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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월간『수필과비평』[2019년 1월호, 통권207호 I 세상 마주보기] 작은 진실의 행복 - 유혜자

추천우수 수필

by 장대명화 2019. 2. 19. 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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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에서 얻은 작은 진실을 전체에 대한 해석으로 잘못 알게 되어도 남에게 폐만 되지 않는다면 그것은 삶의 무늬로 장식될 것이다. 저마다 나은 삶을 향한 역정, 비현실적인 판타지에 치우치지만 않는다면 “인생은 살기보다는 차라리 꿈꾸는 것이 낫다.”고 한 마르셀 푸르스트의 말(<꿈꾸는 인생>중)처럼 작은 진실의 행복을 누리며 불투명한 내일을 부지런히 밝혀갈 일이다."


 




   작은 진실의 행복      -    유혜자


   미국여행 때 버지니아주에 있는 루레이 동굴에 갔었다. 동굴 안은 조각예술품 같은 갖가지 형상의 종유석鐘乳石과 석순石筍들로 꾸며 놓은 듯하고 거울보다 맑은 호수들도 있어서 경이로웠다. 그중 동굴 내에서 제일 큰 ‘꿈의 호수’가 인상 깊게 남아 있었다.
   그런데 최근 TV의 ‘세계의 비경’에서 소개된 루레이 동굴을 보면서 뜻밖의 사실을 확인했다. 시력이 약한 처지에 시간에 쫓겨 ‘꿈의 호수’를 얼핏 보아서 그동안 잘못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천장에서 내려오는 종유석들이 흔들리지 않는 수면에 비친 것을, 나는 똑같은 모양을 한 석순이 바닥에서 위로 올라온 것들로 알고 신비하게 생각했었다. 위에 있는 종유석들이 아래의 호수에 반사하여 생긴 현상인데, 밑에 또 하나의 풍경이 있는 줄 알았던 것이다.
   메마른 일상에서 여행을 앞두고는 무한히 상상력에 빠지기가 일쑤였다. 파리여행을 앞두고는 영화 <파리는 안개에 젖어>장면보다 뛰어난 기대와 상상을 했고 오스트리아 여행을 앞두고는 도나우강의 물결보다 더욱 푸르고 낭만적인 꿈도 꾸지 않았던가. 현실은 상상보다 못한 경우도 있었지만 실망 대신 무한한 상상을 했던 자신이 대견하기도 했다. 루레이 동굴에도 아직도 실제보다 더 화려하고 신비한 곳으로 생각한 부분이 더 많을 것이다.
   작은 빗방울처럼 외롭게 고단하고 긴 여행을 떠나고 싶던 젊은 시절, 가파른 언덕과 경사진 계곡을 지나 부딪치고 멍드는 고생을 감당할 수 있을까 미리 걱정하기보다 바다가 푸른빛으로 반기는 파도를 기대했다. 아니 내가 빗방울처럼 지나는 길에 혼돈에 빠진 이의 창문을 두드리면 소생하여 깨어나는 사람이 있을까, 바라기도 했다. 빗방울은 얼마나 넓고 자유로운 여행을 할 수 있을까.
   물그릇 속에 잠긴 젓가락이 굽어진 것처럼 보이는 빛의 굴절현상이나 물에 반사된 풍경에 대한 착각은 사람과의 관계에서 빚어지는 오해처럼 나쁜 결과를 빚지는 않을 것이다. 자신이 옳다고 믿는 작은 진실들이 전체적인 큰 오류를 범하게 하지도 않았으면 좋겠다.
   그런데 상대방이 내게 대한 착각을 하여 나도 모르게 피해 아닌 피해를 입은 일이 있었다. 선배 PD가 나의 대학교 은사님께 취재를 갔을 때 내 안부를 물으셨다고 한다. “성실하지만 보기와는 달리 술이 아주 세더라.”고 해서 듣기 거북하셨던 은사님이 어느 날 내게 확인 전화를 하셨다. 지금에야 여성들이 술을 자유롭게 마시는 세태여서 큰 흉이 아니지만, 1960년대만해도 부정적으로 여기던 이가 많았다. 직장 야유회에서 부원들끼리 의무적으로 마시라고 술잔을 돌릴 때, 나는 한쪽 구석에 앉아 있었기에 잔이 오는대로 옆자리 동료에게 재빨리 넘겨주곤 했었다. 먼 자리에 앉아 있던 그 선배가 많은 술을 사양 않고 다 마셔버린 것으로 알았던 것이다.
   위와 같은 경우야 다소 불명예스러운 일이었으나, 다른 일로 내 것 아닌 명예를 누린 일도 있었다. 20여 년 전 동명이인 유명 번역가가 국내에 소개한 소설들이 베스트셀러로 인기를 모으고 있었다. 평소에 존경하던 선배님이 문인들이 모인 자리에서 “수필가 아무개인데 번역가로도 활발히 일하는 재원입니다.”고 소개하는 것이 아닌가. 내게 묻지도 않고 매스컴에서 종사하니 외국어에 능통한 실력 있는 번역자를 당연히 나로 여기고 대견하게 느끼셨던 것이다. 한동안 그분께서 유명지에 나를 추천하여 원고 쓸 기회를 주셨던 것도 오해에서 비롯되었다. 어떻든 나는 선망하던 일이었으나 얼마동안이라도 인정받았던 사실에 우쭐할 수는 없었고, 한때 외국어 공부를 하고 싶은 의욕을 갖게 했다.
   살아오면서 사물이나 진실에 대하여 아주 조금 알면서 전부 다 아는 것처럼 인식하고 있는 일이 얼마나 많았을까. 사물이나 현상의 전체를 보지 못하고 일부분에 국한된 것만이 전부인 줄 알고 본질에 대한 흐린 판단을 하며 살아온 일이 많다. 그러나 시선이 닿지 못하여, 총명이 흐리거나 아예 지각이 미치지 못해서 미리 괜한 걱정을 하지 않은 다행스러운 일도 있었을 것이다. 사태파악을 자세히 하지 못하고 있다가 오히려 좋은 결과에 덕을 본 경우는 없었겠는가.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해내어 가나안으로 향할 때, 어려운 과정을 여러 차례 겪어야 했다. 광야에서 오랜 세월을 지낼 때 잘못 판단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불만과 불평이 쏟아졌다. 창조주의 뜻과 미래를 짐작 못한 그들의 불평을 잠재우는 일은 모세의 몫이었다.
   가나안으로 가는 길의 역정, 저마다 나은 삶을 향하는 역정에서 모세 같은 지도자는 없지만, 나은 삶을 꿈꿀 것이다. “진실은 수만 조각으로 깨진 거울인데, 사람들은 내 작은 조각이 전체인 줄 안다.”고 말한 탐험가 리처드 버턴의 “게으름보다 인간을 더 우울하게 만드는 것은 없다.”라는 말을 생각하며 새해를 맞고 싶다.
   여행에서 얻은 작은 진실을 전체에 대한 해석으로 잘못 알게 되어도 남에게 폐만 되지 않는다면 그것은 삶의 무늬로 장식될 것이다. 저마다 나은 삶을 향한 역정, 비현실적인 판타지에 치우치지만 않는다면 “인생은 살기보다는 차라리 꿈꾸는 것이 낫다.”고 한 마르셀 푸르스트의 말(<꿈꾸는 인생>중)처럼 작은 진실의 행복을 누리며 불투명한 내일을 부지런히 밝혀갈 일이다.

출처 : 신아출판사
글쓴이 : 신아출판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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