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선문답茶禪問答 / 김 태 정金兌庭
다선문답茶禪問答 / 김 태 정金兌庭
1975년<한국문학>신인상 수상
동병(銅甁)이 울기 시작한다. 솔바람소리[松風]가 들리고, 솔잎 사이로 파아란 하늘이 보이는가 했더니, 그리운 사람처럼 굵은 소나기가 회나무 넓은 잎을 두들기기 시작한다.
마치 사립문을 건드리는 지팡이의 둔탁한 소리라고나 할까?
슬며시 내다보면 노선사(老禪師)의 맑은 미소가 기다리고 있다. 그분을 서재로 안내한다.
화로에서 주전자[銅甁]를 내려 죽로(竹爐)에 옮긴다. 노선사는 그동안 두루 유람다닌 고장의 경관이며 풍수지세(風水地勢)를 다시금 말씀으로 그려 보인다.
노선사의 이야기가 한 가닥 끝나면 나는 동병의 물을 차호로 옮겨놓고, 다시 노선사의 조용조용한 말씀이 흐르면, 갈증이 일어 차관(茶罐)으로 눈이 가고, 한 모금씩, 맛이랄 수도 없는 향내를 적셔 가노라면 세상이 지닌 빛깔들이 아련한 자연(紫烟)으로 변해 간다. 모든 만상이 무엇을 위해서 제각기 빛을 지니는지 알 길이 없다.
이렇게 한 빛으로 어울릴 수 있는 것들이 왜 저다지도 많은 빛깔로 분화되었을까? 노선사는 곧 나의 표정을 살피고, 내 쓸모없는 상념들이 무상(無常)이라고 일깨워 준다. 그 조용한 말씀 속에서 잠시 갈증을 느낀다. 차 한 모금을 혀끝 위에 굴려 본다. 맑은 타악기 소리가 울린다. 그러노라면 하나의 가냘픈 선율이 장엄한 오케스트라로 울려 퍼진다.
우리가 차를 끓여 보면 역시 바탕이 되는 물이 크게 맛을 좌우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시원스레 쏟아지는 수돗물이 맑은 듯해도 희뿌연 약품과 더불어 떠다니는 불순물을 육안으로도 식별할 수 있다.
약품이라 해보아야 역시 사람의 손으로 만들어진 불순물일 뿐 그것이 필연적인 연성(緣成)이 아닌 바에야 본성을 넘을 수는 없는 일이 아닌가.
좋기야 산가 벽지 옹달샘의 정화수가 으뜸이지만, 고운 모래를 불에 볶아서 동이에 깔고 하루 정도 잠재운 물이면 제대로의 차맛을 낼 수가 있다.
그 물을 동병에 넣어 끓일 때 물에 열기가 오를라치면「쏴」하는 솔바람소리가 들리고 잠시 지나면 소나기가 나뭇잎을 치는 소리처럼 푸득거리기 시작한다. 그때 차관을 죽로에 옮겨놓으면 주전자 속의 물이 대류작용을 일으키면서 조용해진다.
얼른 생각하면 물이 불 위에 있을 때가 가장 뜨거운 듯하나 실없고 헤퍼서 모든 것이 미지근하게 끝나는 것이요, 중년을 넘어서야 뜨거운 내실(內實)을 기할 수 있음과 다름이 없다. 바깥으로 뜨거운 것은 속이 허전해서 지르는 고함과 같은 것이다.
대류가 멈춘 구적후(俱寂後)라야 비로소 차맛을 제대로 낼 수 있는 것이다. 차잎에 촉촉히 배어든 구적수를 마시게 되면, 그 맛은 필설로 표현하기 어려운 오미(五味)를 겸하게 된다. 여기에는 달되 쓰고 쓰되 달콤한 인생의 오미를 방불케 하는 것이다.
내가 강하고 남이 약해 보이는 흑백기(黑白氣)가 없어져야 속기(俗氣)를 벗어날 수 있다. 내가 즐기면 아(雅)하고 남이 즐기면 속(俗)해 보이는 것도 속기요, 내가 이기면 승(勝)하고 남이 이기면 패(敗)로 보이는 것도 속기다.
생각하는 생활이 그럴싸해도 부지런한 생활에 비할 바 아니요, 무명(無明)을 벗어나지 못하는 부지런한 생활은 방일(放逸)에 그칠 뿐이어서 그 또한 속기가 되는 셈이다.
노대가에게서 20년을 작정하고 동양화를 사사하던 젊은이가, 10여 년이나 참고 견디면서 자랑할 만한 그림을 그려 놓았다.
노대가는 일별(一瞥), 옆에 놓인 붓에 먹을 듬뿍 묻혀서 그어 버리고는 그저 한 마디.
「욕심이 많아」
젊은이는 또 10여 년, 욕심을 억제하면서 노력을 기울인 결과 이젠 정말 자랑할 만한 그림이 된 성싶었다.
노대가는 또한 일별, 그러곤 그저 한 마디.
「 욕심이 없어」
유(有)를 의식하고 무(無)를 의식하고 있는 동안은 역시 유와무의 종노릇에 불과한 일. 유도 아니며 무도 아닌 중도(中道)에 이르른 후라야 일심(一心)에 도달하게 되는 것이다. 이 경우의 일심이란 외곬의 마음이 아니요, 자기의 우주 속에 안착하는 귀일(歸一)의 영역이 되는 셈이다.
무엇을 하든 참는다는 마음의 배후에는 독선(獨善)이 깃들이고 있는 법이다. 또한 욕심을 초월하지 못하는 상태이다. 참는다는 생각을 초월한 무생인(無生忍)의 경우가 되어야 공도(公道)에 이를 수 있을 것이다.
공도란 사도(私道)가 무너져 버린 상태를 이른다.
돌이켜 보면, 욕심이 많음도 속기요 욕심이 없음도 속기다. 유도 속기요, 무도 속기다. 그러니 이를 따른 독선이나 사도야 이를 것이 있겠는가?
자기 애착을 버리지 못하는 한, 예술이 궁극적으로 지양하는 공도의 성역을 디딜 수는 없는 것이다.
노선사의 말씀이 귓전에서 떠나지 않는다. 수희공덕(隨喜功德)에 관한 말씀이었던가? 우리는 흔히 남의 좋은 일, 착한 일을 별수없는 일이라고 넘겨 버리기 쉽다. 기뻐하기는커녕 불쾌하게 느끼기까지 한다. 매우 위험한 속기다.
남의 덕행을 좋아한다는 것은 자기에게 있었던 본능적인 질투심이 없어진다는 것이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남의 좋은 일을 괜히 좋아할 필요가 없다고 하는 야릇한 질투심을 지니고 있다. 이러한 성을 무너뜨리고 활짝 열어젖힌 공정한 빈터에 다른 사람의 좋은 일이 온전한 모습으로 들어올 때를 기다리지 않으면 안 된다.
옛날 정 만서라는 이가 있었다. 어느 날, 그가 친구들과 더불어 윷을 노는데 모가 나올 때마다「앗따 좋다, 얼씨구 좋다」박수를 치고 춤을 덩실거리며 추어 댔다. 번번이 그러므로 보다 못해 이쪽편 사람이「여보게, 자넨 미친 사람 아닌가. 우리 편은 지고 있고 자꾸 저쪽 편에서 이겨 가는데, 자넨 무엇이 좋아서 춤을 추나?」그러자 정 만서,「허, 이사람 보았나. 우리 편이고 저편이고 지금 그런 것 따지게 됐나. 윷이 나왔으니 좋고 모니까 좋달밖에. 좋은 것이야 아무려나 좋은 것 아닌가」
이러한 지경에 이르게 되면 세간안(世間眼)을 초월한 혜안(慧眼)의 경지까지 나아간 셈이 된다.
범상인(凡常人)이라도 육안(肉眼)과 심안(心眼)은 나름껏 갖추게 마련이다. 사람이 감관(感官)을 통하여 모든 산물을 감지하는 외적 인식(外的認識)은 육안이 될 것이며, 미(美)와 추(醜)를 가려 볼 줄 아는 내적 안목(內的眼目)은 심안이 될 것이다. 육안과 심안은 우리가 보통 세간에서 보는 바지만, 속기의 범주를 벗어나려면 적어도 혜안의 범주에 들어가야 하리라 본다.
혜안이 열리게 되면, 나[我]라는 것이나 내 것이라고 하는 아집(我執)은 말끔히 스러지고 모든 곡견(曲見)이 부서져 버린 평정한 처지에서 자유로운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 노선사는 목이 마르시다.
이것이 바로 탈속(脫俗)이다. 모든 불편한 자리에서 벗어난다는 의미도 된다.
예술인이란 또 다른 삶을 덤으로 부여받은 고행자이다. 고행자는 안일한 자리에 머물러 인생을 방관하지 못한다.
노선사는 마지막 따뤄진 차를 들고, 어린 후배를 향하여 말씀하신다.
「예술은 보다 밝은 삶을 예언하는 값진 슬기라할 수 있소. 그러자면 자기류의 속기를 벗어던지고 공도(公道)와 혜안에 이르기 위하여 처절한 내적 전쟁을 감수하여야 할 것이오」*
(창작문예수필 시각에서 뒤돌아 본 70년대 등단 작품)
비평자는 이 작품의 서두 "동병(銅甁)이 울기 시작한다."에서 부터 중간 부분 "대류가 멈춘 구적후(俱寂後)라야 비로소 차맛을 제대로 낼 수 있는 것이다. 차잎에 촉촉히 배어든 구적수를 마시게 되면, 그 맛은 필설로 표현하기 어려운 오미(五味)를 겸하게 된다. 여기에는 달되 쓰고 쓰되 달콤한 인생의 오미를 방불케 하는 것이다."의 문단까지에서 한 편의 시 작품을 읽었다. 그런데 그 시는 운율이 배제된 <산문의 시(창작문예수필)>라는 것이었다.
운율은 시 문학 고유의 특질적 조건인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율문이라고 해서 다 시가 아니라는 사실 또한 시문학이 논하고 있는 시론의 하나다. 그렇다면 운율이 배제되었다고 해서 반드시 시가 될 수 없는 것은 아닐 것이다. <산문의 시(창작문예수필)>는 시(poetry)를 산문형식으로 형상화한 새로운 시학의 문학양식이다.
70년대의 수필 당선작인 이 작품은 장차 나타날 그 같은 <산문의 시> 문학 시대의 예고편 같은 아름다운 작품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