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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를 깍으며 / 정성화

장대명화 2012. 10. 6. 02:02

 

                                 사과를 깎으며/정성화

 

   여름이면 도로의 아스팔트가 눅진눅진해질 정도로 대구는 덥다. 겨울에는 앞니 두 개로 무전을 칠 수 있을 만큼 추운 것도 유명하다. 그래서인지 대구에서 오래 살았다고 하면, 나를 보는 사람들의 눈초리가 바뀌어지고, 어떤 예민한 사람들은 “대구 여자한테는 못 당한다.”며 얼마간의 거리를 두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나는 속으로 ‘대구 사과는 잘도 먹는 것들이...’ 하며 궁시렁 댄다.

 

 사과가 제대로 된 맛을 내려면 일정 기간 동안 아주 추운 날씨가 필요하다고 한다. 대구가 유난히 추운 것은 좋은 사과를 맺으려는 사과나무들의 뜻이 하늘에 닿아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나의 어린 시절에 대한 ‘내용증명’을 떼어본다면, 틀림없이 ‘국광과 홍옥을 많이 먹었음’이라는 항목이 들어 있을 것이다. ‘부사’라는 품종에 밀려 이제는 더 이상 생산되지 않는 사과이지만, 그 때는 가장 흔하고 값이 싼 과일이었다.

 

 옷에다 대고 몇 번 문지르기만 해도 장미꽃 빛으로 싱싱하게 살아나던 홍옥은 달콤하면서도 신맛이 강해 눈까지 시큼거리게 했지만, 끝내는 상쾌한 맛이었다. 상냥하면서도 새침한 도시 소녀 같은 홍옥에 비해, 국광은 무뚝뚝하면서 뚱해 보이는 시골 처녀의 이미지였다. 가을 햇살이 아무리 정성을 바쳐도 시퍼런 색 그대로인 국광은 껍질이 두껍고 질겼는데, 그래도 개운한 뒷맛은 정말 일품이었다.

 

 긴 겨울밤 어머니는 사과를 자주 깎아주셨다. 여섯 아이 중 하나 둘은 이미 초저녁잠에 빠져든 시간, 눈이 말똥말똥한 아이들은 사과를 깎는 어머니 주위에 둘러앉아 어머니의 손끝을 따라 눈망울을 굴렸다.

 

 사각사각 사과 깎는 소리를 따라 사과 향기는 조용히 퍼져 나갔다. 빨간 홍옥을 깎을 때 어머니는 일부러 사과 껍질을 한 바퀴만 돌려서 끊어내셨다. 빨간 동그라미가 되어 떨어지는 사과 껍질을 먼저 주우려고 애쓰던 동생들. 선생님이 숙제 공책에 그려주던 동그라미보다 더 많은 동그라미가 우리들 마음 위에 소리 없이 내려앉고 있었다.

 

 뽀얗게 드러나는 사과의 살빛도 고왔다. 이번 사과는 더 달겠다느니 아닐 것 같다느니 하는 군말이 보태지고, 여기저기 군침 넘어가는 소리까지 얹혀지고 나면, 사과는 한층 더 단맛을 내었다. 사과를 깎기만 하고 한 조각도 먹지 않는 어머니의 입에 사과 한 조각을 얼른 넣어드리는 동생이 있어, 우리들의 마음까지도 덩달아 순해지던 밤이었다. 작지만 또렷이 박혀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사과는 정녕 우리에게 위로의 과일이었다.

 

 대학을 다닐 때 같은 과(科)에 부산에서 온 남학생이 있었는데, 어느 날 그는 사과 대문에 자신의 운명이 바뀌었다며 투덜대었다. 대학 입학 원서를 낼 무렵, TV 화면으로 ‘능금아가씨’라는 휘장을 두른 어느 미인을 본 것이 화근이었다고 했다. 빨간 사과 바구니를 들어 보이며, “여러분, 사과의 고장 대구로 오세요.”라며 살포시 웃는데 그만 정신이 아득해지더라는 것이다. 예쁜 사과를 먹으며 하루하루 미모가 여물어져 가고 있을 미인들이 연상되어, 더 이상 망설일 필요가 없더라고 했다. 그런데 산지(産地)에 와서도 여태껏 빈손이니 어쩌면 좋겠느냐는 하소연이었다.

 

 순간 포착을 얼마나 잘 하느냐가 문제겠지만 누구에게든지 뉴턴(Newton)의 사과, 기회의 사과는 떨어지는 법이다. 그 뒤 전해들은 이야기에 따르면, 그는 마침내 사과처럼 어여쁜 아내를 얻었고 예쁜 두 딸까지 덤으로 받아 잘 살고 있다고 한다. 사 년 간 한결같이 사과나무 주위를 맴돈 보람이라 하겠다.

 

 좋아하는 과일에 따라 그 사람의 애정관을 알 수 있다고 한다. 바나나를 좋아하는 사람은, 대개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면 머리에서 발끝까지 ‘나, 사랑에 빠졌어요.’라는 표를 낸다고 한다. 껍질을 벗기지 않아도 온 사방에 향기를 퍼뜨리는 바나나를 닮아서 그런 것 같다. 또 배를 좋아하는 사람은 한 번 정을 준 상대에게 평생 변함이 없는 진국이라 하고, 사과를 좋아하는 사람은 사랑에 쉽게 빠지지 않으며 어떤 상대가 나타났다 해도 꽤 심사숙고를 하는 편이라고 한다. 가지에 매달려 있는 사과를 보면 짐작되는 얘기다. 사과는 늘 깊은 생각에 잠겨있는 듯이 보인다, 사람이 가까이 다가가도 눈치를 못 챌 정도로.

 

 사과 때문에 인간이 에덴동산에서 쫓겨나게 되었다고 하지만, 어쩌면 인간이 신(神)의 속박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된 계기라고 할 수도 있다. 신을 상대로 자신의 의지를 처음으로 표현하는데 쓰였던 사과, 그것은 인간에게 있어서 생각의 시원(始原)이었다. 사과를 많이 먹으면 지능이 높아지고 기억력이 좋아진다고 하는 것도 이와 연관이 있을 듯싶다.

 

 사과는 껍질을 벗겨두면 이내 색깔이 변한다. 속살이 드러나는 것을 부끄러워한다는 뜻이다. 자신의 치부가 드러난 줄도 모른 채 뻔뻔한 얼굴로 대로(大路)를 활보하는 일부 인간들에 비하면, 사과는 부끄러움이 뭔지 미리 배우고 세상에 나온 듯하다. 우리가 만일 사과의 언어를 알아듣고 사과의 언어로 말할 수만 있다면, 사과나무는 틀림없이 우리에게 좋은 친구가 되어주었을 텐데.

 

 사과를 깎을 때 나는 사과껍질이 끊어지지 않게 하려고 애를 쓴다. 사과 껍질 속에는 왠지 사과가 걸어온 길이 고스란히 들어 있는 것 같아서다. 그러나 사과껍질이 끊어질 때는 하산 길의 등산객처럼 잠시 쉬기도 한다. 그리고 다시 사과껍질이 내는 길을 따라 천천히 돌아 내려온다. 사과를 깎는 손은 옆으로만 가고 싶어 하나, 어느새 칼은 사과의 맨 아랫부분을 돌고 있다. 우리네 인생도 그렇게 내려오는 것이리라.

 

 사과를 깎으며 우리 삶의 하산 길도 이렇게 부드럽게 돌아 내려오는 길이었으면, 그리고 은은한 향기가 풍겨나는 길이었으면, 그리고 누군가에게 아낌없이 자신의 과육(果肉)을 내어주고 오는 길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내 생각을 읽었는지 사과는 어느새 조금씩 부끄럼을 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