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은 쥐의 꾀 / 고상안 (고전수필)
늙은 쥐의 꾀 /고상안(高尙顔 1553~1623)
옛날에 음식을 훔쳐 먹는데 귀신이 다 된 쥐가 있었다. 그러나 늙으면서부터 차츰 눈이 침침해지고 힘이 부쳐서 더 이상 제 힘으로 무엇을 훔쳐 먹을 수가 없게 되었다. 그때 젊은 쥐들이 찾아와서 그에게서 훔치는 기술을 배워 그 기술로 훔친 음식물을 나누어 늙은 쥐를 먹여 살렸다. 그렇게 꽤 많은 세월이 지나갔다. 그러던 어느 날 젊은 쥐들이 말했다.
“이제는 저 늙은 쥐의 기술도 바닥이 나서 우리에게 더 가르쳐 줄 것이 없다.”
그리고는 그 뒤로 다시는 음식을 나누어 주지 않았다.
늙은 쥐는 몹시 분했지만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얼마 동안을 그렇게 지낼 수밖에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저녁이었다. 그 마을에 사는 한 여인이 맛있는 음식을 장만해서 솥 속에 넣은 다음 무거운 돌로 뚜껑을 눌러 놓고 밖으로 나갔다. 쥐들은 그 음식을 훔쳐 먹고 싶어 안달이었지만 방법이 없었다. 그때 한 쥐가 말했다.
“늙은 쥐에게 물어보는 것이 좋겠다.”
모두가 “그게 좋겠다.”고 하고는 함께 가서 묘안이 없겠느냐고 물었다. 늙은 쥐는 화를 발끈 내면서 말했다.
“너희들이 나에게서 기술을 배워서 항상 배불리 먹고 살면서도 지금까지 나를 본체만체했으니 꽤씸해서라도 말해 줄 수 없다.”
쥐들은 모두 절하며 사죄하고 간청했다.
“저희들이 죽을죄를 졌습니다. 지나간 일은 어쩔 수 없고 앞으로는 잘 모실 테니 방법만 가르쳐 주십시오.”
그러자 늙은 쥐가 말했다.
“그래. 그렇다면 일러주마. 솥에 발이 세 개 있지? 그 중 하나가 얹혀 있는 곳을 모두 힘을 합쳐서 파 내거라. 몇 치 파내려 가지 않아 솥은 자연히 그쪽으로 기울어질 것이고 그러면 솥뚜껑은 저절로 벗겨질 것이다.”
쥐들이 달려가서 파 내려가자 과연 늙은 쥐의 말대로 되었다. 쥐들은 배불리 먹고 돌아오면서 남은 음식을 가져다가 늙은 쥐를 대접했다.
아, 쥐와 같은 미물도 이와 같은데 하물며 만물의 영장인 사람에 있어서겠는가! 이신(李信)의 계책이 노장 왕전의 심사숙고함에 미치지 못했고, 무현(武賢)의 지모(智謀)가 충국(充國)만 못했으니, 나이 많은 사람이 젊은 사람보다 사리 판단이 낫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이치는 다만 전쟁터에서 병사를 부리는 일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고, 나라를 다스리는 경륜도 젊은이가 노성(老成)한 이를 넘어서지 못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진나라 목공이 “노성한 이에게 자문을 구하면 잘못되는 일이 없다.”고 한 것은 이를 두고 한 말이다.
그런데 오늘날 나라가 되어 가는 꼴을 보면 국권은 경험도 없는 어린아이에게 맡기고 늙은이들은 수수방관하며 입을 꼭 다문 채 말을 하지 않고 있다. 어쩌면 요긴한 말을 했다 하더라도 도리어 견책이나 당하는 것이 보통이다. 이런 일을 앞에 말한 쥐의 일과 견주어 보면, 사람이 하는 짓이 쥐가 하는 짓보다 못하니, 탄식하지 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