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서

작은 농장 이야기

장대명화 2010. 12. 8. 14:55

                                          작은 농장 이야기

 

 사월 초순, 도심외곽의 큰 도로변에 '주말농장' 현수막이 눈에 띄어 들어가 보았다. 탁 트인 넓은 밭을 열 평씩 바둑판처럼 나누어 놓은 땅이 정리가 잘 되어 있다. 농장 한가운데는 수도와 대형물통을 설치하여 밭에 물을 줄 수 있게 하였고, 원두막에서 농사이야기도하며 이웃과 정을 쌓으란다. 선뜻 회원으로 가입하여 푯말에 짱아(딸아이의 예명)네 농장이라는 이름표를 달아놓았다. 이웃 밭에서도 아이들이 서로 자기 이름의 농장으로 하겠다고 실랑이를 한다. 가족끼리 의논하여 각자 좋아하는 채소를 심어 농사체험을 해보는 것도  산교육이 될 듯 싶다.

 

 농작물을 심기 전, 돌부터 골라내고 퇴비로 밑거름도 하여 밭이랑을 만들어 채소 심을 곳을 종류별로 분류한 다음 상치, 쑥갓, 아욱, 부추는 씨앗을 뿌렸다. 완두콩과 땅콩은 한 뼘 넓이의 간격을 두고 세알씩 각각 심고, 고추는 열다섯 포기, 가지 다섯 포기, 토마토는 내가 좋아하여 스무 포기나 심었다. 옆집 땅을 경계로 하여 옥수수를 가로 세로로 줄지어 심어 놓으니 그럴듯한 채마밭이다.

 처음 지어보는 농사인데 이제나 저제나 싹이 나길 기다리려니 일각이 여삼추다. 파종한지 일주일쯤 지나자 싹이 나기 시작한다. 쑥갓이 먼저 고개를 내밀고 아욱, 상치, 완두콩 순으로 서로 경쟁이라도 하듯 하루하루 소복하게 올라오는 싹들이 신기하다. 모종한 고추와 가지 토마토도 땅 냄새를 맡았는지 자리를 잡는다. 씨앗을 너무 많이 뿌려서 솎아 내야 하는데 선뜻 손이 가지 않는걸 보면 내가 욕심을 부리는 것일까. 아깝지만 과감하게 속살이 훤히 보일정도로 뽑아내었다. 그래야만 채소가 실하게 잘 자란단다.

 

 비가 오지 않아 날씨는 점점 뜨거워지고 땅이 말라가니, 양동이와 물조리로 하루도 쉬지 않고 땅이 촉촉해질 때까지 물을 흠뻑 주어야 하고, 잡초를 뽑아주며 식물이 숨을 쉴 수 있도록 김도 매주어야 한다. 열 평의 작은 밭농사도 이렇게 힘이 드는데, 그 많은 농토에서 허리가 휘도록 농사지어 구남매 키우고 교육시키시어, 분가 후에도 바리바리 자식들에게 보내주시던 시부모님의 은공을 어찌 잊을 수 있을까.

 

 드디어 고추, 토마토, 가지, 바라만 보아도 탐스러운 열매가 하나 둘 열리기 시작한다. 그런데 웬일일까? 주렁주렁 달린 토마토 잎사귀가 갑자기 오므라든다. 당황하여 농사경험이 있는 이웃에 물어보니 진딧물 때문이란다. 줄기와 잎사귀에 새까맣게 번져가는 진딧물을 떼어내고 몸에 해롭지 않다는 생약을 뿌려주니 잎이 서서히 살아나며 토마토가 싱싱해진다. 어찌나 속이 타던지 밤잠을 못자고 걱정했던 그 심정은, 농부들이 가뭄이나 태풍으로 다 지은 농사를 피해보고 망연자실하는 실상들이 이제야 이해가 된다.

 정성 드린 보람인지 채소들이 잘 자란다. 쨍쨍하게 내려 쪼이는 태양볕이 곡물이나 채소에는 영양제인지 빛깔이 선명하고 맛이 좋다. 탐스럽게 익어가는 토마토를 첫 수확하는 날, 내가 애태우며 가꾼 열매여서인지 선뜻 따지 못하고 망서려진다. 하나, 두개, 세 개 따서 바구니에 담는 마음은 마치 보석을 얻기라도 하는 양 참으로  흐믓하였다.

 

 날씬한 고추는 빼곡히 자리다툼을 하며 열린다. 주먹만큼 큰 빨간 토마토를 하루에도 대여섯 개씩 따고, 주렁주렁 달린 가지는 따내기가 바쁘다. 상치와 쑥갓도 뜯어서 한소쿠리 담아와 옆집과 윗집에 골고루 나누어주니 무공해 채소라며 어찌나 좋아하는지 내년에는 주말농장에 동참을 하겠단다.

 아욱은 뜯어 국을 끊이고, 가지는 쪄서 무치고, 아삭아삭 풋 고추는 날된장에 찍어 먹고, 쑥갓을 섞어 상치 쌈을 싸서 먹은 후, 후식으로 먹는 토마토까지 진수성찬이 부럽지 않다.

 주말이면 농장 이웃들끼리 원두막에 모여 삼겹살 파티도 한다. 집집마다 돌아가며 삼겹살과 소주를 준비하고, 나는 토마토를 갈아서 음료수 대용으로 쥬스를 만들었다. 야채는 각자 밭에 심은 것을 뜯어와 쌈을 싸서 먹으며 서로 자기가 지은 농사 자랑 하느라 입에 침이 마른다. 이 얼마나 정다운 풍경인가. 전원 속에서 이웃들과 더불어 사는 재미라고 행복해 하는 사람들이다.

 

 팔월 초순은 김장배추 심을 시기다. 빨갛게 익어가는 고추와 땅콩은 남겨두고, 채소 심었던 자리를 다시 정리하여 먼저 땅에 퇴비거름과, 한약방에서 약을 짜고 남은 찌꺼기를 얻어다 썩혀서 흙과 고루 섞어 밭두둑을 만들었다. 길게 비닐 포장을 씌운 후 포기와 포기 사이를 적당한 간격을 두어 구덩이를 파고 물을 준 다음 한 포기씩 심었다. 비닐을 덮는 이유는 햇빛에 소모되는 수분을 막고 잡초가 자라지 못하게 하는 것이란다. 모종을 하고 이틀 후 나와 보니 말라 죽은 것도 있고 벌레가 파먹었는지 군데군데 비어 있어서 다시 채워 넣어 심었다. 수시로 물도 주고 벌레도 떼어내며 정성껏 보살피는 주인의 마음을 아는지 배추가 잘 자란다. 씨앗을 뿌린 총각무도 잎과 줄기가 굵어지면서 알이 통통해지고 있다. 한쪽에서는 땅콩도 여물어간다. 고추는 따서 태양초로 말려 김장을 담가서 경로당 어르신들에게도 가져다 드려야겠다.

 하루가 다르게 쑥쑥 커가는 채소를 보고 있노라면 바라만 보아도 마음이 뿌듯하여 시간가는 줄 모른다. 이 맛에 농부들이 시름을 잊고 농사를 짓는 게 아닐까싶다.

 

 열 평의 작은 땅이지만 갖가지 채소를 심어 식물을 가꾸는 마음의 여유와 농사체험을 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남편의 퇴직 후엔 고향으로 돌아가 농사도 짓고, 가축도 길러보려 한다. 이다음에 부모님이 하신 것처럼 우리도 자식들이 휴가 때 와서 무공해 채소를 마음 놓고 먹고, 가득가득 담아갈 수 있도록 농장을 만들어 놓으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