값 / 강은교
값 / 강은교(姜恩喬)
이사 온 지 몇 년 만에 집수리를 한다고 온통 뜯었다.
우선 스팀 파이프로부터 새것으로 바꿔야 한다는 기술자의 말에 방이며 부엌이며 목욕탕 등 파이프가 들어 있는 곳은 모조리 곡괭이질을 하기 시작했다.
공사가 진행됨에 따라 살림살이들을 이리저리 옮기다 보니 깨지고 구멍이 나는 것은 고사하고 잠잘 곳만 빼놓고 신발을 신고 다녀야 하는 바람에 식구 모두 흙투성이가 되어 버렸다.
고물장수가 왔다. 한 동네에 꽤 오래 사는 탓에 낯이 익은 고물장수는 마루에 내어 놓은 트렁크며 상이며……흘끔흘끔 들여다보고는 손바닥을 비비면서 나에게 말을 건넸다.
“이 트렁크는 파시죠. 다 부셔졌군요.”
“그건 아직 쓰는 건데요.”
대답해 놓고 보니 하긴 내 말이 우스웠다. 왜냐하면 그 쇠 트렁크는 먼지가 뽀얗게 앉은 데다가 여기 저기 흠이 나 있고, 손잡이도 떨어져 나갔으며 고리도 성한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또 하도 끌고 다녀서 뚜껑 부분은 언제 떨어질지 모를 형편의 딱한 몰골을 하고 있었다.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것이니까 벌써 10년 이상은 끌고 다닌 것이었다.
대신 탁자 다리를 주었다.
“멕기칠만 새로 하시면 아주 새거예요. 흠 하나 없죠?”
나의 의기양양한 말에 그러나 고물장수는 쓴 웃음만 지었다. 그때 옆에 있던 <아줌마>가 얼른 반문했다.
“그걸 파시면 어떻게 해요? 여름에 또 상에다 붙여야 될 거 아니예요? 어디서 글을 쓰실려구요?”
“이제 그런 짓은 그만두기로 했어요. 수리가 끝나면 책상을 하나 사야겠어요. 설합도 있고 열쇠도 있고 그런 책상 말예요. 좀 비싸더래도 좋은 걸로요.”
<아줌마>의 눈이 둥그래졌다. 그도 그럴 것이 그 탁자 다리는 우리에게 있어 여러 모로 귀중한 것이었고 당장 없으면 곤란한 종류의 필수품이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우리 집에는 소위 책상이라는 것이 없었다. 대신 그 탁자 다리를 안 쓰는 상에 붙여서 책상으로 사용하곤 하였다.
신혼시절에 나는 그 탁자 다리를 어떤 조그만 목공소에서 사서 밥상으로 쓰는 상의 낮은 다리만 떼어내고 대신 그것을 붙인 다음 책상보를 씌웠더니 아주 훌륭한 책상이 되었다. 그래서 이사할 때마다 조심히 옮겨오다가 겨울이면 의자에 앉기보다 방바닥에 앉는 것이 편하고 또 오래 앉을 수 있으므로 그것을 떼어내고 원래의 상다리를 붙이고 책상보를 씌웠다.
그러나 봄이 오면 다시 낮은 상다리를 떼어 놓고 탁자 다리를 붙여서 창가에 놓고…….
그러던 것이 지난겨울에는 낮은 상다리를 아주 못질을 해버리고 탁자 다리는 방 한구석에 세워 놓았었는데 아이가 그것을 발견하고는 환성을 지르면서 놀이용으로 사용하기 시작했었다. 기어오르기도 하고, 턱걸이도 하고, 받침대에는 인형들을 눕혀 놓고, 다리 사방에는 인형용 헝겊들을 걸어놓고 술래잡기도 하고 말이다.
고물장수가 물론 그런 사연을 알 리 없었다. 하긴 설명한다고 해도 도대체 무슨 얘기를 하는 것인지 알아들을 리도 없었다. 우선 얼마나 장황한 얘기가 될 것이며, 또 비능률적인 얘기가 될 것인지. 책상을 하나 사면 될 것 가지고 말이다. 고물장수는 탁자 다리를 바깥에 내어 놓았다. 신문지며 병들도 함께. 그리고 계산을 했다. 총 5백원이었다. 내가 그렇게 싸냐고 항의하자 하나씩 세어보이며 웃음을 흘렸다.
그러니까 탁자 다리는 단돈 백원이었다. 그렇게 긴요하게 쓰던 것이 단 돈 백원이라니! 고물 장수는 물건들을 가지고 갔다. 그의 어깨너머로 탁자다리의 고무달린 끝이 삐쭉하게 보였다. 이상하게 서글픈 감정이 밀려왔다. 오랫동안 나는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꼭 다정한 이를 배웅이라도 하는 것처럼. 그리고 마루 여기저기 아무렇게나 쌓여 있는 물건들을 바라보았다. 모두 얼마씩이나 될까 하고 생각하면서.
그러다 여기 있는 사람들(인부들이며 기술자, 아줌마, 나 등등)의 값은 도대체 얼마씩이나 될까 하는 생각을 하고는 깜짝 놀랐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도저히 그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나는 먼지 낀 거울 앞으로 가서 나의 몰골을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뽀얀 먼지 속으로 나의 모습이 보였다. 순간 묘한 연민의 감정이 나도 모르게 솟아올라서 이러다 눈물이 나는 게 아닐까 하는 의구심마저 들었다. 그건 분명히 나의 모습인데도 영 살아 있는 것 같지 않았다. 그저 물건.
값 또는 댓가 - 그것은 분명 인간이 만들어낸 말이다. 그러나 모든 물건에 값이 매겨지면서부터 인간은 자신에게도 값을 매기지 않을 수 없었다. 이유, 내력 여하를 불문하고, 그것이 지위이고 계급이고 한 달 치의 봉급이고 기능이다. 우리는 대개들 그만큼씩의, 저만큼씩의 값을 받고 있다.
하긴 값의 개념에서부터 평등의 개념이 나올 수 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값>에서 인간만은 빠져 나갔으면, 그래서 인간은 결코 물건이 아님을 물건들에게 자신 있게 외쳐 줄 수 있었으면……. 그러나 그럴 수 있을까? 어떻게? 이 문명을 또 문화마저도 부순다면?
멀리서 고물장수의 가위질 소리가 들려왔다. 가위질 소리는 아주 신선하게 열어놓은 창밖의 햇빛 속으로 퍼졌다. 곡괭이질 소리도 그쳤다. 참 화창한 봄날이었다.
*작법 해설*
붙였다 떼었다 할 수 있는 탁자 다리를 소재로 한 작품이다. 소재는 천지개벽적인 이야기라도 본질상 신변잡사다. 책상다리 이야기를 소재로 삼아 책상다리 이야기만 하고 말면 신변잡기가 될 수밖에 없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되는가?
사실의 소재(신변잡사) 자체를 작품의 제재로 삼는 양식상의 특징을 가지고 있는 수필이 창작할 수 있는 기본 창작 세계는 [이것]이라는 소재를 <저것> 이라는 다른 무엇에 접목하여 주제를 형상화하는 것이다.
이 작품의 탁자 다리가 창작물로 태어나게 되는 계기는 작중 화자가 고물장수에게 끌려 멀어져 가는 탁자 다리를 바라보다가 여기 있는 사람들의 값은 얼마나 될까 하는 생각으로 건너뛰게(접목) 됨으로서다. 이 접목에서 탁자 다리가 ‘인간의 값’이라는 주제를 형상화하는 은유적 사물로 태어나게 된다.
이 작품의 <鳥자 치킴>은 ‘하지만 <값>에서 인간만은 빠져 나갔으면’을 들어야 할 것이다. 사람의 값은 얼마나 될까 하는 생각은 누구나 한다. 그러나 값에서 인간만은 제외해 놓고 싶다는 데까지 생각의 샘을 파 들어가는 것이 문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