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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건축 에세이집 <말을 거는 거리>

장대명화 2014. 11. 11. 21:17

 

 

 

 

건축 에세이집 <말을 거는 거리>를 발간하였습니다.

 

 

 

 

 

프롤로그


工作所

책에 실은 것들은 수년에 걸쳐 인터넷 블로그 <深溪의 工作所>를 통하여 동료나 친구들에게 소개된 글과 사진과 스케치들의 모음이다.

삼십여 년을 일구어 온 나의 작업실은 구상을 스케치 하고 치수를 확인하는 분주한 공작소였다. 소통이 전제된 또 하나의 글 쓰는 <공작소>는 그러한 작업을 반성케 하는 동반자이고 건축에 대한 허기나 외로움이 발산되는 통로였으며, 궁극적으로는 <말하는 건축>에 대한 갈구였다.

나의 건축이 도시의 거리에 남겨진 속도 이상으로 <공작소>의 글도 양이 불었다. 사유가 넓어졌다기보다는 시간이 흐른 때문임을 안다. 내용 또한 나의 작업을 떠나 타인에 의하여 만들어진, 그리하여 이미 하나의 집합체로 형성된 거리에 대한 이야기이기 십상이었다. 그러나 미완인 건축가가 타인의 것을 평가한다는 것은 처음부터 어불성설이었으므로, 그 때마다 오로지 나의 감상에 국한되기를 늘 바랐다.


거리에서

공작소의 글 중에서 거리와 관련된 글들을 조급하게 묶는다. 건축가이기 보다는 거리를 이루는 일개 물상物象의 자격으로 <묵언黙言의 거리>를 말하고 싶었던 탓이다.

“...... 거리엔 가로등불이 하나 둘씩 켜지고, 검붉은 노을 너머 또 하루가 저물 때, 왠지 모든 것이 되돌아와요......” 내가 십팔번으로 부르던, 음유시인이 된 가수의 애정에도 못 미치는 건축가로서의 감상이 부끄러웠던 걸까? 그렇지 않으면, 공작한 건축이 하나 둘씩 거리에 채워지는 데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었을까?


문화란?

도시에 대한 책임감이라 하기에는 여전히 건축가로서의 존재가 미약했으나, 거리에 대한 관심을 책으로 묶을 용기가 생긴 것은, 처음부터 곱고 잘 된 것(이를테면 멋진 건축물)만이 문화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측에 서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나아가서, 비문화적으로 진행되는 모든 초라한 것들이 실은 문화의 성패를 결정할 단초이며, 이 모두를 아울러 한 시대의 문화로 정의될 것임을 알게 된 것이다.

 더 긴 시간을 두고 확고해질 문화의 느린 성숙을 위하여, 문화를 바라보는 <말>들이 여러 경로로 존재해야 한다고 본다. 설령, 목표로 하는 것이 예술이라 하다라도, 마음가짐이나 각오 같은 것이 먼저 언설言設된다는 것이 그것으로부터 나온 실체가 주는 감동만큼이나 절실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특히, 건축가는 거리와 같은 공유의 물건을 만드는 당자자이고 보면.....


말하는 건축가

하여, 스스로에게 먼저 던진 물음이 “건축이 꼭 지어지는 실체로 존재해야만 하는 것인가?” 라는 것이었고, 비로소 <말>이 시작된 것이다.

누군가가 고 ‘정기용’ 선생을 일컬었던 <말하는 건축가>라는 정의가 마음에 든다. 선생의 의도와 맥락이 닿을지는 모르겠으나, 내 글의 방향도 결과에 대한 지적이라기보다는 태도에 관한 짙은 아쉬움의 표현들이길 바란다.

감상으로 시작된 것이지만, 결국 소망으로 끝날 것이다. 감상은 나의 것이지만 소망이란 모두의 것이므로 이 글들이 특별히 목적을 가진다면, 특히 내가 소속한 집단인 건축가에게로 먼저 향하기를 고대 한다. 일개 건축가가 더 큰 범주의 일인 거리의 조성에 대하여 말한다는 것은, 같이 이루어야 할 건축의 방향을 공고히 하자는 것이다.

대중의 건축에 대한 오해나 이해 부족은 거리 문화가 나아가는 속도를 더욱 더디게 할 것이므로, 먼저 건축가로부터 거리가 말하여지고 써져야 함은 당연하다. 예컨대, 나의 경우와 같이 개인적인 감성과 버무려진 조잡한 경우라 하더라도 일정 부분 유효하리라 보는 것이다.


독자에게

이 책의 몇몇 글들은 본격 수필을 목표로 씌어진 것이기도 하다. 건축가 ‘김억중’이 책 <나는 문학에서 건축을 배웠다>에서 말했듯이, 「문학과 건축이 서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맞상대할 길동무」이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다. 그리하여 나의 글쓰기에도 건축과 문학이 경계 없이 넘나든다면, 앞으로의 글은 좀 더 확신에 찬 문장文章으로 설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글은 처음부터 장르나 길이에 구애받지 않았음으로 시로, 수필로, 심지어는 사진에 대한 설명으로 읽혀도 좋겠다. 하릴없이 거리를 거닐다가, 우연히 발에 차인 돌맹이를 바라보듯 자유스런 읽힘을 고대한다.

설령 그 돌맹이가 내 주머니 속에서 어지간히 굴려졌더라도, 전달되지 않는 의미는 오로지 쓴 자의 잘못이니, 읽는 이는 그저 느린 산책을 하듯 쉬엄쉬엄 읽어주면 좋겠다.


 

 

 

 

Jason Lee - Mozart-Sonata No. 17 in Bb major KV 570 2nd M.. | 음악을 들으려면 원본보기를 클릭해 주세요.

 

출처 : 심계(深溪)의 공작소
글쓴이 : 深溪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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