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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전등 / 허표영(창작적인 수필)

장대명화 2011. 7. 2. 11:16

                   회전등 / 허 표 영

 

 단골 미용실이 사라졌다. 당장 머리를 깍아야 하는데 애용하던 곳이 없어졌으니 서운하다. 건물이 헐리는 바람에 권리금도 한 푼 못 받고 쫒겨났다는 소문이 들렸다. 또 다른 미용실을 찾아다녀야 하는가 보다.

 정미미용실의 주인은 나이가 많고 얼굴도 예쁘다고 할 수 없는 미용사다. 키도 큰 편이 아니고, 투박한 말씨에 손님을 끄는 붙임성도 별로 없다. 내가 찾을 때마다 손님은 별로 없었고, 가끔 할머니 한 분이 파마를 위해 통을 둘러쓰고 있는 것을 볼 정도였다.

 이런 점때문에 나는 이 집을 이용했다. 가자마자 머리를 손볼 수 있고, 다른 손님을 의식하지 않아도 되었다. 무엇보다도 이 아줌마의 머리 컷트 솜씨는 내 마음에 들었다. 그렇게 유행을 타지 않고, 조금씩 심하게 깍아대기 때문에 미용실을 자주 찾지 않아도 되게 해 주었다.

 이 미용실의 주인이 정미인지는 모른다. 물어 본 적도 없고, 알 필요도 없었다. 그녀는 할머니 손님과 고달픈 넋두리를 늘어놓곤 했었다. 남편은 뚜렸한 직장이 없이 남의 땅을 빌려 농사를 취미처럼 조금 짓고 있는 모양이었다. 가게에다 수확물을 갖다 놓고 팔기도 하였다. 소쿠리에 담긴 과일은 제대로 된 상품이 못 되었다. 크기도 색깔도 사고 싶은 마음이 일지 않았다. 어느땐가 학용품을 사야 한다며 찾아온 자녀에게 빈 요금통을 열어 보이며 난감해 하던 그녀의 얼굴을 본 적이 있다. 내가 요금을 선불로 내 주니 무척 반가워 헀다.

 미용실을 애용하는 것은 요금이 싸기도 하지만, 시간이 절약되기 때문이다. 이발관에 가면 조발에다 면도, 머리감기와 간단한 안마까지 시간이 많이 걸린다. 게다가 대기 시간까지 치면 두어 시간 잡아야 할 경우까지 있다. 그 시간을 아껴 특별히 유용한 일에 투자하는 경우도 없지만 아깝다.

 새 단골 미용실 만들기는 만만치 않았다. 조심스럽게 들어간 미용실에는 진한 화장의 여자들이 젊은 손님을 상대로 헤어써비스를 하고 있었다. 머리를 위주로 화려한 미를 창조하는 중이었다. 그런 분위기에 단정할 정도로 깍아달라는 나의 주문은 왠지 모르게 위축 되었다. 편치 않은 마음은 비싼 요금을 치르고 나올 때까지 지속되었다.

 머리를 자를 때가 가까워지면 고민이었다. 어디서 불편한 통과의례를 견마해야 하나, 편안한 분위기의  미용실을 찾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다가 인근 상가에서 물건을 사고 화장실을 가게 되었다. 지하를 내려가 기웃 거리며 화장실을 찾는데, 구석진 귀퉁이에 돌고 있는 회전등을 발견했다. 나는 처음에 내 눈을 의심했다. 예전에 그 초라하기 그지없던 정미 미용실이라는 간판을 발견했던 것이다.

 아직 머리를 깍을 때가 멀었지만 미용실의 문을 열고 들어갔다. 반기는 나에 비해 그녀는 예의 무덤덤한 표정이었다. 어딘가 약간 슬퍼 보이기까지 하는 표정이었다. 나는 가벼운 마음으로 커트용 의자에 가 앉았다. 허름하고 땟국이 진의자는 그렇게 편안할 수가 없었다.

 커트를 끝내고 가운을 벗겨 주었을 때 헝크러진 실내가 눈에 들어왔다. 이렇게 하고서 손님을 받을 수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어수선 했고 정돈되지 않았다. 부서지고 망가진 미용기구들이 한 구석에 쌓여 있었다. 정면의 거울도 흉하게 몇 군데 금이 가 있었다.

 요금을 받으며 그녀가 잠깐 내 얼굴을 올려다 보고는 이내 고개를 떨어뜨렸다. 이런 꼴을 보여 죄송해요. 그래도 손님을 받지 않을 수가 없어요. 다음에도 오실 거죠? 얼핏 본 약간 물기에 젖은 눈이 그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이발을 마치고 미용실을 나온 나에게 조금 전에 먼저 나갔던 할머니가 말을 붙여 왔다.

 "방금 남편이 왔다 갔어, 술에 취해 육두문자 욕을 하며 미용기구들을 닥치는 대로 때려 부수는 거야. 여자를 때리기도 했어, 자기를 무시한다는 거지. 남자가 씩씩거리며 나가고 여자는 눈물을 훔치며 기구들을 챙겼어, 애들을 위해 그래도 가위를 들지 않을 수 없다는 거야."

 할머니는 걸음을 떼어 놓으며 혀를 찼다. 나는 편치 않은 마음으로 방금 나온 미용실을 돌아보았다. 지하의 후미진 귀퉁이에 정미미용실이라는 서툴게 쓴 간판으로 낡은 회전등이 느리게 돌고 있었다. 고달프지만 멈출 수 없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그 후 정미미용실은 다시 머리를 깍으러 갔을 때 없어졌다. 주변을 유심히 살피고 다녔지만, 느리게 꾸준히 돌고 있던 미용실의 회전등은 다시 만날 수 없었다.

 

         (작품 해설)

 이 작품은 '회전등'의 의미를 형상화 하고 있다고 보면 무엇을 어떻게 창작하고 있는지 보일 것이다. 회전등이란 어둠을 밝히는 것이 하나의 기능이다. 그러나 이 작품 속의 회전등은 가정문제를 안고 있는 미용사의 어두운 인생길을 밝혀주지 못한다. 작가는 제 기능을 상실한 '회전등'의 형상화를 통해서 '인생이란 무엇인가?'라는 영원한 숙제에 대한 의문을 새로운 목소리로 던지고 있다.

 이 작품의 소재는 정미미용실 주인의 이야기다. 그런데 작가는 소재에 대해서 "나이가 많고 얼굴도 예쁘지 않은 미용사" 라는 정도 외에는 아는 것이 별로 없다. "이름이 정미인지 물어 본 적도 없고, 알 필요도 없었다."

 그렇다면 어떻게 '정미미용실 주인'이 작품의 주인공이 될 수 있는가? 여기에 창작문예수필과 소설의 다른점이 있다. 소설은 사건을 일르켜서 그 이야기를 해야 하기 때문에 주인공에 관해서 보다 상세하게 알아야(만들어내야) 할 필요가 있지만 창작문예수필은 사건을 일으키는 것이 아니라 소재대상과 사이의, 교감을 이야기 때문에 굳이 소설적 사건을 일으키기 위한 충분조건을 갖춰야 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이 작품은 그같은 창작문예수필의 교감의 세계 창작 형식을 여실하게 잘 보여주고 있는 작품이다. 

                                                                              

                                                           (조선문학 2011년 1월호 이달의 수필비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