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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의 위탁을 주고 간 사람 / 김열규

장대명화 2011. 12. 8. 01:01

                     우연의 위탁을 주고 간 여인 / 김열규(金烈圭)

                                                     -생각나는 그 사람

 

 

  남보다 빠르게 들어섰는데도 기차 속은 벌써 수런거리고 있었다. 누구나 쫓기기나 하듯이 허둥거리며 자리다툼을 벌였다. 이상하게도 그 설치는 일에 모두 길들어 있었다. 마치 일종의 질서이기나 하듯이 갈팡질팡 하였다. 생활의 움직임이기도 하고 기복(起伏) 그 자체이기나 하듯이 소란을 지니고 아우성을 지니고들 움직이고 있는 것 같았다.

 

 기나긴 전쟁의 여진이 기차 속에 자욱했다. 아직 초연(硝煙)이 걷히지 않은 길다란 그 공간에 포성의 메아리가 울리고 있는 것 같았다. 그것들은 분명한 전쟁의 상처들이었다. 흐리기라도 할라치면 난데없이 아려드는 생채기의 발작 같은 것이 기차 속을 메우고 있었다. 끝난 뒤 한참까지도 전쟁은 여전히 사람들을 학대하고 있었던 것이다. 전쟁은 끝나고 난 뒤에라야 비로소 생생하게 그 저주의 이빨을 갈아대는 괴물이었던 것일까.

 

 그녀는 그 모든 것을 멀리한 채 눈을 감고 있었다. 의자의 등받침에 깊이 기대고 있는 그녀의 몸엔 무엇인가 완강한 것이 엉기고 있었다. 그것은 침묵도 같고 고독도 같은…… 그래서 거부와도 같은 느낌을 풍겼다. 검은 빛의 무거운 외투가 그녀를 감싸고 있다기보다 그녀를 에워싼 모든 것을 육중하게 밀어부쳤다. 주변은 있으나마나 했다.  아니 그녀는 주변을 완전히 묵살하고 있었다. 말살하고 있었다는 것이 보다 적절한 표현일지도 모른다. 이른바 자리값을 받아내기 위해 가릴 것 없이 사람들 앞에 내밀어지던 상이군인의 쇠갈구리 손도 그녀 앞에서는 멈칫하게 기가 죽었을 정도다.

 

 드디어 기차가 움직이기 시작했을 때도 그녀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긴 복도를 메운 사람들이 의자 사이에까지 밀려드는 통에 옆엣 사람이 포개지듯이 죄어들었으나 그녀는 꼼짝도 않았다. 버려진 것처럼 혹은 포기된 것처럼 내 앞에 앉아 있었다. 이 세상의 모든 것에서 떨어져 우주의 반대편 어느 종착지 끝에 자리 잡은 듯 그녀는 내 앞에 앉아 있었다. 아니 ‘앉아’ 있었다는 것은 알맞은 표현이 아니다. 이십년이 넘게 지난 오늘날에도 오히려 생생한 그때의 기억은 ‘앉아 있다’는 말이 어리석은 표현인 것을 알고 있다. 그녀는 거기 그렇게 무너져 있었다고 해야 옳을 것 같다. 그렇다. 비탈 발치에 뭉크러져 있는 사태진 흙더미처럼 그녀는 내 앞에 있었다.

 

 잘 빚어 넘긴 머리카락과 순하게 가다듬어진 얼굴이 그 ‘무너짐’과 엇갈려서 내게 이상한 초조감을 안겨 주었다. 눈을 뜨면 별빛이 틀림없으리란 생각 때문에 그 초조감은 더욱 뜨겁게 느껴졌다. 그것은 사태더미 속에서도 어쩌다 피어난 들꽃 같은 것이었을까…….

 

 한강 철교 위를 기차는 엉금거리면서 건너고 있었다. 불끈 치솟는 듯한 충격음과 몰락하는 듯한 충격음을 번갈아 가며 건너고 있었다. 차창에는 어둠이 밀려와 엉기고 엉겨서는 미끄러져 나가곤 했다. 기묘하게도 기차는 달리는 만큼 무게를 더해갔다. 적어도 내게는 꼭 그렇게 느껴졌다. 무게를 떨치지 못해 기차는 허우적댔다. 어둠 속보다는 무게 속을 기차는 움직이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나는 그 느낌이 순전히 무너져 앉은 그 여인 때문임을 알고 있었다.

 

 나는 마치 <무너져 내리는 시대>의 유일한 증인처럼 그녀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것은 그녀가 <무너져 내리는 시대>의 유일한 증거처럼 느껴졌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전쟁이 끝나고 처음 맞는 겨울.

폭격 대신에 궁핍이, 피난 대신에 가난이 전쟁의 기억이 가시지 않는 거리와 마을을 메우고 있는 때였다. 살아남은 자들이 스스로의 삶을 확인하기도 겨운 무렵이었다. 죽어 간 자와 부서져간 것들은 그토록 확실했는데도 살아남은 자와 머물러 있는 것들은 아직도 그 존재 증명을 얻어 내기 힘든 즈음이었다. 파괴와 부재의 시대였다. 부서진 것들을 말하는 것만이 눌러 남아 있는 것들의 언어일 수 있었다. 세상 모든 것이 전쟁의 잔재처럼 존재할 뿐이었다.

 

 나는 대학 시절의 마지막 방학을 위해 귀향하는 길이었다. 정거장 바깥에까지 뻗친 줄 가운데쯤 서서 한 시간을 넘게 기다리고 섰다가 겨우 탈 수 있었던 기차. 표를 타노라고 기다리고 개찰하노라고 기다리면서 나도 사람들 사이에서 발을 굴렸다. 폐허 속에 우뚝 솟은 서울역이라 바람은 미친 듯이 불어 닥쳤다. 살을 저미고 드는 추위에 다들 몸을 떨었다. 폭격 당한 땅 위에 뚫린 웅덩이 같은 크고 작은 동굴을 몸과 마음속에 제 각각 지니고 있었던 군중에게 그해 겨울은 너무도 가혹했다. 그 중에는 아직도 환도 이후의 살림살이를 제대로 정돈하지 못해 옛 피난처와 서울 사이를 오고가던 사람도 끼어 있었다. 더러는 난리의 북새통에 잃어버린 가족의 소문을 뒤쫓아 밤길을 떠나는 사람도 섞여 있었다. 그런 사람들끼리 모여선 역광장을 바람은 전쟁의 메아리처럼 불고 있었다.

 

 그러는 사이 그녀는 줄곧 내 앞에 서서 바람을 맞았었다. 외투깃을 올리고 목을 웅크리고 마치 서 있는 자라처럼 그녀는 추위를 견뎠다. 갑자기 바람 방향이 바뀔 때 한두 번 뒤척이듯이 돌아섰다. 그럴라치면 몇 가닥 귀밑머리가 얼굴의 흰빛이 선연히 드러나게 눈언저리에 날리고 있었다. 외투깃의 배찌가 유달리 썰렁했다.

 

 나는 전쟁의 그늘에서 회오리에나 휘말리듯이 보내버린 허망한 사년의 대학생활을 어떻게라도 마무리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우울했고 또 답답했었다. 마지막 방향을 틈탄 귀향이 사뭇 부담스러웠던 것은 바로 그 때문이었다. 적어도 형식적으로는 무슨 마디나 매듭처럼 아니면 고비처럼 맞아야 할 방학이자 귀향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돌아보아 그저 맥맥한 빈 구석 뿐이라 새삼스럽게 맺을 것도 갈무리할 것도 없었기 때문에 심중에는 니끼한 갈등이 웅얼거리고 있었다. 찾을 것이 아무것도 없는 여행이었기 때문에 잊은 것, 그리고 잃어버린 것이 무엇인가를 확인하려 떠나는 셈이었다. 말하자면 <무(無)에로의 여정>, <공허에의 여정>을 가듯 나는 밤기차를 탔던 것이다. 지금 돌이켜 보면 그 같은 <공허에의 여정>이란 느낌은 그 무렵에 이십대의 중반을 보낸 젊은이들의 <세계감정>이었던 듯이 생각된다.

 

 한강을 건너 노량진이며 영등포를 훨씬 지났을 열차는 나의 공허한 여정과 그 앞에 앉은 여인의 완고한 무너짐을 싣고 어둠을 달리고 있었다. 나는 역 광장의 줄 속에서 내 앞에 섰던 바로 그 여인이 어떻게 해서 기차 속 자리에서마저 내 앞에 앉게 되었는지 전혀 기억이 없다. 그저 우연이었던 것 같다. 한 줄 앞뒤에 서서 꾸역꾸역 개찰구로 밀려나왔다가 물매미처럼 흩어졌다 해도 결국은 한 플랫폼 안이라 두 번 서로 마주쳤다고 해서 별로 기이할 것도 없을 것 같다.

 

 희미한 조명 아래서나마 그녀의 눈감은 얼굴에 검은 그림자가 스치면서 가볍게 경련이 이는가 싶은 것과 함께 그녀는 내 무릎에 깍지 낀 두 손을 얹었고 그리고는 거기다 깊이 묻어 버리기나 하듯 고개를 떨구었다.

 

 그것은 순간의 일이었다. 나는 적잖이 당황했다. 낯선 남남끼리 그럴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이내 평정을 되찾았고 무릎 위의 그녀의 머리 무게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였다. (불편한 자리에서 잠에 지치다 보면 저도 모르게 이럴 수도 있을 것 아닌가.) 나는 이렇게 생각했다.

 

 그러고 보니 어느새 그녀의 손가락과 머리의 온도가 따스하게 내 무릎에로 스미고 있었다. 기차가 흔들릴 때마다 더해지기도 하고 줄기도 하는 그 머리 무게가 먼 데서 울려오는 가련한 율동감 같은 것을 내게 전해 주기도 하였다.

 

 나는 이내 그녀와는 예부터 익히 친하였던 사람처럼 천연스러워졌다. 나는 몇 번이고 그녀의 잠에 떨어진 머리를 쓰다듬을 수 있을만큼 천연스러워지고 싶었으나 끝내 그럴 수는 없었다. 다만 그녀의 잠이 조금은 더 편할 수 있게 무릎을 바로 잡고자 힘을 썼을 뿐이다. 그녀의 머리에서 몇 번인가 흐느끼는 듯한 움직임이 전해졌으나 나는 기차의 진동 탓이려니 가볍게 넘겨 버렸다.

 

 나는 고행이라도 하듯 무릎에 계속 힘을 주고 있었다. 그만큼 깊어갈, 그리고 편해 가고 있을 그녀의 잠을 확인하고 싶었다. 비록 잠결에 그랬다고는 해도, 그래서 무심코 그랬었다고는 해도 한 인간이 내게 건네 온 <위탁(委託)>을 나는 고스란히 감당해 내려고 들었다. 생면부지고, 아주 남남끼리의 위탁이기에 그것은 절대적인 것이라고 느껴졌다. 조금이라도 무릎을 움직이거나 몸을 비틀면 그 위탁에 내포된 내게 대한 신뢰를 배반하는 것이 되리라……나는 이런 생각까지 하면서 저려드는 무릎에 더욱 힘을 주었다.

 

 내 무릎에 힘이 더하여지고 그녀의 잠이 깊어지는 만큼 모든 부서진 것이 다시 온전한 모양을 갖추고, 텅 빈 공동에 알맹이가 차오르고, 그리고 그녀의 무너짐에도 무엇인가 받침대가 고여질 듯이― 나는 꼭 그렇게 느껴졌다. 생면부지인데도 잠을 맡긴다는 것, 그리고 남남끼리의 잠을 맡는다는 것, 그보다 더한 위탁이 인간 세계에 있을 것 같지 않았다. 가장 완벽한 위탁, 하필이면 전쟁이 끝난 첫 겨울의 어느 밤에 그 위탁은 마련된 것이다.

 

 그녀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천연스럽게 어디쯤이냐고 묻는 말이 젖어 있는 듯했고 눈에도 엷은 물기가 어린 듯이 느껴졌다. 기차는 마침 천안역에서 미끄러져 들고 있었다.

 

 서서히 일어서면서 그녀가 말했다.

여기서 차를 갈아타야 해요. 아버님 임종을 지키게 될지…….

 

 개찰구 쪽으로 걸어가는 그의 동그란 어깨가 설핏하니 얇아 보였다. 그녀가 개찰구 너머로 사라지는 것과 함께 우리들의 기이한 만남은 끝이 났었다.

 

 하지만 그 기이한 위탁의 의미는 지금도 내게 머물러 있다. 모르는 사람끼리 편안한 잠을 맡길 수 있었던 그 위탁의 의미 때문에 나는 20년 전 그 여인을 못 잊고 있다. 그리고 그 위탁의 의미는 지금도 내가 인간관계를 생각 할 때 바닥에 깔려서 나를 다스리고 있다. 어둡고 괴로웠던 시절, 공동과 무너짐만이 있던 시대인데도 전쟁의 여진 속에 피어난 꽃처럼 주어진 그 <우연의 위탁>이 그날의 공동을 채우고 그날의 무너짐을 지탱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오늘에 있을 인간 연관의 공동과 붕괴를 막아 줄 주춧돌 구실을 다하고 있는 것이다.

 

 그날 개찰구를 나서던 그 설핏했던 둥근 어깨의 기억은 두터운 포옹처럼 늘 내 쪽을 향해 다가오고 있다. 그녀는 언제나 저만큼에서 내게로, 내 속으로 다가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