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천우수 수필

밥값 ㅡ 김무룡

장대명화 2012. 3. 12. 17:17

 

                                밥값 ㅡ 김무룡

 

 

 창문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햇살에 눈이 반쯤 뜨인다. 시선을 벽시계 쪽으로 보낸다. 열 시가 조금 지나 있다. 일어날까 말까 잠시 망설이는데 욕실 쪽에서 “띠디딩 띠딩 띵” 요란한 소리가 들린다.

 

아내가 일터로 가면서 작동시켜 놓은 세탁기의 종료 신호음이다. ‘세상에 이보다 더 귀찮은 일이 또 있을까?’ 푸념을 늘어놓으며 세탁물을 건져들고 현관문을 민다.

 

 마당 한가득 모여 안방을 향해 ‘뭣이라’고 시끄럽게 재잘대던 참새 떼들이 놀라 담 너머로 달아난다. 느릿느릿 옷가지들을 빨랫줄에 하나씩 걸쳐나간다. 그러다 열린 대문으로 인기척이 들리면 빨래 뒤편으로 슬쩍 몸을 숨겼다가 나머지 것들을 대충 널고는 후딱 방으로 들어간다. 까치집 머리에 세수도 안 한 꾀죄죄한 몰골의 노출이 싫기 때문이다.

 

 커피 한 잔을 타서 배 깔고 엎드려 조간신문을 펼친다. 가진 건 시간뿐인지라 구인광고란까지 구석구석 훑어 나가다 보면 어느새 점심때가 되어 있다. 아무리 별 볼일 없는 인간이라 하더라도 먹지 않고는 살아갈 도리가 없기에 ‘아점’이란 이름으로 식사의 예를 간략히 행한다.

 

 그러고는 자전거를 밀고 나가 집 근처를 흐르는 청도천(淸道川)을 따라 한 바퀴 돈다. 허약한 육신을 단련하는 데는 딱 좋은 운동이다. 그렇게 한 두어 시간 땀이 몸에 배일 정도로 하이킹을 한 후 샤워를 하고 나면 기분이 한결 상쾌하다.

 

 슬그머니 공책과 연필을 끌어당겨 쓰다 만 글을 이어간다. 그러다 생각이 얽혀 이마에 미열이 나기 시작하면 다시 밖으로 나가 헛간에 쌓인 굵은 통나무 몇 개를 끌어내어 성질대로 장작을 패기 시작한다.

 

 백수의 세계에도 엄연히 등급은 있다. 남아도는 시간을 주체하지 못해 안절부절못하고, 주머니가 비면 전혀 외출이 불가능한 상태를 ‘아마추어 백수’라 한다. 다음으로 넘쳐나는 시간을 그리 부담스러워 하지 않으며 주머니가 비어 있어도 일단 나서고 보는 ‘중간백수’가 있다. 그리고 최고의 단계로 무궁무진한 시간을 자유자재로 활용하는 시테크 전문가이며, 주머니가 텅 빌수록 더 당당하게 행동하는 ‘프로백수’가 있다.

 

 지금 현재, 퇴직한 지 삼 년째 어영부영 살아가는 나는 중간백수에 속하는 위인이라 하겠다. 회사를 물러나던 그 날로 나는 어떤 종류를 막론하고 일을 해야만 한다, 이대로 늙어 죽을 수만은 없다, 살아 있는 동안 밥값은 해야 한다는 강박증에 시달렸다. 그래서 짧은 머리를 이리 굴리고 저리 굴려 짜낸 것이 ‘논술교사’ ‘과외선생’ ‘직업훈련원 컴퓨터 강사’ ‘헌책방 점원’ 등이었다. 그러나 그것들을 세밀히 따져 나가다 보니, 이것은 이래서 어렵고 저것은 저래서 안 된다는 이유로 해서 실현 가능성을 보인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그렇게 모처럼 떠올린 생각들이 하나씩 수포로 돌아가게 되자 급기야 나 스스로를 자책하기에 이르렀다.

 

 ‘그럼, 도대체 네가 잘할 수 있는 일이 무어냐? 그림을 제대로 그리길 하나, 그렇다고 글을 잘 쓸 줄 아나…….’ 그 순간, 머리를 획 스치는 무엇이 있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작가’라는 단어였다.

 

 살다 보니 잊고 있었지만 나는 엄연한 작가였다. 이미 7, 8년 전에 등단한 수필가였던 것이다. ‘작가는 글 쓰는 일을 업으로 하는 직업인’이라는 인식을 하게 된 그때부터 일자리에 대한 강렬한 집착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마음 한편엔 ‘작가는 배고픈 직업’이라는, 예부터 들어왔던 부정적인 이미지도 영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현실의 백수에겐 이것저것 따질 계제가 못 되었다. 오히려 ‘자신의 저서가 운 좋게 베스트셀러로 뜨기라도 한다면 하루아침에 부와 명예를 거머쥘 수도 있지 않느냐.’ 하는 들뜬 생각마저 들었다.

 

 그때부터 글쓰기에 매달렸다. 회사에 다닐 때 습작하던 것들과 몇몇 문예지에 발표했던 작품들을 포함하여 마침내 한 권의 수필집으로 묶을 수 있었다. 등단한 지 10년, 퇴직 후 3년 만의 결실이었다. 다른 사람의 저서가 아닌 내 본인의 책을 들고 보니 야릇한 기분과 함께 그간의 애환이 주마등처럼 스치면서 만감이 교차했다. 교분이 있는  문인들과 연을 맺고 사는 이웃 그리고 친척들에게 보은의 마음으로 책을 선물했다.

 

반응은 예상 외로 컸다. 붓글씨로 쓴 축하의 글을 보내준 저명한 수필가들도 몇 분 있었고, 손수 만든 예쁜 책갈피와 엽서를 보내준 노 여류 문인도 있었다. 그리고 자신의 저서를 보내준 이들도 여러 분 있었고, 피로회복과 건강증진에 좋다며 사삼차(沙蔘茶)라 불리는 더덕차를 한 박스 보내준 이도 계셨다. 어느 날은, 그 명성이 자자한 원로 문인 한 분으로부터 뜻밖의 전화가 왔다. 출간을 축하한다는 인사와 함께 나의 글에 많은 감동을 받았다면서 자신이 심사를 맡고 있는 큰 문학상을 하나 수여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꿈인지 생신지 믿기지 않는 소식이었다. 그렇게 큰 상이라면 그에 따른 상금이나 부상도 만만치 않을 거란 생각에 희색이 만면하여 전화기에다 대고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를 연발했다.

 

 그 분은 말씀 끝에 “서울의 유명한 연회장에서 시상식을 하게 될 텐데 밥값은 해야 되겠지…….”라는 말을 덧붙였다. 나는 그 순간 가슴이 덜컥하여 결례를 무릅쓰고 그 밥값의 정도를 여쭙지 않을 수 없었다. 그분은 백만 원 정도면 괜찮겠느냐고 되물었다. 잠시 머리가 복잡해진 내가 즉답을 못하고 꾸물거리자, 그 분은 다시 한 번 잘 생각해 보고 연락을 달라며 전화를 끊었다. 그 후 상을 받을 것인가 말 것인가를 두고 하루 이틀 고민하다가 깜박 잊고 지냈다. 며칠 뒤 그 분이 다시 전화를 걸어왔다.

 

 “이보게 생각해 보았는가?”

 

 “예, 하지만 저는 그 상을 별로…….”

 

 “왜? 돈 백만 원이 부담되는가?”

 

 “그런 건 아니지만……, 왠지 영예로운 문학상을 돈 주고 사는 듯한 기분이 들어서…….”

 

 “이 사람아, 요즘 천지에 그렇게 큰 문학상을 그냥 공짜로 받을 거라고 생각하는가?”

 

 “그렇긴 하지만 저는 왠지 받고 싶지가 않습니다.”

 

 “할 수 없지. 정승도 저 싫으면 못하는 법이니까. 하지만 아깝네, 최고급 상패에 트로피, 메달 등등 받을 부상만도 오륙십 만 원 어치는 족히 넘을 텐데.” 하는 것 아닌가.

 

 그때 ‘아차! 돈키호테적 나의 사고방식이 결국 차려준 진수성찬마저 내 발로 걷어차고 말았구나!’ 하는 순간적인 후회가 들었다. 놓친 물고기가 더 커 보이는 아쉬움 같은 것이라고나 할까. 그러나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이 없는 행위였음을 위안으로 삼으니 마음은 금방 후련해져 왔다. 이제 와서 생각하니 그 날의 일은 이 백수의 늦잠 중에 있었던 남가일몽 같게만 느껴진다.

 

 백수는 결코 인생의 낙오자가 아니다. 그들은 비상을 위해 지금은 바짝 몸을 움츠리고 있을 뿐이다. 헝클어진 삶의 실타래에서 하나의 실마리를 뽑아 올리기 위해 골똘히 그 내면을 살피고 있는 중인 것이다. 백수는 시간과 공간의 굴레인 직장을 벗어나 마침내 자신의 무한한 상상력과 창의력을 발휘할 기회를 갖게 된 사람들이 아닐까. 진정한 ‘자아 찾기’에 나선 사람들의 별칭을 백수라 해야 하리라.

 

 어느덧 해가 서산에 걸렸다. 곧 아내가 일터에서 돌아올 시간이다. 어서 널어놓은 빨래들을 거둬들이고, 아궁이에 군불을 지펴야겠다.

 어찌하던 밥값은 해야겠기에.

                    <월간문학 2011.9월호 게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