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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동네 예술가 두 사람 / 양귀자

장대명화 2011. 9. 16. 01:25

 

                                                               우리 동네 예술가 두 사람 / 양 귀 자

 

 

 그 첫 번째 예술가

 그이는 늘 흰 가운을 입고 있다. 그리고 여자이다. 이렇게 말하면 여류 조각가를 상상할지도 모르겠다. 아니, 그 짐작이 맞을지도 모른다. 그이가 빚어내는 작품도 일종의 조각이라면 조각일 수도 있다.

 그이는 매일 아침 아홉 시에 일터로 나와서 저녁 아홉시가 되면 가운을 벗고 집으로 돌아간다. 일터에서의 그이는 다소 무뚝뚝하고 뻣뻣하다. 남하고 싱거운 소리를 나누는 일도 거의 없다. 잘 웃지도 않는다. 오히려 늘 화를 내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런 얼굴로 그이는 늘 일을 하고 있다. 그이가 만드는 작품은 불티나게 팔리고 있으므로 하기야 쉴 틈도 많지 않다. 묵묵히 일만 하고 있는 그이를 우리는 ‘김밥 아줌마’라고 부른 다. 따라서 그이가 만드는 작품은 자연히 ‘김밥’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이의 김밥은 보통의 김밥과는 아주 다르다. 언제 먹어도 그이만이 낼 수 있는 담백하고 구수한 맛이 사람을 끌어당긴다. 그이의 김밥은 절대 맛을 속이지 않는다.

 김밥 아줌마는 작품을 만들 때 사람들이 보고 있으면 막 화를 낸다. 누군가 쳐다보면 마음이 흔들려서 실패작만 나온다는 것이다. 김밥을 말고 있을 때 누가 무슨 말을 해도 들은 척을 하지 않는다. 한 번 더 말을 시키면 여지없이 성질을 내며 일손을 놓아 버린다. 그이는 파는 일엔 전혀 관심이 없고 오직 김밥을 만드는 그 행위에만 몰두해 있는 사람처럼 보인다.

 언젠가는 나는 무심히 김밥을 마는 것을 구경하고 있다가 당했다. 쳐다보고 있으니까 김밥 옆구리가 터지는 실수를 다 한다고 신경질을 내는 그이가 무서워서 주문한 김밥을 싸는 동안 멀찌감치 떨어져 있었다. 그러나 집에 돌아와서 먹어 본 김밥은 그이에게 당한 것쯤이야 까맣게 잊어버리고도 남을 만큼 그 맛이 환상적이었다. 그 김밥은 돈 몇 푼의 이익을 위해 만들어진 그런 김밥이 아니었다. 나는 그래서 그이의 김밥을 서슴치 않고 ‘작품’이라 부른다.

 

 그 두 번째 예술가

 그는 이제 막 오십 고개를 넘은 남자이다. 하루도 빠짐없이 머리에 얹어 놓고 있는 빵떡모자와 아직은 듬직한 몸체, 그리고 늘 웃는 얼굴의 그이는 일 년 열두 달 거의 빠짐없이 하루에 두 차례씩 내가 사는 연립 주택의 마당에 나타난다. 자식들의 결혼 날이거나 아니면 길이 꽁꽁 얼어붙어 오르막인 이곳까지 트럭이 못 올라오는 한겨울 며칠을 제외하면 오전 열 시 무렵과 오후 네 시경에는 어김없이 주홍 휘장을 두른 그의 트럭을 볼 수 있다.

 그가 등장하는 모습은 언제나 일정하다. 먼저 귀에 익은 바퀴 구르는 소리와 함께 그가 운전하는 주홍 트럭이 언덕빼기를 올라온다. 차를 세운 다음에는 얼른 확성기를 들고 운전석에서 뛰어내린다. 빵떡모자를 쓴 그는 확성기에 대고 자신이 심혈을 기울여 골라 온 물건의 이름을 하나하나 부른다.

 “양파나 버섯 있어요. 싱싱한 오이와 배추도 있어요. 엄청 달고 맛있는 복숭아나 포도 있어요…….”

그다음엔 그를 기다리고 있던 이웃들이 하나씩 둘씩 모여드는 것이다. 언덕 베기를 내려가서 또 버스를 타고 가야 이웃 동네의 시장이 나오는지라 이웃들은 거의가 그에게서 필요한 먹을거리들을 사고 있다. 게다가 뜨내기 행상 트럭도 아니고 고정적으로 드나드는 단골인지라 물건만큼은 믿고 사도 좋았다.

 하기야 그에게는 자신의 트럭 위에 있는 온갖 야채와 과일이 국내 최고라는 자신이 차고도 넘친다. 최고의 품질을 고집하고 있다는 행상에 대한 그의 소신은 실제에 있어서도 과히 틀린 바는 없다. 그는 오이 하나를 사는 손님일지라도 이 오이의 산지는 어디이고 도매가격이 얼마나 되는 최상품인가를 일일이 설명하느라고 늘 입이 쉴 새가 없다.

 그뿐이 아니다. 지난번에 사 간 그 고구마가 과연 꿀맛이었는지. 엊그제 사 간 배추로 담근 김치가 연하고 사근사근한지도 고객들한테 끊임없이 확인한다. 그런 과정에서 행여 고객의 불만이 포착되기라도 하면 그는 아예 장사고 뭐고 없이 그것의 규명에만 매달린다. 그 고구마가 달지 않은 것은 삶는 방법에 문제가 있었는지 아니면 그런 고구마를 도매 시장에서 떼 온 자신의 안목이 모자라서였는지를 속 시원하게 판가름하지 않으면 직성이 안 풀리는 사람이 바로 주홍 트럭의 주인인 빵떡모자인 것이다.

 그는 자신이 파는 물건이 최고라는 소리를 듣기 위해서 트럭 행상을 하는 사람처럼 보인다. 손님이 없을 때는 늘 자신의 물건들을 정리하고 다듬는 일에 몰두해 있는 사람이고, 호박 한 개를 집을 때도 두 손으로 조심조심 그것을 받들어 올린다. 그는 자기가 팔고 있는 쑥갓이나 양파에 대해 이야기하기를 좋아한다. 나는 그가 다른 화제를 입 밖에 올리는 것을 본 적이 없다. 그는 언제나 마늘이나 포도, 쪽파나 무에 대해서 이야기 한다. 그것들이 왜 좋은 물건인지에 대해서만 이야기한다. 가령 이런 식이다.

 “이 마늘 보세요. 어느 한 군데도 흠이 없잖아요. 요렇게 불그스름하고 중간짜리가 상품이지요. 그리고 요 반듯반듯 파인 줄을 보세요. 이런 것은 짜개면 어김없이 여덟 쪽이지요. 정말이에요. 그런 사람이 나 말고 또 있다면, 만약 그렇다면 나 그날로 이 장사 그만둘 거예요. 아니, 정말 그렇게 한다니까요.”

 내가 보기에는 만약 그런 사람이 나타나면 장사를 그만두는 것으로 끝낼 그가 결코 아니다. 아마 그 이상의 불행한 일이 일어날지도 모른다. 세상에서 예술가들만큼 자존심이 센 사람들은 없으니까. 그리고 최고의 가치만을 추구하는 주홍 트럭의 그는 분명 예술가임이 틀림없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