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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으로 남아있을까 ㅡ 최종두

장대명화 2010. 10. 25. 23:31

 

                                             무엇으로 남아 있을까 / 최 종 두

                                                           

   연어의 일생은 아무래도 흥미롭다. 드라마처럼 어쩌면 극적이기도 하다. 바다로 나가 살다가 산란기를 맞으면 자신이 태어났던 강으로 돌아오는 것도 신기하거니와 그 귀로가 너무도 먼 길이다. 그 먼 길에서 어떤 때는 급류를 만나고 폭포 같은 물속을 거슬러 올라와서 산란 장소에 이르면 주저없이 암컷은 알을 낳는다. 알을 낳으면 이번에는 수컷이 그 위에 사정을 해 알을 수정시키고 그런 다음에는 단 한마리도 남김없이 그대로 죽어버린다.

 집단적인 정사라고 할까. 이쯤 되면 드라마처럼 극적이란 말이 무리가 아닌 듯싶다.

 자연게에는 연어와 같은 특이한 삶을 누리는 생물들이 있다. 이를태면 미얀마제비가 교미를 끝내고는 암컷에게 잡아먹히는 일도 특이하다. 미얀마제비의 암컷은 사랑을 부어준 순간에 수컷의 육신을 씹어 먹어버린다. 수컷은 자신의 육신을 암컷의 영양을 위해 기꺼이 바치고는 생을 다하는 것이다. 이러한 경우는 수펄 역시 마찬가지다. 수펄은 단 한번 여왕과의 교미를 마치면 즉시 생명을 끝내게 된다. 참으로 기이한 일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생물계에서 몇 안 되는 숭고한 사랑의 주인공들 같기도 하다.

 그러나 기이한 일이든 숭고한 사람이든 나는 유독 연어의 모습이 너무나 아름답다. 자신이 태어난 고향으로 돌아가 자손을 번식시키며 마지막 생명을 다하는 일, 그것이 너무나 아름답고 숭고한 것이다.

 가을이 깊어지면 온 산야가 조용해진다. 이글거리는 태양과 함꼐 푸르렀던 입사귀마다 단풍이 물들고 억새꽃이 바람에 날릴 때쯤이면 사람들도 고즈넉이 숙연함을 느끼게 된다. 저마다의 가슴으로 밀물처럼 몰려드는 그리움으로 인해 베개를 뒤척이며 잠을 이루지 못할 때가 잦아진다. 살아가면서 누구나 숙명처럼 당하는 어쩔 수 없는 한 순간이다. 이럴 때 한낱 물고기일 수밖에 없는 연어의 끈질긴 생애를 돌아보면서 나는 인간의 마지막 모습을 더듬어 본다.

 가을과 단풍과 스산한 바람, 그리고 잔잔한 강물이 지금의 나를 또 그리움에 떨게하고 있다. 노을이 물든 강변으로 나는 마지막 고깃배의 사공으로 돌아가고 있건만 닻을 내릴 마땅한 터가 없다. 일생을 뒤로 돌아보는 일없이 오직 앞만 보고 열심히 살았건만 영근 열매 하나 손에 쥐지 못했다. 결국 어김없이 자기 몫을 다하는 연어만도 못한 생애를 보냈단 말인가. 연어처럼 그 긴 고난의 여정을 보람되게 보내고 최후를 맞는 아름다움을 나는 보이지 못할 것 같다. 모두가 회한뿐인 채 그 회한만이 가슴에 불씨로 남아 있으니….

 오늘은 태화강변을 거닐다 왔다. 모래성을 쌓으며 어린 동심을 키우던 때가 불현듯 그리워지는 곳.

 몇 년 전 나는 태화강변에서 오늘의 심정을 읊은 시를 쓴 적이 있다.

 

       하얀 면사포를 쓰신

       누님의 기도소리 젖어들면

       노을지는 강변으로 마지막 고깃배가 돌아오고

       강변에는 소금가루 아득히 날리며

       조용히 숨쉬는 대숲으로 밤이 찾아온다.

 

       그대와 나사이에 노을이 타는 태화강은 흐르고

       한 떨기 들국화 잎 마르는 사이

       바람은 또 먼 바다에서 고개를 넘어 온다.

 

       오래지 않아 태화강에도 눈발이 날리겠지

       그런 날 나는 푸른 강 언덕에 서서

       속으로 흐느끼는 갈대가 되리라.

       ㅡ 후략 ㅡ

       졸시 [태화강에 서서]다

  작곡가 이건용 님이 뒤에 곡을 붙여 자주 부르는 노래가 되었다. 나는 이 노래를 들을 때마다 슬며시 눈을 감는다. 아름다운 곡도 곡이지만 쓸쓸한 나의 심경에 내가 그만 빠져버리기 때문이다. 오래지 않아 태화강에 겨울이 찾아오고 세찬 바람이 눈발을 날리게 할 것이다. 그런 때 나는 어디에 서 있을까.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여한을 속으로 흐느끼면서 바람에 흐느적이며 일렁이는 갈대가 되어 있을까. 무엇으로 남아 있을까. 연어의 아름다운 일생을 더듬으며 다시 나를 돌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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