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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 우정 ㅡ 허영자

장대명화 2010. 12. 4. 22:48

                                                              여성의 우정 / 허영자

                                                                                                                    

 

 사람들이 흔히 말하기를 남성들은 우정이 일생을 지배하지만 여성에게 한증 더 영향을 미치는 것은 우정보다는 애정이라고 한다. 그만큼 남성에게는 교우관계가 더 중요하고 여성에겐 결혼이나 가족이 더 중요하다는 뜻일까.

 유유상종이라는 말이 있다. 사람도 또한 그 가치관이나 사고의 세계, 취향 등에서 의기투합하는 이들끼리 만나게 마련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 사람을 알려면 그가 사귀는 친구를 보라고 한다.

 남성이나 여성이나를 막론하고 친구는 소중하고 보배로운 존재이다. 죽마고우니 소꿉친구니 하여 어린시절부터의 친우관계가 내내 지속되는 이들은 옆에서 보기에도 흐믓하다. 우리는 한때 밥 먹는 것도 잊고, 혹은 잠자는 것조차 잊고 친구에 심취하는 시절이 있다. 가족 아닌 타인과 맺어지는 관계에서 친구만큼 가깝고 살뜰한 사람은 다시 없을 것이다. 친구의 영향이 때로는 부모나 스승이나 형제의 영향보다 훨씬 더 크게 끼칠 때가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악우와의 교우를 경계하고 이지러짐이 없는 훌륭한 인품의 소유자와의 친교를 권장하게 되는 것이다.

 헤르만헤세의 작품 '데미안'을 읽으면서 많은 독자들은 크게 공감하며 감동을 받게 된다. 그리고 그 공감과 감동은 자기의 유년기의 혹은 소년기의 체험과 연결되는 점에서 훨씬 더 직접적인 느낌과 실감을 자아내게 된다. 악동의 시달림으로부터 싱클레어를 구해주는 데미아, 놀랍고 신비한 세계를 펼쳐보여주는 데미안, 그는 싱클레어에게 있어 친구이며 스승이며 정신적 지주이며 미래의 이상이며 혹은 더 위대한 어떤 힘이었던 것이다.여기에는 염화시중의 정신적 교류와 영혼의 대화가 있는 것이다. 이러한 관계는 친근감과 외경심이 함께 따르는 친우관계가 될것이며 이러한 우정은 우리의 눈을 새로트이게 하고 자라게 하고 우리가 우리 인생의 방향을 잡는 길에 등대와 같은 역활을 할 것이다.

 사랑이나 우정의 진실성을 논할 때에 시간적인 지속성으로 표준을 삼을 때가 많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영원을 맹세하고 혹은 변함없기를 약속하기도 한다. 진실로 오래오래 변함없는 우정의 아름다움이야 더 말하여 무엇하겠는가.

 그런데 이 지속적인 우정이 남성에게는 가능하지만 여성의 경우는 용이하지 않다고 한다. 하루도 안 보면 못살것 같고, 네것 내것을 가리지 않을 만큼 친한 친구끼리도 일단 성인이 되어 결혼을 해버리면 그만이라고 한다. 남성의 우정은 세월이 흐를수록 깊어지고 나이가 들수록 유대가 강해지지만 여성은 더욱 소원해지고 까마득히 망각을 하는 수까지 있으니 여성의 우정이란 남성의 그것에 비할바가 아니라는 견해가 압도적이다. 과연 그런 것일까.

 사람은 그 육체가 성숙하듯이 영혼도 성숙한다. 정신 연령이 높다느니 낮다느니 하는 말을 가끔 듣는데 이 정신연령에선 아직 덜 자란 사람도 있고 혹은 연령에 비하여 훨씬 조숙한 사람도 있다. 이 정신 연령의 성숙도에 따라서 사물을 보는 안목, 인생을 이해하는 힘은 다르게 마련이겠다.

 우정이란 어쩌면 이 정신 연령의 상합에서 맺어지는 것이 아닌가 한다. 그러기에 노소동락이란 말도 있지 않은가. 또한 그렇기 때문에 비록 어릴적 친구라 할지라도 자라는 과정에서 그 우정의 밀도는 변화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정의 변함없는 지속은 훌륭하고 또 바람직 하지만, 그것이 변하고 또 친구가 바뀌고 하는 것도 자연스럽고 마땅한 일이다. 이런 의미에서 남성의 비교적 지속적인 우정이 옹호받듯이 여성의 가변적 친우관계도 공경받지 말아야 하겠다.그것은 정신연령의 높이에 따르는 취사선택이라고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여성이 어른이 되어 결혼을 하면 친구와의 우정은 결혼 전까지라고 보는 견해에 대하여서도 우리는 좀 시정을 가할 필요가 있다. 우선 사회는 아무리 여성이 사회 참여를 하고 있다고 하여도 남성이 주도권을 쥐고 있는 사회이다. 가정이 부가장 중심은 말할 필요도 없겠거니와 여성과 남성의 기능이 서로 다른 만큼 결혼 이전에 비슷한 일에 종사하던 남녀라 하더라도 결혼 후에는 남녀의 직책이 확연히 구분되기 일쑤이이다. 남성은 가정을 가지면서도 자기의 사회활동에는 변함이 없지만 여성은 가사운영, 출산, 육아, 등등으로 대부분의 정력과 시간을 가정에 기울이게 된다.

 여성이 우정보다 애정을 더 소중히 여긴다함은 이러한 주변적 상황 때문에 듣게 되는 소리이지 우정 그 자체가 변하였기 떄문에 듣는 이야기는 아니다. 물론 결혼 후에는 결혼 전처럼 자주 옛 친구를 만나고 담소할 시간과 여유가 줄어들고 또 특별히 이성 친구인 경우 같은 때에는 사회적 재약에 구애받음도 적지 않겠다. 그러나 그 어느 경우에도 그것은 외적 상황의 문제이지 본질적인 얘기는 아니다.

 기실 애정이나 우정을 재는 척도는 양적 헤아림이 아니다. 그것은 보다 질적으로 농축되고 증류된 귀한 감정이다. 어찌 여성의 우정을 그렇게 가볍게만 평가하려 드는가. 비록 가까이 만날 수 없는 옛친구라 할지라도 그에의 연연한 그리움과 사우의정은 끊어진 것이 아니다. 아니 오히려 땅속으로 흐르는 지하수처럼 더욱 은근하고 도도한 흐름으로 가슴속에 살아 있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