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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 / 김상선

장대명화 2012. 10. 8. 11:19

 

                            비밀 / 김상선(金相善)

 

 

 사람이

비밀이 없다는 것은 재산 없는 것처럼 가난하고 허전한 일이다.

 

 李箱이라는 이상한 사나이는 이와 같이 말했다. 진정 비밀이 없는 사람이 있을까? 그리고 진정 비밀이 없는 나라가 있을 것인가?

 

 사람이 사는 세상이면 반드시 비밀이 있게 마련이다. 부자 사이에도 있고, 부부 사이에도 있다. 하다못해 순진한 어린애들에게도 있다고 보아야 한다.

 

 그런데 비밀이 지나치게 자기의 약점을 감추기 위한 것이었을 때는 이야기가 완전히 달라진다. 아내가 자기의 부정을 감추기 위한 비밀을 가지고 있다면 어떻게 될까? 불문가지다. 그 가정은 원만하게 이끌어지지 않을 것이 뻔하다.

 

 또 남편이 자기의 외박을 적당히 얼버무리려고 진땀을 빼는 광경을 상상만 해도 우스꽝스럽다. 친구하고 술을 마시다 보니 통금이 지나서 어쩌구저쩌구 했다고 한들, 이따위 구차한 변명에 그렇게 쉽사리 넘어갈 아내는 이 세상에 단 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남성의 위신을 위해서 그런 속이 환히 들여다보이는 억지 변명은 삼가는 것이 좋다.

 

 그래서 나는 아내에게 어느 날 이렇게 말했다.

 

  “당신한테 장가든 뒤로는 딱 한 번 외박한 일이 있는데……”

 

 채 말이 끝나기도 전에 아내는 몽땅 얼굴빛이 변하는 것이 아닌가! 이유인즉 결코 그럴 까닭이 없다는 것이다. ‘설마 내가 한 번 외박했다는 것을 거짓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닐테지.’ 이렇게 생각해 보았다.

 

 좀 막연한 생각이다. 여기서 좀 막연한 생각이라고 하는 것은 정반대의 두 가지로 풀이할 수 있다는 것을 뜻한다. 그 하나는 외박했다는 사실이 한 번도 없다는 것이요, 다른 하나는 한 번 보다 훨씬 많다는 것이다. 앞 것은 아내가 나를 너무 믿고 있기 때문에 한 번이라는 그것 자체를 부정하려는 것이겠고, 뒷 것은 믿은 도끼에 발등 찍힌다는 것에 대한 역정이 되겠다.

 

 어떻든 사람과 사람 사이에 지나치게 비밀이 많으면 원만한 생활을 할 수 없게 된다는 것은 너무나 빤한 이야기이다. 철의 장막이니 죽음의 장막이니 하는 것이 곧 그것이다. 나라와 나라 사이에서도 비밀이 많으면 세계 평화가 어렵게 되지 않을 수 없다.

 

 백성과 위정자 사이에서도 똑 같다. 위정자는 가급적이면 백성들에게 보여서는 안 될 비밀이 없어야 한다. 위정자에게 비밀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정치를 잘못 했다는 것 이외의 다른 아무것도 아니다. 백성에게 감춰야 할 비밀이 많다는 것은 위정자의 어딘가에 쿠린 데가 많다는 것을 뜻한다.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게 마련이다. 아무리 싸고 감춘다 하더라도 언젠가 그 속알맹이가 드러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인간 사회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자꾸만 무언가를 감추려 하면 오히려 그것 때문에 큰 코 다치는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

 

 그렇다고 해서 비밀이란 절대로 있어선 안 된다고 하는 것은 아니다.

꼭 있어야 할 것은 있어야 하는 법이다. 비밀이라고 해서 예외일 수는 없다. 나라나 개인이나 필요한 비밀은 지켜야 한다. 나라가 존재하기 위해서, 그리고 개인이 살아가기 위해서 감추어야 할 것은 감추어야 한다는 말이다. 이 말은 곧 거꾸로, 어지간한 것에 대해서는 비밀이 없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바로 엊그저께 나는 예쁜 소녀와 함께 술을 마시게 되었다. 그런데 이 소녀는 한 번도 남성과의 데이트는 고사하고, 점심 한 그릇 먹어본 일도 없고, 차 한 잔 마셔본 일도 없다는 것이다. 그럴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이 소녀는 충청도 태생으로 가정환경이 그렇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뭐 여러 가지 이야기할 것도 없다. 소녀의 아버지는 나의 중학교 동창생인데, 40평생 단 한 번도 술을 마시거나 담배를 피운 일도 없고, 더더구나 여자와 연애 한 번 해 본 일도 없는 위인이다. 그리고 소녀의 외가는 소녀의 아버지가 소녀의 어머니를 이른바 선보러 갔을 때, 소녀의 할머니가 <고이한 놈>이라고 호통까지 칠 정도의 집안이다. 이런 이유로 엊그저께 나와 더불어 술을 마신 소녀의, 나 아닌 다른 남성과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전적으로 믿을 수 있는 것이다.

 

 어떻든 이 소녀와 나는 어느 운치 있는 술집에서 꽤 마셨다. 마치 다정한 애인처럼 마셨다. 그러나 말은 별로 하지 않았다. 술이 거나해짐에 따라 내가 좀 지껄인 것 같다. 사랑과 문학에 관한 이야기를 말이다. 혹 인생에 대해서 이야기 했는지도 모른다.

 

 사건은 이것뿐이다. 다만 여기서 문제되는 것은 함께 술 마신 이 사건을 오직 이 소녀와 나와의 비밀로 덮어 둘 것인가, 아니면 이것을 소녀의 아버지인 나의 동창생에게 밝힐 것인가 하는 것뿐이다. 이럴 것인가 저럴 것인가? 저러자니 이것이 안 되고, 이러자니 저것이 걸린다. 어떻게 하면 좋단 말인고?

 

 그렇게까지 뭐 고민할 것 없지 않은가? 이 일은 오직 소녀와 나와의 아름다운 비밀로 묻어 두기로 하면 된다. 사람이 비밀이 없다는 것은 재산 없는 것처럼 가난하고 허전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 쓰고 있는 이 글이 어느 지상에 발표되면 비밀로 덮여질 수 없게 되지 않느냐? 그러면 그것대로 놔두는 거다. 본디 비밀이란 반드시 밝혀지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작법 해설*

이 작품을 쓰게 된 발상은 ‘바로 엊그저께 나는 예쁜 소녀와 함께 술을 마시게 되었다.’에 있을 것이다. 그것은 글로 써서 발표해도 괜찮을 정도의 ‘어지간한’ 비밀이다. 이 어지간한 비밀에서 「비밀」이라는 글제를 얻게 되었을 것이다.

작품 구성도 그렇게 되어 있다. 서두를 李箱의 ‘비밀’ 철학으로 열어서 비밀이 있어서는 안 되는 경우와 있어야 되는 경우를 들어 토의를 하기 시작한 후 작품 후반부에 들어와서 마침내 이 글에서 하고 싶었던 ‘예쁜 소녀와의 술 한 잔’ 이야기를 꺼내 놓는다.

그 소녀와의 술 한 잔 사건이 비밀로 성립 될 수도 있는 까닭은 소녀의 아버지가 화자 ‘나’의 동창생이라는 점이 아니라 그는 평생 술을 마신 일이 없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술 안 마시는 동창생의 딸에게 술을 마시게 했으니 이 사실을 친구에게 직고 할 것인가 말 것인가가 문제가 된 것이다. 그러나 작가는 이미 그 사실을 글로 써내고 있다. 그렇다면 이 ‘어지간한’ 비밀 이야기를 털어 놓는 글쓰기의 목적은 무엇인가? 李箱의 ‘비밀이 없는 가난’에 동의하면서도 동시에 얄궂은 것은 세상에 끝까지 밝혀지지 않는 비밀이란 없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인가? 필자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작가가 이 에세이 작품을 쓴 목적은 자기 치료에 있을 것이다. 언젠가 한 번은 이실직고해야 할 ‘어지간한 비밀’을 글로 대신 털어 놓은 것이다. 이것이 이 작품의 <鳥자 치킴>이라고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