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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보행 / 황 선 유

장대명화 2025. 8. 12. 05:28

                                            아름다운 보행 / 황 선 유

 

별일 없으면 매 주일 아침 교회 옆 카페에서 카페라테를 주문한다. 별일 없다면 그 시간에 있을 낯익은 바리스타는 맨 첫날의 양해를 기억하고, 테이크아웃 종이컵을 들고 매장 안에 잠깐 앉는 것을 묵인한다. 일요일 아침 그 시간의 카페는 한적하다. 간혹 아이들 간식을 사러 주일학교 부장 권사님이 들르기도 하고, 아침 식사 거른 아내를 위해 빵 고르는 장로님을 만난 적이 있을 뿐.

 

더운 카페라테 한 모금을 마시며 밖을 본다. 창을 사이로 안과 밖의 상황은 사뭇 다르다. 밖은 안의 은밀함을 알 수 없으나 안에서는 밖이 투명하다. 물론 저대로의 가시거리와 시야각 차이는 있을지언정 말이다. 어느 글에선가 이렇게 카페에 앉아 바깥세상 내다보는 것을 일러 매우 경제적인 관상觀賞이라 적은 걸 읽고는 어찌 이리 절묘한 표현인가 그랬다. 어찌하든 이 시간을 놓치지 않고 창밖의 그를 기다린다.

 

그를 처음 만난 것은 교회 내 소망대학이라 이름한 어르신 모임에서였다. 식사 도우미였던 나는 부엌에서 단지 보기만 했을 뿐 말을 걸어 본 적은 없다. 한 봉사자로부터 그가 미국에서 역이민했다는 걸 들었다. 그런 귀띔이 아니라도 정갈한 차림의 예의 있는 말씨가 여럿 가운데서 눈에 띄었다. 옆에 바짝 붙어 선 그의 아내는 말없이 웃기만 한다. 밥도 커피도 그가 아내에게 갖다준다. 산부인과 의사였다는 아내가 경증 치매를 앓는단다.

 

다시 그를 만난 것은 코로나 역병이 끝나고 예배가 부활한 후 어느 주일 아침의 교회 가는 길에서였다. 이런저런 형편으로 소망대학이 중단되어 더는 그를 볼 일도 없으니 까마득히 잊고 있던 터다. 저만치 앞에서 가방을 어깨에 비껴 맨 그가 아내의 옷매무새를 고쳐주고 있다. 흘러내린 옷을 끌어 올려 한쪽 어깨에 드러난 브래지어 끈을 가리고 허리춤에다 윗옷을 바로잡아 준다. 어린 딸에게 그러는 엄마처럼 마주 보았다가 다시 돌려세워서 끝마무리한다. 손을 잡고 걸음을 맞추어 나란히 걷는다. 차분한 일요일 아침나절, 그들 자신은 모를 그들 아름다운 보행이 정녕 울먹하다. 나는 간격이 좁히지 않을 걸음으로 뒤를 따라 걸었다.

 

그날 풍경 이후로 그는 나에게 예사롭지 않은 관상이 되었다. 예사롭지 않으니 주일 아침의 거르고 싶지 않은 관상이 되었다. 걸음을 맞추어 걷는다는 것이 어떤 관념이나 막연한 추상에서 얼른 걸어 나와 바로 눈앞의 현상으로, 수사가 아닌 실재로 성큼 이입했다. 밑뿌리 탄탄하여 미더운 언어가 되었다. 경건한 문장이 되었다.

 

보리는 한 TV 예능 프로그램에서 봤던 배우 문소리 부부의 반려견이다. 종은 모르겠으나 덩치가 큰 보리는 다리를 절뚝거리고 또 한 마리 반려견은 몸집이 작고 날랬다. 부부가 반려견을 데리고 산책할 때였다. 날랜 강아지가 저만큼 앞서가다 말고 돌아서서 느린 보리를 기다린다. 얼마 못 가서 이내 뒤처지는 보리를 또다시 멈춰 서서 기다리곤 한다. 사람 사는 이야기가 아니어도 좀체 잊히지 않는 장면이다.

 

남자는 내 옆집에 사는 일본인이다. 본인에게 일본인이라 직접 들은 적은 없지만 먼저 살던 집주인이 그리 말해주어 그런가 한다. 이사 오던 날 남자가 작은 케이크를 들고 인사하러 왔는데 정작 우리 주위에서는 사라져가는 풍속이 아니런가. 단지 그 일을 근거로 하여 남자를 일본인이라 확신한다. 선입견인지 얼굴 생김이 우리와 좀 달라 보이기도 하다. 복도나 승강기 안에서 만나면 친절하게 인사를 나눌 뿐이다. 그 순간 남자의 케이크가 생각나서 좀 멋쩍다. 남자의 아내는 반 발짝이나 뒤로 반쯤이나 몸을 가리듯이 하고는 남자의 팔을 잡고 있다. 매번 고개를 숙이고 있어 얼굴을 똑바로 본 적도 없다. 한국말이 서툴러 그러려니 무심히 넘겼다. 여러 달이 지나고 동천 산책길에서 부부를 만났을 때야 왜 남자의 팔을 잡고 반 발짝 뒤에 걷는지를 알 것 같았다. 아내가 다리를 절었다. 남자는 아내의 불편한 걸음에다 자신의 걸음을 맞추어 반 발짝씩 앞서 걷는다.

 

걸음을 맞추어 걷는다는 것의 환유랄까 속뜻을 비로소 안다. 그것은 서로가 서로에게 마음을 맞춘다는 것, 서로 스며들고 서로 수용한다는 것, 궁극은 삶을 맞추어 간다는 것이다. 누구와도 나란하지 못하고 내 속도로만 걸으며 옆도 뒤도 볼 줄 몰라 서툴고 조급했던 내 모습이 스친다. 삐거덕삐거덕 불협화음으로 혼란하고 불안했던 겹겹의 날들을 뒤돌아본다. 달리 묘수 없는 아득한 흔적들이 슬프다.

 

달포나 전에 만난 그들은 의외였다. 그새 표나게 꾸부정하고 걸음까지 휘청해진 그를 치매의 아내가 오히려 부축하며 걷는 게 아닌가. 멀찍하니 뒤따라가다 말고 길 가운데 멈춰 섰다. 그날따라 우중충한 날씨 탓인지 더 멀찍해져 가는 그들 천천한 걸음걸음이 눈 안에서 뿌옜다. 그때였다. 일순간 전복되었을 팽팽한 그의 젊음이 담 결린 듯 우리했다. 필시 만개한 꽃으로 누렸을 그의 전성기를 미루어 그를 대신하여 아렸다. 별빛 같은 생의 정점에서 사다리를 넘어 타고 내렸을 그의 허무가 스멀스멀 옮아왔다. 달리 없을 막다른 방책인 양 두 팔로 내 몸을 안아 가만 쓰다듬는다. 무어 나아질 거는 없다. 아무렴 세월이 가면 꽃은 시들어 접고 잎은 퇴색하여 바래며 젊음은 이울어 사그라진다. 엄연하고 쓸쓸한 만고의 섭리임에야. 그의 지나온 날들은 다 평탄만 하였을까. 다시 생각해도 깊은 웅덩이에 빠진 듯 아찔하고 기막힌 순간은 없었을까. 어찌든 산굽이처럼 굴곡진 길을 다 지나서 늙고 지친 그가 자신을 부축하는 아내와 걸음을 맞추어 걷는다.

 

카페라테가 반 넘어나 줄었다. 이윽고 창밖에 그가 보인다. 나는 조용하고 나지막하게 숨을 들이쉬며 자리에서 일어선다. 오늘 아침 치매 앓는 아내와 나란히 걷는 그의 시간은 더 얼마만큼 허락될까. 그가 아내의 손을 잡고 걸음을 맞추며 걷는 동안 찬란했을 지난 생의 무늬는 저녁노을로 어리겠다. 부디 아팠던 기억마저 곱게 물들기를. 그를 관상하는 나 또한 그러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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