綠陰 아래서 / 김동리
綠陰 아래서
-스스로 묻고 답한다
김동리(金東里)
나는 요즈음 하는 일 없이 소파에 앉은 채 뜰 밖만 우두커니 내다보고 있다. 뜰에는 나무들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집 뜰의 나무들은 은행나무와 향나무들을 제외하고는 모두가 꽃나무다. 그래서 꽃이 가장 많이 피는 오월 한 달 동안은 뜰에 가득 꽃이 피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그러나 요즘(유월)은 일년초(꽃나무)와 무궁화 수국 이외에는 꽃이 별로 없고 거개가 그냥 녹음이다. 녹음방초 승화시(綠陰芳草勝花時)란 말도 있거니와 녹음이래서 결코 꽃보다 가관이 못한 바도 아니다. 녹음을 그대로 푸른 꽃으로 봐도 된다.
그러니까 결국 나는 온종일 뜰에 어울어진 녹음을 우두커니 바라보고 있는 셈이 된다.
―녹음을 바라보는 일은 그렇게도 즐거운 것일까.
―결국 즐겁기 때문이리라.
―나무(녹음)를 바라보고 있으면 늙지 않을까.
―천만에 그럴 리가 없다. 그렇지만 푸른 나무는 어딘지 영원한 청춘을 연상시킨다고 할 수는 있겠지.
―뜰의 나무를 바라보고 있으면 편안히 죽을 수 있을까.
―그건 죽을 때 봐야 안다. 그러나 내가 수풀(녹음)을 바라보고 있는 일은 그 자체가 이미 죽음을 생각하고 있는 거나 마찬가지다. 그러나 수풀, 또는 녹음을 바라보면서도 생각되는(느껴지는) 죽음이란 무언지 조금은 언제나 즐거움을 곁들이고 있다. 잠결에 가끔 생각나는 죽음은 언제나 한없이 어둡고 쓸쓸하고 두렵고 아득하기만 하지만.
―뜰과 뜰의 나무를 가지기 전에도 그러한 죽음에 대한 위협을 느꼈는가.
―물론이다. 그것은 몇 살 때부터인지도 모르게, 퍽 어릴 때부터 생겨나서 지금껏 계속되고 있는 병이랄까, 습관이랄까 그런 거다.
―그러한 <병이랄까 습관이랄까>하는 것과 문학과의 관계는 어떻게 되는가.
―내가 어려서 시를 지은 것이 있다. 꽤 많이 있었겠지만 커서 보니 쓸만한 것이 없어 다 내버리고 그 중에서 몇 편은 아무래도 버리기가 아까와 가끔 손을 대고 지금까지 남아 온 것인데 그 중의 하나.
廢家
언제나 방문 닫힌 오막이 한 채
잡초 속에 앉아 있어
누가 켜는지
밤이면 종이 등 하나
처마 끝에 걸려 있고……
疫疾 치른 그 해 여름
유달리 모기가 끓어
오막을 에워싸고
모기는 떼 지어
옛날의 모기 떼 몰려와 울다.
이 시는 제목이 「폐가」로 되어 있지만 본래 제목은 「죽음의 집」이다. 「죽음의 집」이란 어감이 좀 거북해서 「폐가」로 고쳤지만, 이 시의 내용으로 보아서는 역시 「죽음의 집」이 어울릴 것이다. 그만큼 이 시는 처음부터 끝까지 <죽음>으로 가득 차 있다.
이 시를 처음 지은 것은 열 대여섯 살 때이지만 시상(詩想)은 그보다도 훨씬 이전부터 마음속에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나는 가끔 <나의 우울했던 소년 시절>이란 말을 쓰지만, 이 시는 그러한 나의 소년 시절을 대변하는 가장 적합한 기록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 무렵의 기억은 그것뿐인가.
―초기엔 주로 시를 썼기 때문에 <그 무렵의 기록>이래서 더 찾아본대도 역시 시에서 찾을 수밖에 없다.
―염세나 자살 같은 것을 시도한 일이 있는가.
―없다고 하는 편이 옳다. 있어도 시정적(詩情的)인 것이었다고 생각한다.
―지금은?
―지금은 더욱 그렇다. 나는 세상이 싫다거나 사는 것이 괴로워서 죽음을 생각한 일은 별로 없는 것 같다. 그와 반대로 나는 세상에 집착이 강하고, 삶이 대견해서 곧장 <죽음>을 생각하는 것 같다. 가령 어느 오월의 늦은 아침 뜰의 감나무 아래 선다. 감나무에는 하얀 감꽃이 달려 있고, 감나무 잎에는 이슬이 맺혀 빛나고 있다. 그 앞에는 겹철쭉 황철쭉 영산홍 그리고 여러 빛깔의 장미들이 피어 있다. 그리고 뜰가에는 짙푸르고 두꺼운 잎새의 은행나무들이 둘러서 있다. 나는 이런 것을 보고 한 없이 아름답게 느끼면서도 마음 한 귀퉁이에서는 역시 죽음을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너무나 아름답기 때문에 그 아름다운 풍경을 놓치기 싫어서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아닐까. 죽으면 다시 못 보게 된다는 생각에서.
―그렇다면 세상에 좋은 일은 풍경뿐인가. 그 밖에도 좋은 일은 얼마든지 있다. 가령 그리운 사람을 만난다. 부모 형제나 친구나, 애인이나……. 그럴 때도 죽음을 생각하게 되느냐 하면 그렇지 않다.
―유독 풍경에서만 그렇다면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역시 쉬운 말로 설명한다면, 풍경의 아름다움이나 즐거움은 그것을 바라보는 인생의 무상함을 일깨워 주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유독 풍경에서만>이라고 물었는데?
―모든 아름다움에서 느낄 수 있는 것(무상)을 풍경에서도 느낀다는 뜻이냐, <유독 풍경에서만>이냐 하는 질문이다. 좀 까다로운 얘긴데, 이렇게 말 할 수 있겠지. <유독 풍경에서만>은 물론 아니지만 <풍경>에서 그것이 가장 절실히 느껴진다. 특별힌 아름답다거나 유서 깊은 <풍경>이 아니라도 그렇다. 가령 다음과 같은 경우…….
고대 마루에 서서
남산을 넘어가는 고개 마루에 서서
저쪽 서남으로 트인 데를 바라보노라면
노량진과 마포 사이 묘망한 공간에 무수한 인가와 공장지대와,
가로 세로 그어진 행길과 시가지와, 여기 저기 검푸른 수풀은 먹물처럼 번졌는데
유월의 한강은
황금빛 햇빛 속에 백사장을 휘감아 멀리 구름 밖에 엎드린 산줄기와 어렸도다.
내 오늘은 묵은 책들을 덮어 두고 맑은 바람 벗하여 고개 위에 올랐거니
저 개미 같이 길 위에 기고 있는 사람들
그 곁의 선로 이에 조는 듯한 전차들
지나간 만 년의 까마득한 세월이, 지금 여기
펼쳐진 이 풍경과 더불어 다를 것이 없도다.
지금은 내 있어 고개 위에 섰거니
고개 위에 내 없고 바람만이 지나되 인생은 다시 만 년도
여기 이 풍경처럼 졸고 있을지로다.
<지금은 내 있어 고개 위에 섰거니, 고개 위에 내 없고 바람만이 지나되, 인생은 다시 만 년도, 여기 이 풍경처럼 졸고 있을지로다.>하고 심금을 때린 것은 역시 무상이었던 것이다.
―풍경은 왜 인생의 무상을 느끼게 하는가.
―인생은 짧고 자연은 길기 때문이다. 가운데서도 풍경은 강조된 자연이기 때문이다. 자연의 아름답고 영원한 모습이 강조되어 있는 풍경은, 사람의 지나간 자취를 남김으로써 인생의 무상을 더욱 대조적으로 부각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사람이 풍경을 찾는 까닭은? 사람은 무상과 여수를 느끼고자 원하는가?
―자각하고 있지는 않아도, 자기도 모르게 원하고 있을 것이다. 그것이 살아 있음을 스스로 느끼는 일일 테니까.
―살아 있음을?
―그렇다. 그러한 풍경 앞에 설 때가 아니면, 대개 직장에 있거나, 돈을 구하러 다니고 있거나 그럴 테니까, 그런 건 살기 위한 어떤 방법이거나 과정 같은 것이니까, 그렇게 한 해고 십 년이고 절차를 닦아서 겨우 한 번 풍경 앞에 선단 말이지. 그리하여 자기의 모습을 풍경의 거울 앞에 한 번 비쳐보고는 느끼는 거지, 자기는 살아 있지만 죽어 가고 있는 거라고. 평소엔 그런 걸 느끼고 생각 할 겨를도 없지.
―뜰에 나무를 심어 놓고 그것을 풍경으로 삼는다면?
―나는 어려서부터 죽음을 생각하는 버릇이 있고, 커서는 뜰과 나무를 가지기를 몹시 원했다고 했는데 이러한 취미 내지 버릇이 앞으로 어떻게 발전될지 내 자신도 아직은 예측할 수 없지만, 하여간 나의 인생의 대부분은 녹음을 바라보며 죽음을 생각하는 것으로 차 있다고나 할까.
(작법 해설)
김동리 선생은 필자가 대학시절(서라벌예대 문창과 야간)에 가르침을 받은 일이 있는 은사님이시다. 나에게는 은사님의 작품을 비평할 붓이 없다. 다만 지금도 배울 뿐이다. 이 작품을 통해서는 산문수필을 이런 방법으로도 쓸 수 있는 것이로구나 하는 것을 배운다. 이것이 이 작품에서 내가 배운 <鳥자 치킴>이다.
이 작품은 부제목으로 붙인 <스스로 묻고 답한다>는 말 그대로 자문자답형식으로 된 작품이다. 자문자답 형식은 대화 형식을 취하게 되기 때문에 그 자체가 매우 형상적인 모양을 갖추게 된다. 더구나 이 작품에는 주제의 전개를 따라 관련자작시 두 편을 삽입하므로 더욱 창작적인 산문수필 작품이 되고 있다. 자문자답 형식의 산문수필 작법으로 기억해 둘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