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천우수 수필

가버린 세월 ㅡ 김홍은

장대명화 2012. 3. 2. 01:12

 

                                           가버린 세월

                                                                                           김홍은

 

 나무들이 온갖 꽃을 피워 사방이 곱다. 저마다 자랑이나 하는 듯 고운빛깔이다. 산천도 온통 연둣빛, 분홍빛에 희고, 붉고, 푸르러 황홀하다. 밭가에는 서녘 햇살에 감나무 그림자도 길게 늘어져있다. 어느새 자랐는지 풀들이 수북수북하다. 감나무는 아직도 눈이 틀 기미가 전혀 보이질 않는다. 이 나무 저 나무 올려다보고 어린가지를 꺾어보건만 줄기가 마른 채 그냥 부러지고 만다. 혹시나 하고 다른 나무 곁으로 옮겨갔다. 이 나무도 마찬가지다.

 밭을 한 바퀴 둘러보건만 똑같은 형태다. 이른 봄에 오랜 기간 한파가 밀려오더니 모두 동해를 입고 말았다. 기대가 한목에 무너져 내렸다. 낙심에 한숨이 나온다. 하늘이 하는 일인걸 어디다 대고 원망을 할 수도 없다. 인생도 자연도 죽음 앞에는 어쩔 수가 없음을 안다. 식물의 죽음도 추위를 견뎌낼 수 있는 내동성(耐凍性)의 한계에 달해 이를 이겨내지 못했나보다. 예전에는 아무리 춥다 해도 삼한사온(三寒四溫)이라서 우연하면 살아남을 수 있었지만 금년처럼 한 달 내내 영하 십도를 넘게 오르내렸으니 한해를 견뎌내질 못하였나 보다.

 오백그루를 심어 놓고 사년간 정성 들여 가꾼 감나무다. 지나간 세월이 허무하다. 허탈한 마음으로 밭을 이리저리 둘러보건만 소용이 없다. 안타깝기만 하다. 밭둑에 털썩 주저앉아 먼 하늘만 바라볼 뿐이다. 몇 해는 겨울 추위를 잘 넘기더니 이렇게 모두 죽을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인생의 삶이란 염려가 되는 일은 지나놓고 나면 기어코 후회가 따르기 마련이다.

 매사를 안일하게만 생각해왔던 탓이다. 조금 더 정성을 들여 밑둥치를 짚으로 싸주었더라면 이런 일은 없었으련만, 마음이 아프다. 그동안의 노력을 쏟은 시간을 생각하니 속이 상한다. 정년을 앞두고 꿈꾸었던 구상이 한목에 무너지고 말았다. 지인들을 불러 감 축제를 벌이는 기쁨에 가득 차 있었는데 이게 무슨 일인가. 이 봄은 그저 울고만 싶다.

 다시 나무를 심자니 엄두가 나질 않는다. 차라리 밭을 팔아버리고 말까. 이생각저생각에 머리가 혼란스럽다.

 “그것 봐라 농사는 아무나 하는 줄 아나.” 오고가는 사람들이 이렇게 빈정대는 것 같기도 하여 마을 분들 보기도 부끄럽다. 농약도 뿌리지 않고 농사를 짓네 하고 으스대듯, 일일이 풀을 뽑고, 낫으로 풀을 베어 내며 피곤했던 지난 일들이 아련히 떠오른다.

 그동안 계획했던 일을 여기서 포기할 수는 없다. 다시 감나무 과수원을 꿈꾸어 보았다. 앞으로 5년을 잘 가꾼다면 꿈을 이룰 수 있으련만, 눈앞이 캄캄해왔다. 자꾸만 마음이 약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황혼에 머물러있는 인생임을 어쩌란 말인가.

 바쁘다는 핑계로 친구들과 멀리한 채 살아왔음에, 여생은 가을마다 지인들을 불러 차도 마시고, 감도 따가게 함으로 미안한 마음을 조금이라도 덜어 내렸던 심사를 허사로 돌릴 것인가. 고민이 된다. 이런 실행이 이루어지지 못하더라도 남들은 그 뜻을 모르겠으나, 심어놓은 감나무만은 알고 있겠지.

 내가 산다면 앞으로 얼마나 살 수 있을까. 공연히 감나무를 심어놓고 고생만하다 말 것을 왜 이리도 욕심을 버리지 못하는 걸까. 아내의 말대로 편히 살다가 가면 그만인 것을 쓸데없는 고집인지 모르겠다. 죽고 사는 일이야 어디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허무하게 살다가 떠날 수는 없지 아니한가. 인생이 죽고 사는 일이야 하늘에 맡겨야 할 뿐인데 어찌 이대로 허송세월로 보낼 수 있으랴.

 그렇다고 앞날을 점쳐 둔 일도 아닌데 죽을 날을 서둘러 생각하며 호의호식만 바라서도 안 될 일이다. 가꾸어온 노력들이 모두가 허사가 되고 말았다고 이대로 땅을 묵혀둘 수도 없는 일이다. 자신을 돌아보며 남은 삶을 어떤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야 하는지 자꾸만 망설여지는 사이에 우공이산(愚公移山)이란 말이 용기를 나게 한다. 

  어서 감나무를 심어놓고 세월이 지나 가을이 되어 감 축제를 벌려 누구나 마음껏 따가라고 하고 싶다. 근자열 원자래(近者悅 遠者來)라 하지 않던가. 가까운 사람을 기쁘게 하면 멀리 있는 사람도 찾아온다 하였거늘, 겨우 지난해부터 몇 개씩 탐스럽게 달리던 감나무만 자꾸 그려볼 뿐이다.

 처음부터 돈을 원한 바도 아니었다. 오직 잊으며 지냈던 그리운 사람들을 불러 인생사는 이야기를 나누며 산수를 누리며 함께 웃고 싶지 않았던가..

 내 마음을 재촉이라도 하는 냥, 농장입구에는 ‘뻐꾹새 우는 농장’이라고 걸어 놓은 빛바랜 플랜카드가 찢어진 채 바람에 펄럭댄다. 먼 산의 나무들도 어느새 푸른빛이 가득하다. 어디선가 봄을 알리는 장끼의 힘찬 울음소리도 정겹게 들린다. 이웃 밭에서는 노부부가 고추묘를 심느라 바쁘다. 내일 아침부터 일찍 감나무묘목을 심을 준비를 서둘러야 하겠다.

                                        <2012 에세이 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