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씬해지기
날씬해지기 / 장 란 순
주말이 되면 일주일분의 부식과 생활필수품을 사기 위해 대형마트에 간다. 불과 몇 년 전만해도 재래시장에 다니기를 좋아했었다. 저렴한 가격에 신선도 있는 물건을 생산자와 직거래 할 수 있고 덤으로 얹어 주는 인정이 있어서였다. 그러나 지금은 재래시장보다 대형마트를 선호한다. 넒은 주차시설과 힘 안들이고 쉽게 한 공간에서 모든 것을 다 구입할 수 있어서다.
이것저것 구경하며 메모해온 물건을 카트에 담았다. 계산대로 향하다 빠트린 것이 있어 카트를 놓아두고 빠진 물건을 가지고 돌아왔다. 급히 걸어오는 내 모습을 유심히 보고 있던 남편의 표정이 전과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무심히 넘겨 버렸다.
다음 주말이다. 마트에 갈 시간이 지나도 남편은 왠지 나설 생각이 없는 것 같다. 슬그머니 다가가 재촉해 보았지만 요지부동이다. 알 수 없는 행동이 수상쩍어 눈치만 살피고 있자니 부아가 치밀어도 참고 있는 중인데, 느닷없이 하는 말이 “뚱보아줌마 하고는 창피해서 다시는 쇼핑가지 않겠어!”라고 한다. 어안이 벙벙하고, 뒷머리를 한대 맞은 기분이다. 부부지간이라 해도 면전에서 어찌 저런 말을 할 수 있을지 생각할수록 남편이 야속하기만 하였다. 몹시 상한 마음을 추스리며 나 자신을 뒤돌아보았다. 날씬했던 몸매가 언제부터 뚱보 아줌마로 변했을까? 혼자서 고민하다 자식들에게 속내를 털어 놓았다. 답변이 의외다. “엄마 체중 조절 좀 하셔야겠어요!”이구동성이다.
그동안 음식을 대할 때마다 별미라서, 맛있어서, 남은 음식 아까워서, 상할까봐 등등 음식을 먹는 모습을 지켜보던 가족들도 차마 안쓰러워 말을 못했었나 보다. 몇 년 전에 비해 무려 십여kg이 늘어나니 입맛은 자꾸 당겨서 물맛도 꿀맛이었다. 체중이 늘어나니 몸이 무거워 움직이기가 싫어졌고, 잠은 또 왜 그리 달게 오는지 먹고 자고를 반복하다보니 운동량에 비하여 먹는 칼로리가 많아 살이 찌는 것이 당연했으리라. 몸이 움직이기 힘들어지자 매사에 의욕마저 떨어지고 여기저기 아픈 곳만 생긴다. 이래서는 안 되는 줄 알면서도 운동을 해야지 하는 것은 머릿속에만 맴돌고 행동이 따라주지 못했다. 차일피일 미루고 있던 중 길 건너에 헬스장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아들이 체중감량이 가능하고 건강에 좋다고 적극 권한다. 망설임 끝에 용기를 내어 찾아간 헬스장은 건물 맨 위층에 자리해서 전망도 좋고 깔끔한 분위기가 마음에 들었다. 중고등학생에서 부터 칠순 노인까지 연령에 관계없이 운동하는 모습이 싱그러운 젊음마저 느껴진다. 나도 젊어 질 수 있다. 날씬해 질 수 있다는 희망이 생겼다.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몸에서 살이 빠져 나가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그날로부터 운동을 시작했다.
가만히 앉아 있어도 땀이 줄줄 흐르는 삼복더위다. 각오를 단단히 하고 러닝머신에서 뛰고, 자전거 타기, 윗몸 일으키기 등으로 강도를 높여 나갔다. 삼십 여 가지의 기구를 이용하는 운동을 다 할 수는 없었지만 열심히 했다. 운동의 강도에 따라 흐르는 땀이 소낙비를 맞는 것처럼 온몸이 흠뻑 젖는다. 처음 며칠은 지치고 힘이 들어 밤이면 끙끙 앓으면서도 하루도 쉬지 않았다. 그런데 웬일인지 줄어야 할 체중계의 눈금이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자꾸만 높아졌다. 입맛이 더욱 좋아지니 음식도 맛있어지고 제중이 더 늘어나는 게 아닌가. 운동을 잘못 시작했다는 후회가 되면서 그만 둘까도 생각했다. 그러나 지금까지 해왔던 노력과 시간, 체력, 돈을 낭비하고 여기서 그만 둔다는 것이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시작해보자, 이건 자신과의 싸움이다’라며 나 스스로를 달래며 두 주먹 불끈 쥐고 뛰고 또 뛰었다. 노력의 결과는 있는 것인가 보다. 드디어 1kg, 1.5kg, 줄기 시작하여 육 개월 만에 6kg이 감량되는 걸 보면서 목표를 세우고 노력하면 좋은 결과가 만들어진다는 것을 새삼 확인할 수 있었다.
작아서 입지 못했던 옷들이 이제는 넉넉하여 편하다. 거리를 걸을 때도 운동하던 습관이 있어 허리를 꼿꼿하게 펴고 앞을 보며 활기차게 걷는다. 더구나 혈액순환이 잘 되게 하는 물구나무서기는 팔과 다리의 저림이 없어지게 만들어 건강에 좋은 것 같다. 식사량을 줄이고 소식(小食)을 하려고 애쓴다. 아니 실컷 먹어도 먹은 만큼 뛰면서 칼로리를 소모시키기 때문에 걱정이 없다. 예전에는 헬스라는 운동이 남성 전용운동인 줄 알았지만 이제는 남녀 구분 없이 다이어트를 하려는 건강운동으로 대중화 된 것 같다. 운동기구가 과학적이고 체계적이다.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내가 하고 싶을 때, 할 수 있는 만큼 목표를 세워서 적당히 조절하면 건강한 몸매를 유지하게 되는 것 같다.
예전의 모습은 아니지만 군살이 부쩍 줄어 옷맵시가 나고 활기찬 모습을 보며 자식들이 좋아한다. 주말이면 남편도 쇼핑하러 가자고 먼저 서두른다. 남편이 했던 말이 자극이 되어 시작한 운동이지만 내 적성과 체력에 맞는 운동을 하면서 나는 많은 것을 얻었다. 건강과 가족들의 사랑이다. 덤으로 남편의 사랑은 보너스다. 오늘도 나는 경쾌한 음악에 맞추어 뛰고 또 뛴다. 다이어트를 하려는 것보다 이제는 건강하고 활기찬 생활을 하겠다는 생각에서이다. ‘뚱보 아줌마’라고 남편이 자극을 주지 않았다면 지금의 내 건강이 유지되고 있었을까. 처음에는 서운했지만 남편에게 감사해야겠다. 내가 더 날씬 해지면 남편은 그 땐 뭐라고 할까. ‘날씬한 아줌마?’남편의 반응이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