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길
인생 길 / 김 홍 은
가을이 깊어 가는 조용한 오솔길을 홀로 걷는다. 많은 나무들이 곱게 물들어 자신들의 내면을 나타내고 있다. 계절은 어느 때 보다도 자연과 인간을 더욱 조화롭게 만드는 것 같다. 그리도 무성하게 푸른 잎으로 싸여 있다가 나목(裸木)으로 서있는 쓸쓸함에 어쩌면 우리네 인생의 저마다 모습을 보는 듯하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흔히 어떤 사람을 지칭하다보면 대개는 그의 인품을 말하게 된다. 그 총칭으로 착한 사람을 ‘법 없이도 사는 사람’으로 표현한다. 착하다는 의미는 사회생활에 있어서 아름다운 마음씨를 담고 사는 사람이다. 법 없어도 산다함은, 어떤 손해를 봐도 이를 따지지 않고 그 이유를 자신에게로 돌리고 마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들을 이웃하며 살아가다 보면, 함께 살고 있는지 없는지 모를 정도다.
그래서 친구를 얻더라도 잘 사귀어야 되고, 이웃을 하더라도 잘 만나야 편안하다고 한다.
착하고, 법 없어도 산다는 사람들은 가만히 생각해 보면 잔잔한 물과 같고, 나무와도 같다. 그런가 하면 아름다운 꽃을 보는 것 같고, 미더운 산과도 같고, 평화로운 넓은 들을 바라보는 것과 다르지 않다. 남을 불편하게 하지 않고 자신이 마음속으로 새기고 겉으로는 내색하지 않고, 타인에게 불편한 마음을 주지 않는 사람이 아닌가한다. 이런 친구는 잘못 생각하면 익자삼우(益者三友)라 생각하기가 쉽다.
자기 주관이 뚜렷하지 않는 사람은, 줏대가 없다고 비난받기가 쉽고, 손해를 보고도 멍청히 있으면 어딘가 모자라는 듯한 사람으로 착각을 하지 않나 싶다. 그러나 그들은 순수함을 담고 있어 아름답게 보여 진다.
예로 들자면 이런 사람들은 팔공덕수(八供德水)를 담고있는 샘물이요, 나무로 치자면 칠덕(七德)을 지닌 감나무같은 사람이요, 쓸모 없는 진흙 속에서도 연꽃 같이 곱게 꽃을 피워 낼 줄 아는 식물이나 다름없다.
그러나 나는 이런 사람이 싫다. 그보다는 야무지고, 성실하면서도 자기 주관이 뚜렷한 사람이 좋다. 되는 것 없고, 안 되는 것도 없는 덤덤한 사람보다는 무엇이든 명확성을 내세워 주는 바다 같은 사람을 좋아한다.
옳지 않으면 노도(怒濤)처럼 밀려가다가도 잔잔 물결로 파문을 일으킬 줄 아는 사람, 그보다는 자신의 잘못이 인정되면 깊은 호수에 침잠(沈潛)하듯 부끄러워 할 줄 아는 그런 사람이면 더욱 좋다. 어떤 일을 행할 때는 소태같이 쓴 나무, 아니면 초피나무 열매같이 톡 쏘는 맛을 지닌 특징을 담는 결단력이 있는 그런 사람을 원한다.
식물로 치자면 애지중지 재배하는 작물보다는, 수없이 밟히면서도 노랗게 꽃을 피워 내는 민들레 같은 그런 사람으로 신언서판(身言書判)을 겸비한 이를 좋아한다. 이중에도 판단력 있는 사람을 제일로 생각했다. 그런데 이제부터는 ‘법 없이도 사는 사람’이 되려고 노력한다. 지난여름이었다. 참으로 어이없는 일을 당하고 말았다. 보통사람들의 상식으로는 도무지 납득할 수가 없는 일이다. 입에 담기조차 치사스럽고 부끄럽다. 이것이 세상을 살아가는 인간사이려니 돌려버렸다. 법에 호소를 할까하고 고민을 하다가, 자신을 위해 어쩔 수 없이 ‘법 없이도 사는 사람’이 되기로 작정을 하였다. 속으로는 끙끙 앓으면서도 ‘착한 사람’, ‘법 없이도 사는 사람’이 돼야 한다고 다짐을 했다.
못된 사람 앞에는 시간이 흘러간 뒤에라도 언제고 법은 살아 있게 마련이다. ‘예링’은 이렇게 말했다. ‘정의의 여신(女神)은 한 손에는 권리를 저울질하는 저울을 쥐고 있으며, 다른 한 손에는 권리를 실지로 주장하는 칼을 쥐고 있다. 저울을 못 갖는 칼은 단순한 물리적인 폭력에 지나지 않는다.’라 했다. 법이란 사람을 착하게 만드는 데만 뜻이 있는 것이 아니고, 옳고 그름을 판결하기도 하고, 옳은 사람을 인정받게 하는 뜻도 있다.
시간이 지나면서 아프던 마음도 편안해져갔다. 이순이 넘어서 뒤늦게 착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깊은 마음을 느껴보았다.
인간사회를 살려면 사람다워야 한다는 것쯤은 배우지 않아도 누구나 다 아는 일이다. 자기 잘못을 알고 뉘우칠 줄도 알되, 남의 잘못을 보듬어 줄줄도 아는 사람. 그러나 아직도 나는 그런 사람다운 사람이 되질 못했다. 어떻게 해야 그런 사람이 될 수가 있을까. 인간다워야 하려면, 더 많은 인생의 고행을 겪어야 할까 보다.
이제까지 살았어도 참다운 사람다움에 미치지 못하고 살았다. 그래서 오늘도 내 인생의 마무리를 서두르며, 마지막 사람다운 꽃을 피우려 발버둥치고 있다. 외로운 이 가을은 산사에서 풍경소리를 들으며, 살아온 길을 뒤돌아본다. 인과응보(因果應報)의 깊은 뜻이 어떤 것인가를 생각해 본다.
아름답던 저녁노을이 지더니 저 만치서 어둠이 서서히 밀려오고 있다. 비탈진 인생 길을 더듬거리며 조심스럽게 여생(餘生)의 발길을 옮긴다. 나도 모르게 서글픈 마음으로 낙엽을 밟고 그냥 오래 서성인다.
(2002년 11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