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천우수 수필

귀한 부자 ㅡ 박완규

장대명화 2012. 3. 12. 17:06

 

                                                                   귀한부자 ㅡ 박 완 규

 

 

 내가 다니고 있는 절에서 금강경법회가 열렸다.

불교계에서 금강경강의에 대한 권위자로 추앙을 받고 있는 큰스님을 초청했다. 금강경 한 구절 한 구절을 풀어나가는 스님의 법문은 내게 큰 감동을 주었다. 내 자신이 의심스러울 정도로 금강경 내용에 깊이 빠져들었다.

 

 색즉시공 공즉시색(色卽是空 空卽是色), 즉 세상은 모두가 실체가 없고 공(空)하다는 가르침으로 시작한 스님의 법문은 나를 푸르고 넓은 창공에 흘러가는 구름 속으로 내몰아갔다. 마음에 꽉 차있던 탐욕들이 허공으로 흩어졌다.

 

 바로 가까이 여기저기에서 “아! 역시 큰스님이다”라는 소리가 들리기도 했다. 스님의 말씀 한마디 한마디가 마치 태풍이 지나간 후의 고요함처럼 여운을 남겼다. 전국 각지에서 모여든 스님들과 불자들의 마음도 모두 한마음으로 모아졌다.

 

 법회를 마치고 신도회 간부라는 직책 덕분에 큰스님을 뵈올 기회가 주어졌다. 주지(住持)실로 가니, 큰스님은 주지스님을 비롯한 큰스님들과 강의실의 분위기와 강의하신 금강경 내용을 화두로 이야기를 나누고 계셨다.

 

주지스님께서 나를 소개시켜주셨다. 큰스님께서는 나를 찬찬히 보시더니 갑자기 손을 덥석 잡아주시는것이 아닌가. 손을 잡은체 관상이 참 좋다고 하시며 귀한 부자가 될 상이라 하셨다. 방금 법문을 통해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사물의 참모습은 공(空)일뿐 실체가 아니라고 하셨는데 법문과 상반되는 부자 관상 론 이라니! 마음속으로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더러는 “인상이 좋다”라는 말을 들어보기도했다. 하지만 법석의 자리에서, 그것도 친견하기도 쉽지않으신 그 유명하신 큰스님으로부터 그런 말을 듣기는 처음이다. 더구나 법문을 통해 깊게 감명을 받은터라 마음이 파도처럼 울렁그렸다. 더욱이 그냥 부자도 아닌 귀한부자가 되겠다니, 내심 마음이 부풀 수밖에 없었다.

 

 상대가 하는 말이란 것이 듣는 사람에게 미치는 영향이 얼마나 큰 지 알 것 같았다. 특히 불교계에서 추앙 받고 있는 큰스님께서 하신 말씀이라, 혹여 그 시간 그 장소에서 나의 관상을 엉뚱하게 말씀했다면 지금쯤 내가 살아가는 방편이 달라졌을지도 모르는 일 아닌가.

 

 큰스님의 말씀 한마디에, 공수래공수거(空手來空手去)를 외쳤던 내가 부자가 된 듯 기분이 좋았다. 이중적인 내 마음을 펼쳐 보이는 것 같아 부끄럽기도 하지만 큰스님의 부자 관상 론의 깊은 의미와 참뜻을 헤아려보는 계기가 되었다.

 

 한 신문사가 여론조사 기관에 의뢰해 세계 47개국의 행복지수를 조사하여 발표한 바 있다. 그런데 1위부터 10위까지의 대부분을 소말리아, 인도, 미얀마 등 가난한 나라들이 차지했고, 선진국인 영국, 미국, 프랑스 등의 행복지수는 40위권 밖이었다. 부자나라가 행복을 보장해주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부자는 곧 행복지수와 연관이 있을 것이다. 물질의 풍요 속에서도 행복을 느끼지 못한다면 귀한 부자의 반대편인 천한 부자가 될 것 같다.

 

 우리사회는 많이 가진 부자가 곧 행복이라고 믿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이러한 잘못된 믿음이 끊임없는 소유욕을 불러일으키며, 사회전체로 펴져 마침내 우리 모두의 생존을 위협하는 상황을 만들기도 한다.

 

천한부자가 많은 사회는 메마르고 인정미 없는 사회가 될 것이다.

 

 “행복한 부자”라는 글을 쓴 혼다켄, 그는 자신이 좋아하고, 잘할 수 있는 일을 하고, 그러면서 다른 사람을 기쁘게 하는 일을 하라고 한다. 그것이 부자가 되는 가장 빠른 길이라고 강조한다. 여기서 행복한 부자란 곧 귀한부자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큰스님의 귀한 부자라는 뜻도 이런 경우를 두고 말씀 한 것이라 생각된다.

 

 내가 사는 이곳 경주에 최 부잣집이 있다. 여러 대에 걸쳐 부자로 살아온 비결이 전해오고 있다. 만석 이상 재물을 갖지 않기, 진사 이상 벼슬하지 않기, 며느리를 3년 동안 무명옷을 입혀 허드렛일 시키기, 내 집 주위 200리 안에 굶어죽는 이가 없도록 하기, 흉년에 남의 재산 사지말기, 과객의 귀천을 구분하지 말고 후하게 대접하기 등이다. “부자열전”에 도 대인유연(對人悠然) - 남에게 부드럽게 대하라는 말이 있다. 이 정도가 되면 귀한 부자가 아니겠는가?

 

 “달콤한 부자”도 있다. TV에서 방영되고 있는데 시청률이 높다. 자산관리 정보와 소비정보를 공유하기 위해 만든 부자 전문 프로그램이다. 이 달콤한 부자는 귀한 부자와 거리가 멀 것 같다. 혼다켄의 행복한 부자나 최 부자의 만석부자나, 한참 유행하고 있는 달콤한 부자나 모두 부자는 물질이 따르기 마련이다.

 

 부자의 개념이 바뀌고 있다. 많은 것을 갖고 있는 것이 아닌, 삶의 질적 가치가 우선이다. 많이 소유하고자 욕심내는 행동이 스스로를 불행하게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재산의 많고 적음은 살아가는데 편리함과 불편함의 한 방편일 뿐, 귀한 부자의 척도보다는 한 단계 아래이리라. 큰스님께서, “물질적으로 풍요한 사람도 돈으로 해결 할 수없는 일들로 목숨을 끊는 현상을 보면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돈 많은 것이 부자가 아닙니다. 진정한 부자는 마음에 꽉 찬 욕심을 비울 수 있는 사람입니다”라고 말씀하셨다.

 

 큰스님이야말로 평안한 마음으로 많은 이들에게 삶의 행복을 주는 귀한 부자라는 생각이 든다. 귀한 부자가 곧 진정한 부자일 것이다.

 

   <등단평>

평범한 진리 속에서 발견한 보석같은 명제

박완규의 「귀한부자」는 돈 많다고 다 같은 부자가 아니고 부자 중에도 천한부자, 귀한 부자, 달콤한 부자 등 여러 부류가 있는데 그중 진정한 부자는 귀한 부자임을 말하고 있다.

불교계에서 추앙받는 큰스님이 금강경 구절을 풀이 하면서 “色卽示空空卽示色” 세상은 모두 실체가 없고 空하다는 가르침을 주었다. 다시 말하면 마음에 꽉 찬 탐욕을 버리라는 뜻이다.

그런데 법회를 마치고 개인적으로 인사를 하는 자리에서 주인공보고 귀한 부자가 될 상이라고 했다. 법회에서는 물질을 버리라 해놓고 개인면담에서는 부자가 될 것이라니 이 무슨 이율배반인가.

그러나 그 큰스님의 귀한 부자는 “진정한 부자는 마음에 꽉 찬 욕심을 버릴 수 있는 사람” 이란 뜻임을 깨닫고 부자는 곧 “재산가”라는 관념을 버린다.

그러면서 한 신문사의 행복지수도 소개하고 경주의 최 부자도 소개하며 재산의 많고 적음은 살아가는데 편리함과 불편함의 한 방편일 뿐임을 강조한다.

평범하고 흔한 진리의 발견이지만 그것을 얼마나 깨닫고 실천하느냐가 중요하다. 작자의 이런 발견은 더 없는 보석의 발견임을 느끼게 한다. 일반화된 주제이나 담담한 문체에 비교적 질서 있는 문장과 구성이 기초가 다져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