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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부인 / 김 지 수

장대명화 2012. 8. 5. 17:16

 

                                                      사부인(査夫人) / 김 지 수

 

사부인! 사돈댁과 측간은 멀수록 좋다지요? 가까워도 산모퉁이 하나는 돌아야 하다는 옛말이 있는 걸 보면 서로 어려운 관계라는 뜻일 겁니다. 그러나 오늘 당신은 제 도마 위에 올랐답니다. 국이 될지 구이가 될지는 저도 모르겠지만 오늘은 왠지 사부인이 생각나네요. 사부인은 아들 둘, 딸 넷의 맏이, 저는 아들 셋, 딸 다섯의 막내입니다. 우리의 본향은 서로 충청 남, 북도로 이렇게 태어남부터 비슷하면서도 또 다른 환경입니다.

 

 이천 이년 어느 가을날, 나는 큰아들을 앞세우고 테헤란로에 있는 높다란 빌딩 꼭대기의 음식점으로 향했어요. 상견례를 위해서지요. 아들과 나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옷 중에 제일 좋은 것으로 차려입고는 늦지 않으려고 서둘렀답니다. 그런데도 서연이와 사부인 내외분께서 먼저 와 계시더군요.

 

 사실 좀 늦은 감이 있었어요. 이미 아이들은 양가에 인사를 마친 뒤 꽤 여러 날이 지났으니까요. 이자리가 말하자면 부모들의 선을 뵈는 날 아니겠어요? 지금은 상견례가 약혼을 대신한다는 말을 익히 들은 터여서 저는 내심 기별을 기다렸지요. 아들의 재촉을 받고서야 뭐 이 쪽 저 쪽을 따질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으로 여러 곳을 물색 했어요. 경험이 있는 친구에게 물었더니 그곳은 혼사가 무사히 이루어지는 좋은 곳 이라는 겁니다. 시원스레 탁 트인 방의 전망이 좋았지요? 다섯이 사용하기에는 좀 크고 넓은 감은 있었지만.

 

 사부인은 우리를 맞이하며 “저희는 존경하는 마음으로 이곳에 왔답니다. 둘이서 키워도 힘든 세상에 혼자서 어찌 그리 아들들을 잘 키우셨어요?” 라는 한방의 강한 라이트 훅으로 제 맘을 흔드시더군요. 제가 말에 민감하다는 걸 어찌 아셨는지? 혹 저에게 있는 신(神)기가 부인께도 있는 건 아닙니까?

 

 그 말이 어찌나 봄밤의 라일락 향기같이 부드럽게 온몸을 감싸던지요. 사부인의 그 달콤, 쌉싸름한 초코렡 펀치에 제 마음은 이미 노골노골……. “가슴으로 키웠답니다. 그리고 저는 따님을 택한 아들을 믿어요.” 공들여 키웠고 잘난 아들이니 함부로 하지 말라 이거 아닙니까? 티를 냈지요.

 

 더 볼게 없겠다 싶었어요. 딸은 엄마를 닮는다잖아요. 제가 얼마나 애면글면 속을 태우며 살아온 나날인지 사부인은 짐작도 못 하실 거예요. 이유야 어찌 되었든, 혼자라는 죄 아닌 죄는 수없이 찢기는 아픔을 가슴에 넣은 채 살아야 했거든요. 그 마음을 짐작한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겁니다. 내 피부치도 눈치 못 챈 일이니까요. 왜냐면 내색은커녕 더 홀가분한 척……, 또, 타고난 저의 밝은 기질이 그리 되었나 봅니다. 그런 저에게 사부인의 한마디는 트레펑이 된 거에요. 정말 묵은 체증이 쑥 뚫린 듯 시원했습니다.

 

 사실 저는 아들의 결혼준비는 전혀 하지 않고 있었답니다. 왜냐하면 아들은 박사과정 2년차였고 또 작은 아이는 유학을 가게 되었거든요. 거기에 서초동에서 이곳 광주로 집을 옮긴 해였고, 어렵사리 작지만 건물도 장만한 해여서 이것저것 경황이 없었답니다. 게다가 결혼까지? 저로선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무리였지요. 그리고 서둘러 시어머니 간판을 달고 싶지도 않았군요.

 

 그런데 남들은 저의 타는 속도 모르고 축하한다, 복도 많다, 무슨 일이 그렇게 일사천리로 잘 되느냐며 부러워 하드구요. 그 일사천리에 숨이 막힐 지경인 제사정은 아랑곳도 없이……. 속이 석탄 백탄 말이 아니었답니다. 댁에선 따님 나이가 서른이 되니 서두르는 것 같고 또, 은근히 살림을 따로 내었으면 하는 눈치를 제가 왜 모르겠습니까.

 

 충분히 이해하지요. 왜냐면 저라도 그랬을 테니까요. 그닥 늙지도 않은 홀시어머니, 주택은 눈만 뜨면 서로 마주해야할 아파트……. 게다가 서연이의 직장이 멀다는 이유로 아들도 은근히 살림을 났으면 하드군요. 저는 최고로 잘난 줄 알았던 제 아들이 첨으로 섭섭하더라구요.

 

 아들이 해외 출장을 간 어느 날, 궁리 끝에 따님을 불렀어요. 현실을 알려야겠다는 생각이었어요. 당분간 같이 살아야하는 이유를, 체면보다는 솔직히, 그리고 꽤 자세히 말했답니다. 제 말을 끝까지 들은 서연이는 “예, 어머니 말씀대로 하겠어요” 하드군요. 그러는 서연이가 어찌나 고맙고 예쁘던지…… 그제야 저는 이혼사가 기쁨으로 다가오면서 제가 복 많은 여자처럼 생각이 들지 뭡니까. 아들들을 짝지우면 1년쯤은 데리고 살아야겠다는 생각은 평소의 제 신조였습니다. 왜냐하면 그래야 내 집안의 여러 다른 습관을 익히고 가족 간의 미운 정 고운정이 들어 진짜 내 가족이 되는 게 아니겠어요?

 

 과연 혼사란 인륜지 대사였어요. 모두의 축복 속에서 무난히 치루었지만 같이 살아야하는 현실 또한 쉽지 않은 대사였어요. 문을 닫지 않으면 한눈에 보이는 공간에서 신혼부부와 같이 지내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답니다. 며늘아기도 같았을 거예요. 고부간은 서로가 공공의적! 해서 별로 볼일이 없는데도 외출을 하고, 친척집을 방문하는 등 처음 해보는 시어머니역할도 만만치 않았어요.

 

 너무 격의 없이 지내면 시애미 체신이 말이 아닐 것 같고, 너무 체면을 세우다보면 영원히 남일 것 같고…… 아침밥은 해줘야 하는지 아니면 저희들이 알아서 먹고 가라해야 할지, 속옷은 같이 빨아야 할지, 네 속옷은 네가 빨아라 해야 할지…… 안 해 주자니 팥쥐 엄마 같고, 해주자니 은근히 속이 편칠 않고…… 일 같지도 않은 일이 일일이 일이드군요.

 

 신경을 많이 쓴 탓인지 몸의 이곳저곳이 안 좋았어요. 허리가 얼마나 아프던지 앉아있기조차 힘들었지요. 왜 그런 말도 있지 않습니까? 제일 큰 스트레스는 같이 살다 헤어져야하는 이별이고, 둘째는 새사람을 맞이하는 거라 구요. 경험이 있는 제 친구는 모든 일이 힘에 부쳐 그렇다더군요.

 

 몸은 약으로 다스렸습니다. 이번엔 마음 차례였습니다. 여행이지요. 아이들에게 자유도 주며 제 마음을 정리도 하고 일석이조가 아닌가요. 며느리를 얻고 첫나들이는 카나다였습니다. 이번에는 복잡한 머리를 정리해야만 하는 사명감을 띠운 여행이었지요.

 

 여행에서도 실마리는 쉽게 찾질 못했습니다. 기가 막힌 록키 산의 경치도 설렁설렁…… 그러며 잠 못 이루던 어느 밤, 한 생각이 번개같이 스치지 뭡니까. 서연이가 만일 딸이라도 내가 이런 문제로 고민해야 할까? 하나하나 섭섭했던 마음들을 며느리에서 딸로 대입시켜보니 이건 문제가 아니었어요. 그렇지! 며느리를 딸로 생각하는 거다. 나는 아들만 둘, 딸도 없지 않은가? 그제야 막힌 하수구가 확 뚫리듯이 마음이 어찌나 시원한지.

 

 저는 며늘아기 선물을 이것저것 준비했습니다. 마음이 정리되니 빨리 집에 가고 싶어졌습니다. 그 애는 처녀좌이고 나는 물고기좌로 별자리 궁합이 찰떡이라네요.

 

 아들내외는 모를겁니다. 내가 왜 여행을 자주하는지…… 주말이면 저희들끼리 있도록 일없는 외출을 한 것을. 그러한 작은 배려가 아들을 행복하게하고 꽃송이처럼 피어나는 새아기의 모습을 보는 것이 질투는커녕 제게는 행복이었답니다. 그건 저도 예상치 못한 마음이었어요. 그렇게 오순도순 4년을 살고 아이들은 분가를 했습니다.

 

며느리의 첫 생일이 되었습니다. 시집간 저의 첫 생일에 나의 시어머니님이 콩찰떡을 해주시며, ‘네 시할머니가 첫 생일에 이 떡을 해 주시더구나’ 하며 제 친정식구들을 초대해주셨습니다. 그 일을 기억하며 저는 서연이에게 똑같이 되집었습니다. 콩찰떡은 벌써 4대째 이어지네요. 사돈댁은 초대한 숫자보다 더 많이 오시어 음식은 동이 났지만 화기 애애 즐거웠습니다.

 

 아들의 첫 생일, 사돈댁도 저희를 초대하셨습니다. 외식 이었지만요. 모든 식사가 끝나고 차를 마시는 시간, 음식점 주인은 각기 다른 찻잔에 차를 대접하는 센스를 보였지요. 그 중에 나의 시선을 사로잡은 찻잔, 내 시선이 그것에 머문 것을 눈치 챘는지 주인은 내 앞에 그 찻잔을 놓드 군요. 나는 마음을 들킨 양, 그러나 기분이 마냥 좋아 “이 찻잔이 제게 안 오면 어쩌나했어요” 했더니 사부인은 “저는 저 찻잔이 사부인에게 안가면 어떻게 하나 걱정 했어요” 하셨지요? 이것이 저와 사부인의 차이랍니다.

 

 너무 얘기가 길었지요? 그런데도 아직 할 이야기가 많네요. 지금 제 집엔 작년에 담근 아기사과주가 아주 그럴듯하게 향기로워요. 한번 자리를 마련해야겠어요. 사부인, 사위는 백년손님, 사위사랑은 장모라는 말 아시죠? 그런 말도 있어? 할 정도로 요즘은 세태가 많이 바뀌었지만 저는 그 말을 믿고 싶네요. 게다가 씨암닭까지 잡는 장모를 상상한답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사부인은 믿어지는데 믿는 도끼 발등인가요?.

 

 지금은 가을과 겨울 사이, 혼자인 사람에게는 옆구리가 시린 달이라 합니다. 저요? 더 하죠. 요즈음은 가슴도 시려요. 그래서 사부인의 정겨운 말들이 더욱 그리운지 모르겠습니다. “다현아, 이담에 할 거 없으면 유엔사무총장이나 하거라” 제 손주이며 사부인의 외 손주에게 말하신 그런 덕담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