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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송화 이야기 / 김진수
장대명화
2011. 7. 28. 00:55
채송화 이야기 / 김 진 수
세상의 모든 일은 다 때가 있나보다. 빨랫줄에 걸어둔 빨래가 마르는 때, 어부가 어망을 거두어 집으로 돌아오는 때. 시골학교 운동장이 어느 순간 작아 보이는 때, 인연도 잘 가꾸어야 참된 인연이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때, 땅으로 가면서 뻗는 채송화 줄기와 거기에서 뿜어내는 냄새로 뱀이 얼씬을 못한다는 사실을 안 것도 그때였다. 사시장철 먹을거리가 정갈하게 진열되어 있는 장독대가 신선한 공간이란 생각이 든 것도 그때였다. 참으로 조상들의 과학적인 지혜에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
어릴 때 나는 무척이나 옛날이야기를 좋아했다. 밤마다 나는 언니에게 옛날이야기를 해달라고 졸라대었다. 호랑이보다 무서운 곶감 이야기, 하늘로 올라가 해와 달이 되었다는 오누이 이야기, 혹부리영감 이야기, 도깨비 방망이 이야기, 비단장수 얼간이 이야기, 소금장수 이야기. 칠칠단의 비밀 등 아무리 들어도 물리지 않았다.
밤이 깊으면 깊을수록 언니의 이야기는 너무 재미있었다. 그럴 때면 언니는 ‘아가야 이제 잠 좀 자자꾸나.’ 하고 나를 달래었다. 그날 밤 겨우 잠이 들었다가 다음 날 밤이 오면 세헤라자데에게 재미난 이야기를 천일동안 해 주기를 바라는 포악한 왕처럼 나는 또 졸라대었다. 언니는 이렇게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독수리야 독수리야 우리 집 암탉 채 가지 말고, 밤마다 날 조르는 이 철부지 좀 채가렴.”
그 말이 무슨 말인지도 난 몰랐다. 언니가 얼마나 힘든지도 몰랐다. 다만 언니의 입이 화수분을 닮아서 옛날이야기가 한없이 쏟아져 나오기만을 바랐다. 돌이켜 보면 언니로부터 옛날이야기를 들은 것이 내 문학의 씨앗이 되었던 듯싶다. 언니도 지금 어디에선가 나를 생각하고 있을까.
모니터의 화면에 불을 꺼야 할 시간이 가까웠나보다. 몸은 피곤하지만 글의 실마리가 풀려서인지 마음은 평온하다.
올 봄에는 햇빛 잘 드는 베란다에 텃밭상자를 만들어야 할까보다. 그리고 종묘장으로 달려가 채송화 씨앗을 한 봉지 사 가지고 와서 언니에게서 아직 다 듣지 못한 내 문학의 천일야화 채송화 이야기를 가득 심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