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암사 깨달음을 내비치다 / 김정길
선암사, 깨달음을 내비치다/ 김정길(벽송)
한국적 전통미가 가득한 선암사는 우리 전통가옥처럼 사람의 마음을 끌어당기는 독특한 마력이 있다. 그 절에 들면 종교적 의미보다 우리의 전통문화가 더 강하게 느껴진다. 선암사 포교국장 전각 스님은 선암사를 ‘몸과 마음을 추스르고 깨달음을 얻는 절’로, 정호승 시인은 ‘삶의 의미를 깨닫는 사찰’로 묘사해서 심금을 울린다. 나는 가끔 승선교, 삼인당, 하마비, 두꺼비 석상, 달마수각, 홍매화, 해우소 등 그 절이 내비치는 속살을 들여다보며 몸과 마음을 추스르고 삶의 의미를 깨닫곤 한다.
신선이 하늘로 승천한다는 승선교(昇仙橋), 제일 먼저 몸과 마음을 추스르며 그 다리를 건너게 된다. 반원형의 무지개다리로 물속에 비친 반원형의 다리가 서로 만나 비로소 하나의 원을 이루며 부처님의 오묘한 진리를 전하려 하기 때문이다. 승선교 아래 한 복판에 솟아나온 용머리는 장식적 효과와 함께 물길을 타고 올라오는 삿된 것을 막는 역할을 하고 있다. 본디 그곳에 종이 달려 있었으나, 일제강점기에 일본인들이 떼어갔다는 설과 용머리를 뽑아내면 다리가 무너진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무지개형상의 승선교 사이로 신선이 하강한다는 강선루(降仙樓)를 바라보면 한국 전통미와 자연 풍광이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다.
삼인당(三印塘)은 일주문을 들어가기 전에 두 번째로 몸과 마음을 추스르는 곳이다. 제행무상인(諸行無常印), 제법무아인(諸法無我印), 열반적정인(涅槃寂靜印) 등 3대 불법의 원리를 마음속에 새긴다는 의미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 연못은 너도나도 깨우치고(自覺覺他), 그 섬은 너도나도 좋음(自利利他)을 의미한다. 종교적, 전통미학적, 토목공학적 3대 요소가 결합된 당대 최고의 걸작이 아닐 수 없다.
달걀모양의 연못 안에 섬이 있는 독특한 양식도 오직 선암사에서만 볼 수 있는 진풍경이다. 그 섬에 배롱나무 한 그루와 상사화를 심어 아름다운 정원으로 꾸미고, 연못의 물이 순환되어 썩지 않도록 설계한 선조들의 지혜가 번득인다. 바깥 둑에 있는 아름드리 전나무 세 그루는 삼인당의 ‘三’자를 상징하는 듯했다.
하지만 삼인당이 만들어진 진짜 이유는 전혀 다른 곳에 있었다. 도선국사가 선암사 중창을 마친 뒤, 조계산 주봉인 장군봉에 올라가 절을 내려다보니 ‘아뿔싸! 아궁이 터에 사찰을 지었구나.’하고 깜짝 놀랐기 때문이다. 오죽 다급했으면 절터의 불기운을 누르기 위해서 장군봉에서 흘러온 물이 모이는 곳에 삼인당을 만들고 절의 이름도 해천사(海川寺)로 고쳤을까. 옛적에 절까지 바닷물이 들어 왔기에 이름을 지었다는 해천사, 삼인당, 조계산 장군봉의 풍수지리를 통해 선암사를 화마로부터 지키려했던 도선국사의 고뇌를 엿볼 수 있었다.
삼인당을 지나면 종묘에서나 있을 법한 하마비(下馬碑)가 차밭과 편백나무 숲 앞에 서있다. 정조임금이 후사가 없자 선암사 원통전과 대각암에서 백일기도를 올려 순조임금을 낳았기 때문에 그곳을 지나는 모든 사람들은 말에서 내려서 걸어가라는 의미로 하마비를 세웠다. 하지만 힘깨나 있는 신도들은 이를 아랑곳하지 않고 승용차로 씽씽 달려가고 있다. 나는 그곳에서 불심을 통해 종묘사직을 보존하려했던 그 마음을 헤아리며 옷깃을 여몄다.
선암사 일주문은 대처승의 절집이어서인지 여느 사찰과 달리 기둥 주위에 흙 담이 연결된 독특한 모습이다. 일주문 앞면에는 조계산 선암사, 뒷면에는 고 청량산 해천사(古 淸凉山 海川寺)라는 현판이 걸려있어 과거와 현재의 사찰과 산 이름이 공존하고 있다. 선암사는 호남정맥 조계산 장군봉에 있는 배맨바위[船岩]에 배를 맸다는 설과 신선이 그 바위[仙岩]에서 바둑을 두었다는 전설에서 비롯됐다. 조계산은 선종의 기둥인 육조(6祖) 혜능스님이 머물렀던 보림사(寶林寺)가 있는 중국 광동성의 산에서 따왔다. 조계산의 옛 이름인 청량산도 중국 산서성에 있는 문수보살이 산다는 산에서 취했다. 이를테면 문수보살은 신선불(神仙佛)이라 하니 청량산 선암사를 의미하는 성싶다. 세 번째로 몸과 마음을 추스르는 관문이다.
사찰의 문은 부처님세계로 들어가는 문으로서 이승과 극락정토를 구분하는 곳이다. 사바세계에서 불국정토로 들어가려면 산문, 일주문, 사천왕문을 반드시 거쳐야 한다. 그런데 선암사에는 인간의 선악을 관찰하고 수행자들을 올바른 길로 인도하며 불법을 수호하는 사천왕상을 모신 사천왕문을 찾을 수 없다. 조계산 장군봉이 선암사를 지켜주기 때문에 불법의 호법신인 사천왕상을 굳이 만들 필요가 없었다고 한다. 그러나 선암사는 유난히 화재가 많았고, 57년간 조계종과 태고종 간에 갈등을 빚었다. 작은 원숭이 석상 하나가 사천왕상을 대신해서 사찰의 액을 쫓는 영물 노릇을 하지만 혼자서는 너무 힘겨웠을 것이다.
수 백 년은 됐을 법한 달마수각(達磨水閣)은 다른 절에서는 쉽게 볼 수 없다. 그러기에 선암사를 우리민족의 전통문화가 살아있는 곳이라 한 것이다. 칠전선원 뒤의 야생차밭을 가로질러 땅속으로 흘러온 물이 대롱을 타고 네 개의 돌확으로 연결된 것이 무척 특이하다. 맨 위의 큰 사각형 돌확의 물은 상탕(上湯)으로 부처님께 올리는 청수나 차 끊이는 물로 쓰인다. 두 번째 타원형의 돌확 물은 중탕(中湯)으로 스님과 대중의 음용수요, 세 번째 큰 원형의 돌확의 하탕(下湯)은 밥 짓는 물이며, 네 번째 작은 원형의 물은 허드렛물로 사용된다. 하지만 아래로 흐를수록 돌확의 모양도 부드러웠고 물도 더 맑아 보였다. 우리 선조들은 물 하나에도 이렇게 쓰임의 의미를 달리했던 것이다. 네 개의 돌확에 비친 내 얼굴은 사각형, 타원형, 원형으로 변했다. 아마도 내 마음을 더 추스르고 더 맑게 씻으라는 부처님의 계시인 성싶다.
해우소는 몸속의 오염된 찌꺼기들을 배출하며 삶의 의미를 깨닫는 곳이다. 정호승 시인의 <눈물이 나거든 기차를 타라>라는 시를 적은 목판이 눈길을 끌었다. 황지혜 작가는 '생명의 환원과 비움'이라는 원예정원디자인으로 재구성한 ‘해우소 가는 길’이라는 작품으로 180년 전통에 빛나는 영국 첼시플라워 쇼에서 영예의 최고상을 수상하였다. 정호승 시인은 해우소를 ‘깨달음을 얻는 공간’으로, 황지혜 작가는 ‘생명의 환원과 비움’의 우리 전통문화를 각인시켜 주고 있다.
선암사의 백미는 아무래도 홍매화와 백매화가 어우러진 꽃 축제가 아닐까 싶다. 휘영청 늘어져 연못에 가지를 드리우고 목마름을 달래는 우리의 토종벚꽃, 그리고 원통전 뒤란에 620여년을 살아온 홍매화가 흐드러지게 꽃을 피우면, 이에 뒤질세라 무우전 옆길의 200년쯤 됨직한 백매화가 두 줄로 늘어서서 꽃 잔치를 벌인다. 작년 초봄, 전주의 산꾼들과 선암사 홍매화축제에서 찻잔에 홍매화와 백매화 꽃잎을 띄우며 매화 향과 다향에 취하던 때가 너무 그립다. 지난 5월 중순, 전북수필과비평문학회 이만호 문우의 주선으로 전각스님과 선암사를 샅샅이 돌아보며 정담을 나누던 일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선암사를 찾을 때마다 그 자리에 묵묵히 서서 때 묻지 않은 속살을 드러내는 매화는 몸과 마음을 더 깨끗이 씻고 삶의 의미를 깨달으라고 나를 채근하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