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의 침묵
아내의 침묵
하루는 어떤 부인이 성 빈첸시오 신부를 찾아와 수심이 가득한 얼굴로 말했다.
"신부님, 저는 더 이상 남편과 살지 못하겠습니다. 그 사람의 신경질은 지나치다 싶을 정도를 넘어섰어요. 어떻게 하면 우리 가정이 다시 화목해질 수 있을까요?"
빈첸시오 신부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입을 열었다.
"부인, 우리 수도원 앞뜰에는 작은 우물이 하나 있습니다. 수위에게 가서 그 우물물을 좀 얻어 가십시오. 그리고 남편이 집에 돌아오면 그 물을 얼른 한 모금 입에 머금으십시오. 그러나 결코 삼켜서는 안 됩니다. 그러면 놀라운 일이 일어날 겁니다."
부인은 신부의 말대로 수도원의 물을 얻어 가지고 집으로 돌아갔다.
그날 밤 늦게서야 귀가한 남편은 또 여느 날처럼 부인에게 불평과 잔소리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집안에서 놀고먹으면서 살림도 제대로 못산다느니, 피둥피둥 살만 찐다느니, 아이들을 제대로 가르치지 못해서 저모양이라느니‘ 등등. 가만히 듣고 있으면 울화통이 터져 그대로 맞대응을 해주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전날 같았으면 부인도 마구 달려들었겠지만, 그녀는 빈첸시오 신부의 가르침대로 성수를 얼른 입안 가득히 물었다. 그리고 물이 새지 않도록 입술을 꼭 깨물고 있었다.
한참을 떠들던 남편은 말없는 아내를 잠시 바라보고는 결국은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그날 밤 이들 부부는 더 이상 다투지 않고 무사히 밤을 보낼 수 있었다.
며칠 후 남편은 또다시 잔소리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집안을 제대로 치우지 않느니, 반찬이 맛이 없느니 등등. 화가 난 부인은 그대로 다 버려둔 채 나가버리고 싶었지만 다시 신부님이 일러준대로 얼른 성수를 한모금 입에 물었다. 그리고 물이 목으로 넘어가지 않도록 꼭 입을 다물고 있었다.
그러자 한참을 떠들던 남편의 소리가 점차 잠잠해졌다. 번번이 기도하는 듯한 표정으로 말없이 앉아있는 부인의 모습에서 왠지모를 양심의 가책이 밀려왔다. 그날부터 부인은 남편이 신경질을 부릴 때마다 그 성수를 입 안 가득히 머금곤 했다. 그것을 여러 차례 반복하는 동안 남편의 행동은 눈에 띄게 변하기 시작했다. 신경질도 줄어들었고 오히려 부인에게 친절하게 대하기 시작했다.
부인은 남편의 달라진 태도에 무척이나 기뻐하며 신부를 찾아가서 감사의 인사를 드렸다. 그러자 빈첸시오 신부는 아주 부드러운 미소를 머금으며 이렇게 말했다.
“부인, 기적을 일으킨 것은 수도원 앞뜰의 우물물이 아닙니다. 바로 부인의 침묵이지요.
당신의 침묵이 남편을 부드럽게 한 것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