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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의 문법 / 권일송

장대명화 2012. 10. 8. 11:22

 

                      꽃의 문법(文法) / 권일송(權逸松) 

 

 “아가, 나 좀 따라가자. 몰랑에 있는 네 밭이랑 논이랑 좀 돌아보자.”

 어머님의 목소리가 아슴푸레히 들려왔다. 툇마루 끝에서 얼핏 잠이 들었었나 보다. 30이 훨씬 넘은 자식일망정 아가라고 불러야만 직성이 풀리는 게 어머니들의 알뜰한 자애 아니던가.

 

 “이거 한 잔 마셔 봐라. 제발 술 좀 조심하고…….”

 손에는 노란 국화꽃 이파리가 둥둥 떠 있는 청주 한 보시기가 들려 있었다.

 

 가을이었다. 온 마당이 향긋한 국화 냄새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용수를 박아놓은 술 항아리에선 진한 누룩 냄새가 코를 찌르고 세무서에서 나온 사람이 얼씬거리기만 하면 금세 처마와 처마 사이로 구전(口傳)된 정보에 잔뜩 겁을 집어먹은 어머니들이 장독과 다락 사이를 부리낳게 오가면서 눈치를 살피곤 했었다.

 

 소위 밀주(密酒) 단속반이라는 사람들이 나오면 으레 온 마을이 발칵 뒤집혔었고 때 아닌 소동이 한 바탕 일고 난 다음에는 구장집 평상 근처에서 막소주와 함게 닭머리깨나 좋이 삶아 푸닥거리를 하곤 했던 것이다.

 

 ‘술 익는 마을마다 타는 저녁놀’

 목월(木月)의 시는 역시 시로서 좋을 뿐이었지 현실 구제의 의미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이었다.

 

 일곱 마지기 논빼미는 이른바 문전옥답이었다. 시남천과 역둘 물이 합수진 대목에 자리 잡은 이 논빼미는 가뭄도 타지 않고 물난리에도 끄떡 없었다. 어쩌다 소나기가 쏟아져 또랑물이 불어났을 때는 옛 물레방아가 서있던 자리께에서는 산태미로 그득 붕어가 걸려 나오기도 예사였다.

 

 누우런 벼 이삭들이 황금물결로 일렁이고 있었다. 어디를 보나 가을이었다.

 “아가. 늬 색씨가 꼬옥 마음에 들디야? 어른 조심할 줄도 알고 마음 쓰는 품이…… 아주 늬가 잘 골랐더라.”

 

 손에 든 바구니에는 늙은 호박 한 개와 빨간 고추알이 서너 개 들어 있었다. 백발이 성성하신 양모 충주 박씨― 지극한 애정을 쏟으시는 품이 마치 오월의 훈풍 같았다. 옥루몽과 화씨 충효록(華氏忠孝錄)을 밤이면 즐겨 읽으시고 내가 어쩌다 한 사나흘씩 고향에 묵는 날이면, 노랑 씨암탉마저 삶아서 머리맡에 갖다 놓으시는 자애는 비단 내게만 쏟으셨던 것은 아니다. 당신의 걸음이 미치는 곳, 온 마을이 훈훈했다. 어려운 처지의 타성(他姓) 받이나 일가 친척들 가운데 애낳이를 한 사람이 있으면 잊지 않고 미역 한 묶음과 진장 한 사발을 떠다 바치며 위로하시는 성미― 먼 타향에서 사는 나에게 이따금 ‘l l긔 일송 보라’시며 안질도 심하신데 손수 운한(雲翰)을 접어 주셨을 땐, 그만 눈물이 앞을 가려 타향살이의 설움과 고독이 한꺼번에 밀물하는 듯도 했었다. 그래 나는 「꽃의 문법」이란 헌시(獻詩)를 쓰기도 했다. 그걸 읽는 사람마다가 가슴이 뭉클했었다. 어머니의 사랑, 꽃의 문법을 지금사 떠올려도 향수의 덩이가 치민다.

 

 병을 얻어 앓아 누우신 것을 보고도 하는 수 없이 서울로 떠나와야만 했던 게 벌써 7년전…….

“아가, 인제 가면 언제나 오게 되냐?”

 

 거의 눈도 뜨지 못하신 채 내 팔목을 쓸어 주시던 어머니―

  “곧 또 내려 올께요……염려 마세요. 차로 서너 시간이면 내려올 텐데요 뭐.”

  “제발 술 조심하고…… 일찍일찍 다녀라.”

 

 터무니 없이 격앙되기 일쑤인 자식의 술을 잘 아시는 터라서, 이승에서 마지막 체온을 전달 해 주시는 자리에서도 꼬박꼬박 애써 타이르심을 잊지 않으셨다.

 

 그 해 9월 하순, 나는 지향없는 발길을 이끌고 서울로 진입했다.

 장위동 연착(長位洞 軟着)― 동명(同名)의 시를 H지에 발표하고 나자 주위에선 내가 어설픈 서울사이를 시작했음을 알게 되었다.

 

 무중력 상태의 가을…… 그래도 그 가을의 공백이 내게는 소중하고 대견스러웠다. 이래저래 나와 1970년과는 인연이 깊었다.

 

 첫 눈이 소복히 내리는 12월 어귀― 양모님은 이승을 하직 하셨다. 죽곡리(竹谷里) 선영에다 모셔드린 뒤, 차마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재촉하여 서울로 돌아왔다.

 

 해마다 가을 무렵이면 찾는 고향 길……. 그러나 시골도 이제는 옛스런 향기를 잃었다. 이제 그것은 공간의 개념이 아니라 시간의 개념으로 뒤바뀐 것인지도 모른다.

 

 뒷몰랑의 대숲과 감나무 사이로 바라다 보이는 대동산과 옥천(玉川)의 흐름도 어쩐지 황량하기만 했다. 나이 탓이요 마음 탓일까.

 

 세월 따라 이렇듯 마음이 약해지는 것도 어쩐지 자연의 이법(理法)에 속하는 일인지도 모른다.

 때 묻은 도시생활에 어지간히 중독이 된 몸과 마음이긴 하나, 기억 속에 불붙는 향수가 남아 있는 한, 우리는 늘 신선한 영감 속에 살 수 있는 것은 아닐까.

 

 가을이다. 해마다 오는 이 계절의 약속……. 어쩌면 폭포같이 서러운 햇빛의 잔해(殘骸), 끝없이 되풀이 되는 생의 오뇌와 우리를 실어 나르는 시간의 바다, 가고 다시 아니 오는 인연들에 보내는 마음의 설운 꽃다발…….

 

 고향 집 뜨락에 핀 국화와 멍석 위에 달밤을 향하여 맘 속으나마 분향(焚香)의 의식을 갖춘다.

 

 

                     *작법 해설*

이 작품은 ‘양모 충주 박씨에 대한 사모곡’이다. 종결어 ‘고향 집 뜨락에 핀 국화’에서 양모 박씨의 모습을 발견한 독자라면 이 작품의 제목 「꽃의 문법」의 의미(주제)를 읽게 될 것이다. 그것은 ‘가고 다시 아니오는 인연들에 보내는 마음의 설운 꽃다발’이다.

작가는 시인이다. 전편이 시적 서정의 구성으로 되어 있음을 볼 수 있다.

서두는 어머니를 꿈에 뵌 이야기로 열고 있다. 꿈에서 깬 작품 현실은 국화꽃이 피어있는 가을이다. 이것이 이 작품 서두의 배경이다.

작품의 종결을 서두의 가을 국화꽃 이야기로 장식하고 있는 점에 주목해야 될 것이다. 국화 이야기로 시작해서 국화 이야기로 막을 내리는 그 가운데에 양모 박씨의 지극한 자식 사랑 이야기를 담아내고 있는 구성법의 작품인 것이다. 그러니까 서두의 국화와 종결의 국화는 ‘가고 다시 아니오는 인연들에 보내는 마음의 설운 꽃다발’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이 작품의 제목이 「꽃의 문법」이 된 것이다.

「꽃의 문법」은 작가의 시작품의 제목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이 작품은 그 시작품을 산문형식으로 풀어 쓴 또 한 편의 「꽃의 문법」이라는 제목의 ‘산문의 시’ 작품인 셈이다. 창작문예수필은 시적 발상의 산문적 형상화 양식의 문학이다.

이 작품의 <鳥자 치킴>은 당연히 작품의 제목을 「꽃의 문법」이라고 잡은 것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