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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일기장 / 이 병 동

장대명화 2012. 7. 29. 23:58

                                                               아버지의 일기장 / 이 병 동

 

 염소가 죽었다. 염소와 함께 나의 꿈도 사라져버렸다. 소풍 갈 때 받은 돈과 친척들이 주는 용돈을 군것질도 하지 않고 모아서 토끼를 샀다. 학교가 끝나면 물놀이하는 친구들을 뒤로하고 토끼풀을 뜯었다. 그렇게 공들여 키운 토끼를 팔아 염소를 샀다. 밤마다 염소가 송아지로, 송아지가 황소로 불어가는 장밋빛 꿈을 꿨다. 그 염소가 벌집을 건드려 말뚝에 묶인 채 고통스럽게 죽어버린 것이다.

 

 내가 학교에 가 있는 동안 염소를 돌보는 책임은 아버지에게 있었다. 그런데 아버지는 나에게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 없었다. 오히려 죽은 염소고기를 맛있게 드심으로써, 어린 가슴에 대못을 박았다. 아버지가 원망스럽고 미웠다. 그러나 열세살 어린아이가 엄한 아버지에 맞설 만한 용기는 없었다. 그저 숨어서 울먹이는 것으로 원망과 서러움을 삭일 수밖에 없었다.

아버지는 지독한 잔소리꾼이었다. 자식들에게 청소를 시킬 때도 가만히 지켜보는 법이 없었다. "걸레를 꼭 짜라." "구석구석 빠진 데 없이 닦아라." "먼지 나지 않게 마당을 쓸어라." 그야말로 쉼 없이 하나하나 입을 대는 성격이었다. 아버지는 또 엄하고 무서운 분이었다. 방과 후 시킨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하면 불호령이 떨어졌다. 친구들과 장난을 치다 다쳐도 자식에 대한 염려보다 부주의한 행동에 대한 질책이 앞서는 매정한 분이었다.

 

 경북 영천의 시골 마을에서 농사를 짓던 아버지는 꼼꼼하고 빈틈이 없는 분이었다. 하루도 거르지 않고 일기와 가계부 그리고 영농일지를 쓰셨다. 친구들은 학용품을 산다는 말로 부모를 속여 더러 군것질을 했다. 그러나 바늘 들어갈 틈도 없는 아버지에게는 애초에 씨가 먹히지 않는 일이었다. 그런 친구들에 대한 부러움이 늘 마음 한구석 아버지에 대한 불만으로 똬리를 틀고 있었다.

 

 아버지는 '염소사건'이 있은 지 약 5개월 후인 1980년 1월, 아침에 들에 나갔다 돌아오신 뒤 집에서 세상을 떠났다. 오십을 갓 넘긴 나이였다. 의사는 사인(死因)을 뇌출혈이라고 했던 것 같은데, 정확하진 않다. 내 기억 속 아버지는 웃는 모습이 거의 없었다. 다정한 말 한마디 들은 기억도 없다. 그 후 내 삶엔 아버지가 없었다. 성인이 되면서 간혹 중요한 결정을 앞에 두고 문득 아버지를 떠올린 적은 있다. 그것은 아버지를 그리워해서라기보다 당신의 명석한 판단력과 추진력을 한번쯤 빌리고 싶은 이기심이라고 해야 맞을 것이다.

 

 나이 마흔을 넘어서던 그 무렵, 나는 심하게 흔들렸다. 일에 대한 염증과 삶에 대한 의욕상실로 무기력해졌다. 통제할 수 없는 우울의 파도가 몰아닥쳤다.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었다. 그때 갑자기 잊고 살았던 아버지가 문득 생각났다. 고향집에 달려가 다락의 벽장문을 열고 아버지의 일기장을 찾아냈다.

 

 그때부터 아버지를 다시 만나기 시작했다. 아버지는 20대부터 매일 일기를 써왔다. 집안에 남아 있는 일기장만 수십권이다. 일기장 속엔 내가 알고 있던 무섭고 엄한 아버지는 없었다. 나에게 큰 상처를 주었던 염소의 죽음에 대해서도 의외의 내용이 적혀 있었다. "우리 집 염소새끼가 죽었다. 정말 안타깝고 허전한 심정은 말할 수 없었지… 어린 네 마음이 얼마나 아팠겠느냐?"

 

 그뿐만 아니었다. 어머니와 우리 오남매에게 했던 당신의 심한 행동들을 일일이 반성하고 마음 아파하셨다. 대식구를 책임진 가장으로서 가족 모두를 위해 불가피한 일이었다며 용서를 구하기까지 하셨다. "나 때문에 괴로운 사람들을 한번 생각해본다. 먼저 어머니를 오늘날까지 괴롭히고, 아내 된 사람을 괴롭혔고… 요즘 와서는 자녀들까지도 괴롭게 하는 일 아닌가. 눈을 감고 생각해보니 미안하고 죄 된 마음 이루 말할 수 없는 일이다."(1973년 6월 28일자 일기) 어려서부터 소아마비 증세로 평생 힘쓰는 일을 할 수 없었던 아버지는 자기 대신 아내와 자식들을 힘든 농사일과 장터로 내몰았던 게 늘 불편하셨던 것이다.

 

 아버지는 식구들에게 털어놓을 수 없는 당신의 속마음과 처절한 반성을 일기장에 고스란히 담아 놓았다. 아버지의 나이에 이르고 보니, 나도 이제 아버지의 마음을 들여다볼 수 있게 됐다. 내가 만약 그때 아버지에게 다가가지 않았다면 아버지는 영원히 속내를 드러내지 못했을 것이고 나 또한 아버지에 대한 나쁜 기억만 평생 간직하며 살았을 것이다.

 

 다시 만난 아버지는 요즘도 여전히 잔소리와 꾸지람을 하신다. "어이구, 이 게으른 놈아, 그래서 처자식 먹여 살리겠냐?" 이제는 그 소리가 거슬리거나 무섭지 않다. 다정다감한 아버지의 속마음을 이미 알아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