처에서 맴도는 손가락 끝에서, 한 치수 작은 블라우스로 팽팽한 몸매하며 넓적다리 위로 살금살금 기어오르는 봄의 스커트 자락 끌어내리는 안간힘. 그녀의 끌어당기는 몸짓만으로도 농익은 봄. 봄 한 철의 강인한 힘으로 지하수 끌어 올리고, 보랏빛 꽃을 피워 여름 땡볕으로 탱탱한 열매 익혀 가을 어느 날, 푸르던 잎 갈색으로 떨어뜨리고 나니 꽁꼬투리 터진다. 딱, 따다닥 따악··· 딱! 우주 공간의 중심 콩꼬투리에서 지구 한가운데로 떨어지는 한 알의 콩. 가을 하늘만큼 푸르디푸른 가스레인지 가스 불 꺼진다. 멸치 몇 마리, 참깨 조금, 물엿 두어 술이 섞여 뒤척여진 뒤··· 싱크대 위에 검은 콩자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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