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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역설인가 / 최 미 자

장대명화 2025. 10. 13. 15:26

                                        삶은 역설인가 / 최 미 자

 

가을날 오후, 빛 고운 단풍나무 길 사이를 걷다가 친구가 말했다.

 

"나는 가을이 너무, 너무 좋아서 싫어."

 

나는 그냥 대답 없이 웃었다. 시리게 맑은 하늘, 쏟아져 내리는 빛살 아래서 나 또한 그런 느낌으로 심란해질 때가 있어서이다. 발끝에 채는 가랑잎들을 허공을 향해 차올리면서 친구는 깊게 한숨을 쉬었다.

 

"이젠 정말 지긋지긋해. 그 사람이 미워 미칠 것 같아."

 

그렇게 말하는 친구의 서랍 속에는 진즉 도장을 받아둔 이혼서류가 잠들어 있다. 건들바람처럼 떠도는 남자를 죽도록 미워한다 말하고는 있지만, 마음 깊은 곳에서는 죽도록 그를 잡아두고 싶어 하는 친구는 끝내 법원에는 가지 않을 것이다.

 

사랑하기에 미워할 수밖에 없고 너무 좋아 싫어지기도 하는 마음, 살면서 만나는 역설과 아이러니는 때로 우리를 슬프게 한다. 빵만으로 살 수 없다는 말의 의미가 빵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사실을 전제로 하는 것처럼, 오래오래 사기라는 덕담 또한 그런 인사를 받을 만큼 이미 오래 살았다는 뜻도 된다. 서양 사람들이 '아이 러브 유'를 남발하는 것도 변수가 많은 세상에서 사랑을 확신하지 못하는 불안감 때문이라 하지 않던가.

 

역설이란 표면적으로 보았을 때는 논리의 모순이지만 그 이면에 이심전심의 공감이 숨어 있는 말이다. 우리가 애송하는 시구詩句중에 '소리 없는 아우성'이라든가 '찬란한 슬픔' 같은 문학적 기교도 논리적으로는 모순에 속한다. 그러나 '소리 없는 아우성'이 어불성설이고 '찬란한 슬픔'이 언어도단이라며 따지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펄럭이는 깃발에서 소리 없는 아우성을 읽어내고, 지는 모란에서 찬란한 슬픔을 건져 올리는 시인의 감수성에 찬탄할 뿐이다.

 

역설은 미학이다. 천봉만악千峰萬岳을 휘돌아 온 물줄기가 두물머리에서 합수合水하여 한강을 이루듯, 서로 상반되는 감정이나 문구들을 미묘하게 조합해 놓은 고차원의 화술이다. 역설은 한 가지 맛밖에 내지 못하는 밋밋하고 싱거운 요리가 아니다. 뜨거운 커피와 차가운 아이스크림이 어우러진 '비엔나커피'처럼 절묘하고 환상적인 풍미로, 초밥 속에 숨어 있는 고추냉이처럼 톡 쏘는 맛으로 무디어진 감성을 자극한다.

 

감미로우면서 애틋하고 짜릿하면서 안타까운 사랑의 감정을 '황홀한 고행苦行이라 표현한 작가가 있다. 황홀한 고행이라..... 그 표현이 그야말로 황홀해서 제아무리 고행길이라 해도 다시 한번 그 길이 가보고 싶어진다. 그 또한 황홀한 망상일 뿐이로되, 그보다 더 기찬 말로 사랑의 설렘과 아릿함을 함축해낼 재간조차 나에게는 없다. 그러나, 아니, 그러기에 나는 역설이 좋다. 이상과 현실이, 이성과 감정이, 끝없이 대립하는 삶의 안팎을 꼬고 뒤집고 슬쩍 비틀고, 때로는 설핏 꼬리를 내려가며 표현해 내는 기지와 재치가 부럽다.

 

저물녘 빈 들에서 노을을 바라볼 때, 바람에 휘날리다 우수수 패대기쳐지는 가을 잎들을 만날 때마다, 나는 아름다움이 슬픔과 통한다는 가슴 찡한 역설을 실감하곤 한다. 차고 이지러지기를 되풀이하는 달이나, 구름이 되고 비가 되고 다시 또 수증기로 변하는 물의 순환을 떠올려볼 때에는, 변하는 것만이 영원할 수 있다는 역설적인 순리를 새겨보기도 한다. 아리송하고 추상적인 형이상形而上의 가설仮說들이 심장에 와 꽂히는 그런 순간엔, 막혔던 문 하나가 돌연 열리듯 가슴 한가운데에 느낌표가 찍어진다. 그러나 '텅 빈 충만'이라든가, '순간 그 자체가 영원'이라는 말처럼 아직도 내게는 물음표로 남아 있는 알쏭달쏭 한 역설이 더 많다. 그것들을 내 것으로 보듬어 안기에는 생각도 경험도 턱없이 모자란다.

 

삶이란 본디 죽음을 향해 한 걸음씩 나아가는 일일뿐이라는 어느 비관론자의 역설力說이 아니라도, 살면서 만나는 역설逆說의 의미를 어느 만큼 이해 하느냐로 정신의 성숙을 가늠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사랑의 반대가 미움이 아니듯, 삶의 반대가 죽음이 아니며 죽음 또한 삶의 한 자락일 뿐이라는 종교적 역설까지 이해할 수 있다면 일상의 삶과 깨달음의 경지가 크게 달라지지도 않을 것 아닌가.

 

못다 한 열정이 미련으로 남을까 봐 스스로를 사르고 있는 가을 나무들이 오후의 햇살 아래 선홍빛으로 빛나고 있다. 내년 봄에 나올 새 잎을 위하여 자리를 양보해야 하는 저 절정의 나무 잎새에게는, 죽지 않으면 거듭날 수 없다는 생명의 이치가 아직은 불합리한 섭리일지 모른다. 사랑하지만 헤어져야 하는 뼈아픈 현실을 도무지 인정하려 들지 않는 내 친구처럼.

 

빈 가지 끝을 바라보고 있는 친구의 옆얼굴에 그늘이 내린다. 그 그늘이 내 안으로 번져온다. 그의 딱한 현실을 안쓰러워하면서도 먼 불 보듯 물러앉아 제 생각에 빠져있는 내 냉정함과 무기력함이 나를 조금 죄스럽게 한다. 이런 나야말로 따뜻한 듯 차갑고 선한 듯 교활한 역설적 존재가 아닐까 싶다. 아니면 삶이 역설적인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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