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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어오는 바람처럼 사랑하기 / 조 희 정

추천우수 수필

by 장대명화 2019. 8. 30. 0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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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어오는 바람처럼 사랑하기 / 조 희 정


                                                                                                                   
 바람은 불어도 좋으냐고 묻지 않는다. 어디로 불 것인가 정해놓은 바도 없다. 예정되어 있던 사랑이 아니었다. 그래서 더욱 깊고 순수했다....계획된 사랑이 아니므로......세상에 흔하고 흔해빠진 그 이름......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그 이름...사랑.
  내 나이 열여덟, 그 겨울 써내려간 일기장의 세 번째 페이지에 있는 글이다. 사랑, 사랑, 사랑이 무엇일까? 지금 그 사랑이라는 것이 흔하고 흔한 이름이라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텔레비전을 틀어도, 라디오를 켜도, 책을 봐도 온통 사랑타령뿐이니, 난 모두가 사랑에 빠져있는 사랑공화국에 살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문제는사랑이라는 이름을 가진 그 많은 것들 중 진짜 사랑이 있는가 하는 점이다.
  우리는 무엇이든지 나누어 이름 붙이고 구별하는 것을 좋아한다. 사랑 또한 여러 가지로 나누고 다른 의미를 부여한다. 나라에 대한 사랑, 가족에 대한 사랑, 연인에 대한 사랑, 친구에 대한 사랑 그리고 나 자신에 대한 사랑까지진정한 사랑은 하나라고 하는데 그렇다면 저 많은 사랑의 이름들은 무엇인가.
  난 항상 나 자신에 대한 사랑이 너무나 커서 다른 이를 사랑할 수 없다고 생각해왔다. 그 누구보다 나를 사랑하기에 나에게 상처를 주거나 해를 주는 사람은 사랑할 수 없고, 사랑해서도 안 된다고 여겨왔다. 그런 이유로 만나다가 헤어진 사람도 있고, 인연의 시작을 아예 거부해버린 사람도 있다. 자존심 하나에 수 년 동안 이어온 만남에 종지부를 찍는 연인들, 노력을 하고 또 하다가 한계를 느껴 상대방을 포기하는 많은 사람들 또한 이런 나와 같은 생각일 것이다. 그렇다면 그것은 진정한 사랑이 아닐 터... 우리는 진짜 사랑을 알지 못한다. 머리에서 의식하고 다짐해서 만들어낸 노력과 의지가 아닌... 가슴 속에서 우러나오는 열정, 그것이 사랑이다

  사랑을 정녕 아는 자는 노력하지 않는다. 사랑을 아는 자는 욕망으로 살지 않고 따라서 고통스러워하지 않는다. 아무런 조건과 계산 없이 아낌없이 주는 나무, 어떤 대가도 바라지 않고, 생색내지 않으며 향기를 전해주는 들꽃. 그것이 사랑이다.
부끄럽지만 이십 오년간 내 가슴에는 사랑이 없었다. 혹시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순수한 어린 시절, 바싹 말라버린 뜨거운 아스팔트에 잘못 들어선 청개구리 한 마리를 그 작은 손으로 냇가에 풀어준 일이 있다면 그것이 사랑일까? 그러나 지금 내 기억 속에는 그 어떤 사랑도 존재하지 않는다. 항상 분명한 이유를 갖고 누군가를 만나고 좋아했다. 그 만남에 여러 가지 조건을 걸어놓고, 그것으로 그 사람과의 관계에 유통기한을 정해놓았었다. 정말 이건 사랑이었으리라 믿고 싶었던 가족과의 관계에서도, 회고해보면 아주 사소한 일로 노여워했던 실망스러운 기억을 접하게 된다

  다른 건 몰라도 이것 하나만은 최고라고 자부했던, 나 자신에 대한 사랑도 생각해보면 고통스러운 채찍질과 위로의 연속이었다. 난 사랑이라는 가면을 쓴 채 내 자신을 채찍질하며 몰아쳐왔다. 남들보다 더 잘하라고, 그 누구보다 더 많이 갖고, 더 많이 누리라고그렇지 못할 때는 어리석다며 스스로를 미워했고, 조금이라도 가시적인 성과가 보일 때면, 흡족해하며 보상하고자 했다. 그리고는 그것을 스스로 자기애라고 이름 지었었다. 더 빨리 달리라고 뒤에서 내 엉덩이를 물어뜯던 사냥개도, 눈앞에 당근을 달아 나를 유인했던 사냥꾼도 바로 나 자신이었다.
  그래서일까 항상 즐겁게 살고자 했던 난 고뇌와 방황으로 살아왔다. 즐겁게, 행복하게 살자고 거울을 보며 다짐을 하는 순간, 그 또한 의지와 노력이라는 이름으로 스트레스가 되어버렸다. 사랑이라 여겨왔던 모든 것들, 그러나 사랑이 아닌 것들을 내 안에서 털어버리고 나니 가슴에 남은 것이 거의 없다. 조국에 대한 애정은 나의 소속에 대한 욕심이었고, 연인에 대한 사랑은 내가 원하는 조건의 충족이었으며, 심지어는 나 자신에 대한 사랑 또한 스스로를 몰아치는 고통의 보챔이었다.
  가슴에 남아있는 아주 작은 무언가, 그것이 사랑일까. 용인 시장 구석에 쪼그리고 앉아 손톱에 흙 때가 까맣게 끼도록 도라지를 다듬는 할머니를 보고, 콧물 묻은 돈을 털어 그 도라지를 사다가 좋아하지도 않는 도라지 반찬을 해달라고 어머니께 내밀었던 10살의 기억, 그것은 사랑일까? 내 안의 어딘가에 나도 모르는 사랑의 희망이 한 오라기라도 있는 것일까지금까지 사랑으로 살지 못했다 하더라도, 앞으로는 사랑으로 살고 싶다. 어디로 불지 묻지 않고 불어가는 자람처럼, 갈 곳과 방향을 정해놓지 않은 바람처럼 사랑하며 살고 싶다. 계획하고 의도하지 않은 진짜 사랑을 찾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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