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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나무의 까치밥 ㅡ 김영련

장대명화 2010. 11. 6. 09:54

                                           감나무의 까치밥

                                                                                 김 영 련

 

 까치 소리다. 그 소리는 고개 하나쯤은 가붓가붓 넘어갈 정도로 고음이다. 조용한 날에 듣는 까치 울음은 더욱 청량하고 맑다. 창 밖 뒷산으로 시선을 돌려본다. 까치 한 마리가 감나무 위에 앉아 있다. 정갈하게 모자이크 된 흰색과 검은색이 햇살을 받아 선명하리만치 밝다. 아마도 까치밥을 열심히 쪼아먹고 있는 듯 하다. 여린 나뭇가지에서 시소를 타듯 요동치는 요트처럼 날렵하게 보인다. 이쪽저쪽으로 옮겨가며 까치밥에 열중하는 모습을 보니 나마저 즐거워진다.

 시골에서는 가을에 감을 딸 때 가지 꼭대기에 감 한두 개를 꼭 남겨 두었다. 이 감을 까치밥이라 불렀다. 서너 개의 감이 달린 나무 곁을 사람들은 그냥 지나칠 뿐 그리 눈에 띄지 않는다. 가을걷이가 끝나고 감나무 그림자가 싸늘해질 무렵, 잎이 다 떨어진 가지에 달려 불타듯 빨갛게 익어 간다. 붉은 감을 매달은 감나무는 성취의 기쁨에 충만감으로 넘친다. 잎새 열매도 훌훌 털며 빈 가지로 남은 채 찬바람을 묵묵히 맞는 모습이 승화된 선정禪定의 자세다.

 지난 늦가을 광주 무등산에 갔었다. 오랫만에 나선 길이어서인지 들뜬 기분으로 설레이기까지 하였다. 차가 산을 넘어 들어설 때마다 차 창밖 시골풍경은 면 옛날로 안내하는 것 같아 잠시도 눈을 뗄 수 없었다. 다행히 동내가 그대로 간직되어 얼마나 반가웠던지 나도모르게 감탄사가 저절로 나왔다. 초가지붕 위로 감나무의 빨간 까치밥이 눈앞을 스칠 때면 그리운 고향을 찾아가듯 가슴이 두근거렸다. 한적한 근처에 방을 구하고 주위를 둘러보니 여러 구루의 밤나무들이 줄지어 서있었다. 감나무 사이로 까치밥이 쏟아지는 저녁노을빛에 반사되어 부시도록 아름다웠다. 가까이 가서 자세히 들여다보니 겉에 약간 상체기가 여기저기 보였다. 서리와 눈비를 맞아가며 하늘을 떠받고 서있던 까치밥. 힘겨운 세상을 견뎌온 어머니의 주름진 얼굴과 손등을 닮아 안쓰러움이 들었다. 여름이면 어머니는 언제나 풋감을 잿물에 담궈 떫은 맛이 없어지면 우리들에게 나누어 주셨다. 오늘따라 유난하 자애스런 정이 자꾸만 그리워져 눈물이 핑 돈다.

 해가 지면 산골의 밤은 일찍 어둠이 찾아온다. 어두운 장막 속에서 개울물 소리를 들으니 문득 고향 뒷뜰 감나무가 생각난다. 또 하얀 감꽃 목걸이 걸고 뛰놀던 어린 벗들의 정다운 얼굴도 떠오른다. 그러고 보니 까치밥은 향수의 열매다. 고향을 잃어버린 현대인들에게 마음의 고향이 아닐까. 상념의 계절인 가을 길목에서 허전함을 위안하듯 탐스럽게 속속 영그러간다. 까치밥은 풀, 흙냄새가 물씬 배인 농촌의 소박한 멋이요, 수수한 들꽃의 미소다. 구철초 메밀꽃이 핀 산골짜기를 타고 흐르는 시냇물 소리다. 도시의 복잡하고 반복된 생활에서 고향으로 돌아온 것 같이 편안해진다.

 까치밥은 항시 낭만적인 전설이 깃든다. 어린시절 몇 번이나 옛 이야기가 귓가에 맴돈다. 견우직녀가 오작교에서 눈물의 해후를 한다는 칠석날 밤. 그 슬픈 다리를 까치들이 나뭇가지를 입으로 날라서 지극정성을 다해 짓는다. 시간이 지나면서 머리털이 다 빠지고 지칠대로 지친 그들은, 늦가을이 되어서야 까치밥으로 기력을 회복했다고 전해진다.

 예로부터 까치소리를 들으면 길운이라 여겼다. 이른 아침 까치소리는 어디선가 기쁜 소식이 오나 싶어 하루종일 기다리는 마음이 생긴다. 이처럼 반가운 소리를 귀담아 듣는 어느 집에 사정으로 떨어져 사는 가족의 안부가 당도하면 좋겠다. 십 년이 넘도록 아이가 없어 걱정하던 친척으로부터 득남했다는 행복스런 소식이 오면 더없이 즐겁겠다. 군에 간 사랑하는 아들이 포상휴가를 받아왔으면 싶다. 멀리 시집간 딸이 돌이 지난 갓난아기를 업고 친정나드리를 올려나 하고 마당을 서성이는 아버지의 애틋한 마음도 담긴다. 나에게도 반가운 일이 생길까 기대감이 피어오른다. 다른 것은 제쳐두고 오랜 친구한테서편지라도 온다면 저 까치가 한결 곱겠다. 맑은 물이 실리듯 까치의 활기에 넘치는 경쾌한 울음은 아무리 들어도 실증이 나지 않는다. 가뜩이나 경제가 어려운 이때, 그래도 희망을 버리지 않고 살아가는 이웃들이 아닌가. 까치소리에 젖어 순수한 농부의 심정이 까치밥이라는 정겨운 이름을 지었으리라. 풍성함을 안겨준 자연에 대한 감사와 이듬해의 풍년을 기원하는 간절함이 까치밥에 알알이 맺혔을 것이다.

 감나무는 계절에 따라 빛깔이 극명하게 다르다. 겨울의 매서운 추위를 굳건히 이겨낸 생명과 환희에 찬 봄. 푸른 녹즙이 주루루 흘러내릴 것 같은 짙푸른 녹음은 여름의 상징이라고 할까. 진주홍빛 자락이 부서지는 가을. 이렇듯 순화되는 흐름을타고 붉은 감이 주렁주렁 열린 감나무를 바라보며 수확의 기쁨을 누린다. 그러므로 감나무에서 또 하나의 세계를 만난다. 그것은 커다란 우주요, 무위자연 그 자체다. 원래 생명의 본질은 물처럼 흐른다. 얽힘이 없이 풀려 있는 상태다. 날카롭지 않으며 부드럽다. 닫혀 있지 않고 활짝 열려 사방이 트여 환하다. 멈추듯 움직인다. 고여있지 않고 생동감으로 활기차다. 부족함도 넘치지도 않는다. 성급하거나 느리지 않다. 미움 증오도 없으며 아무것도 원하지 않는다. 바른 질서로 승화시켜 중용을 취한다. 인간의 욕망 허구 위선이 부끄럽다. 한알의 작은 씨앗을 심어 소중히 가꾸어 보람의 열매를 얻고자 수많은 시련과 역경을 이겨낸 농촌 사람들. 오늘도 굳은 신념과 용기를 지니며 훈훈한 마음의 정이 스민 이웃들이 살아간다. 그래서 혹독하게 불어닥치는 차가운 칼바람에도 동요되지 않는 강직함을 지닌다.

 까치밥은 그렇게 또 다시 새로운 탄생으로 봄을 맞이하리라. 감나무 가지를 살며시 쥐니 따뜻함이 감돈다. 한 줄기 감미로운 바람이 감나무의 카치밥을 흔들며 지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