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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린 말, 빠른 행동 ㅡ 김남식

장대명화 2010. 12. 18. 06:24

                                                  느린 말, 빠른 행동/김남식

 

 "아버지 돌 굴러가유~ ……."어?`~ 꽥!"

  이는 충청도 사람의 말과 행동이 느리다 하여 놀려댈 때 흔히 비유하는 말이다.

 실제 상황이면 "아버지! 저 산 위에서 돌이 굴러 내려오니 빨리 피하십시오."라고 길게 말하는 동안 "어?~ 꽥!~" 소리를 지르는 사이도 없이 숨을 거두고 말 것이다. 정말로 이런 사태가 발생한다면 "돌 굴러유~" 하고 짧게 말하고 이말 따라 신속하게 피한다. 말은 느린데 어떤 상황이 닥치면 의외로 빠르게 대처한다는 평가를 받는 다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말도 그렇게 느리다고만 할 수 없다. 간단한 예를 한 두개 들어 보자. 대부분 사람들은 어렸을 때, "이 콩깍지가 깐 콩깍지인가, 아니면 안 깐 콩깍지인가." 라는 것을 빨리 말하는 시합을 해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21글자나 되는 까다로운 말을 빠르게 발음하다 보면 당연히 더듬거리게 된다. 허나 이 지역 사람들은 '깐 겨~. 안 깐 겨~' 하고 단 5개의 글자로 간단히 표현해 버린다.

 "너는 보신탕(개)을 먹을 수 있느냐." 는 말도 "개 혀?~"하면 되고 "응, 나는 보신탕을 먹을 수 있어." "나는 그것을  먹을 수 없어." 라고 답을 할 때도, "개 혀~" 또는 "개 안 혀~" 라고 짧게 대답하면 된다. 이 얼마나 간결하고 깔끔한 표현인가. 이래도 느려 터지다고만 비웃을 수 있는가.

 행동하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산 위에서 돌이 굴러 오는 기미가 보이면 아들이 알려주기 전에 아버지는 벌써 알아차리고 다른 곳으로 재빠르게 옮겨서 유유히 톱질을 한다. '꽥' 소리는 커녕 "천안삼거리 흥!"하고 타령을 부른다며 비웃는 이들에게 빗대어 자랑을 한다.

 사업을 하는 친구에게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 충청도 사람에게 융숭한 대접을 하고, 추진할 사업의 내용을 상세하게 설명하면서 협조를 요청했는데 반응이 없었다. 밤새워 설득을 했는데도 묵묵부답인 채 두 눈만 껌벅거리고 있어 무척 답답했다. 중대하고 긴급한 사안이라 반듯이 승낙을 받아야 할 입장이어서 계속해서 졸라댔다. 새벽에 이르러서야 문을 슬그머니 열고 나가면서 "글쎄유.~ 더 좀 생각해 보고유.~"라고 하더라며 혀를 내둘렀다.

 비록 상대는 상황이 다급해서 그럴지 모르겠으나, 요청을 받는 입장에서는 쉽사리 결정해서 일을 그르치게 되면, 자기나 상대 모두가 문제 될 수가 있다. 전후좌우를 두루 살핀 후 심사숙고 해서 단안을 내려야 하기 때문에 그렇게 뜸을 드리는 것이다. 빨리 먹는 떡이 체하기 쉽고, 서두르는 일 또한 잘못될 확률이 높은 법을 익히 알고 있음이다.

 어느 중견 정치인이 방송 대담에서 '멍청도 핫바지'라는 말을 써서 점잖은 이 지역 사람들이 일제히 들고 일어난 일이 있었다. 무식하고 어리석은 사람으로 낮잡아 이르는 말을 함부로 하여 그만 화를 자초한 것이다. 급기야는 방송사에 나와 정중하게 공개 사과를 하는 등 혼쭐이 났다.

 얼마 전 행정중심 복합도시 때문에 전국이 떠들썩했다. 어찌 보면 이것도 이 지역 사람들을 얕잡아 본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중대한 국책사업을 선거에 이용하여 한 건 해먹었다며 거드름 피운 대통령 속은 어떻게 생겼을까.

 다음 사람도 똑같은 절차를 밟아 당선된 후에, 수십 차례 원래 세웠던 방안대로 추진 하겠다고 국민들 앞에서 수없이 약속해 놓고서도, 어느날 갑자기 핵심을 뺀 수정안을 불쑥 내밀엇다. 얻을 수 있는 이익이나 예견되는 문제점의 해결방안은 무엇인지를 구체적으로 알려주지도 않은 채 밀어 붙였다. 이것 받아 먹으면 더 보태서 이것 주고 저것도 준다는 식으로 으르고 뺨을 쳤다.주민들마저도 패를 가르고, 다른 지역 사람들까지 역차별을 당한다며 가세하는 상황까지 이르렀다.

 천혜의 풍광과 기름진 땅에서 대대로 평화롭게 살아 오다가 쫓겨 난 원주민들의 설음과, 불안에 떠는 인근지역 사람들의 고통 소리는 아예 안중에도 없었다. 마침내 빗발치는 여론에 밀려 결국 선거에서 패배하고 몰아가던 수정안도 부결되었다. 그런 상황인데도 관료들은 전 정부에서 윤곽을 정해 놓은 대학과 대기업, 그리고 과학 밸트마저 유치가 어렵다며 으름장을 놓았다. 자기들이 내미는 사탕을 받지 않았으니까 이미 주기로 한 과자까지도 못 주겠다는 식의 괴상한 논리를 핀 것이다. 만약 다른 지역사람들에게 이렇게 대했다면 무슨 꼴을 당했을지 자못 궁금하다.

 만만하게 볼 사람들을 그렇게 대해야지, 대쪽 같은 기개와 꿋꿋한 자존심을 지키며 살아 온 양반들의 후예를 이런식으로 취급해서는 안 된다.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하고 굼뱅이도 기어갈 재주가 있다는데, 하물며 명철한 선인들의 얼을 간직하며 살아온 사람들에게 어찌 그럴 수가 있단 말인가.

 

 '말은 느려도 행동은 빠르다'는 말을 깊이 새겨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