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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뒷사람 겁니다 / 장영희

장대명화 2011. 5. 13. 03:06

 

                 내 뒷사람 겁니다 / 장 영 희

 

 어김없이 세월의 수레바퀴는 다시 한 번 돌아서 이제 이틀 후면 2006년이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정해년 새해를 맞이한다.

 1년 전 혹시나 하고 시작한 해였지만 다시 한번 역시나로 끝나 회한이 앞선다.

 혹시 새해에는 정치권이 조금 잠잠해질까, 혹시 새해에는 나도 집을 살 수 있을까, 혹시 새해엔 행운이 무더기로 쏟아지지 않을까,

 백마 탄 왕자가 나타나지 않을까…수많은 기대로 시작했지만, 정치권도 부동산정책도, 그리고 나 개인도 실패와  실수를 거듭하고 다시 역시나로 끝나는 해이다.

 

 하지만 참 이상하다. 사실 따지고 보면 어제와 다를 것 없는 똑같은 하루의 시작이지만 그래도 새해 새날은 새로운 희망을 준다.

 ‘새해’의 ‘새’자는 우리에게 다시 꿈꿀 수 있는 자격을 부여하기 때문이다.

 이제까지의 잘못을 모두 없던 일로 돌리고 다시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은 넉넉함, 이 세상의 모든 소망을 다 가져도 될 것 같은 부유함, 그리고 앞으로 1년이라는 시간이 공짜로 주어진 듯, 모든 소망을 내가 다 성취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을 만끽할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다.

 

 새해 새 희망 품는 넉넉함처럼 어제 미국 친구에게서 온 메시지에는 ‘새해를 준비하는 마음’이라는 진 켄워드의 시가 적혀 있었다.

 “낡은 것들은 노래하는 마음으로 뒤로 하고/ 옳은 사람들은 기억하고 그릇된 사람들은 용서하고/ 지나가 버린 시간에 당신을 묶어 놓는 후회들은 다 잊어버리고/ 가치 없는 것들에 집착한 나날들은 미련 없이 내어놓고/ 용기 있게 진정한 목적의식으로 앞을 향하고/ 새해가 펼치는 미지의 임무를 향해 가며/ 이웃의 짐을 나누어 들고 함께 길을 찾고/ 당신의 작은 재능이라도 이 세상을 응원하는 데 보태는 것/ 그게 바로 새해 복을 받고 복을 주는 겁니다.”

 이 중에서 마지막 부분 ‘당신의 작은 재능이라도 이 세상을 응원하는 데 보태는 것’,

 그게 복을 받고, 또 남에게 복을 주는 길이라는 말이 새삼스럽다.

 

 사실 위대한 사람들이 위대한 재능과 권력으로 모든 것을 좌지우지하는 세상에 우리 같은 보통 사람이 보잘것없는 재능으로 무엇을 해 보았자 표시도 안 나고 알아주는 사람도 없지만, 시인은 바로 그게 새해 복을 받는 길이라고 말한다.

 

 샌프란시스코에는 다리가 많은데 샌프란시스코 시내에 직장을 둔 사람이 차를 타고 다리를 건널 때 1달러가량의 통행료를 내야 한다.

 가끔씩, 크리스마스나 추수감사절 같은 명절날, 어떤 때는 무슨 특별한 날이 아닌데 재미있는 일이 벌어진다고 한다.

 톨게이트에서 어떤 기분 좋은 운전자가 2달러를 내면서 “내 뒷사람 것까지요” 하고 가면 징수원이 뒤차 운전자에게

 “앞차가 내고 갔어요”라고 말한다.

 뒤차 운전자는 자신이 준비했던 1달러를 내면서 “그럼 이건 내 뒷사람 겁니다”라고 말한다. 그래서 때로는 하루 종일 “내 뒷사람 겁니다”가 이어진다는 것이다.

 한 사람이 시작한 선의가 릴레이식으로 다음 사람에게 전달되고, 똑같이 1달러를 내면서도 꼭 내야 하는 통행세가 아니라 내가 주는 선의의 표시가 되고, 그래서 “내 뒷사람 겁니다”라고 말하는 사람마다 얼굴에 밝은 미소를 짓는다는 말이었다.

 

 ‘작은 재능이라도 이 세상을 응원하는 데 보태는 것’은 이런 걸 말하는 게 아닌지 모르겠다.

 권력 많은 사람이 큰 목소리로 쉴 새 없이 떠들어 대고 돈 많은 사람은 돈 때문에 이런저런 말썽에 휩싸여 온 나라가 시끌벅적하지만, 우리는 우리의 작은 재능으로 선의의 릴레이를 만들면서 세상을 응원하는 것, 그게 내 복을 챙기는 길인지 모른다.

‘ 선의 릴레이’로 세상을 응원하자

 

 내년 이맘때쯤 지금같이 ‘혹시나’ 했더니 ‘역시나’가 되었다고 말한다 해도 상관없다.

 새해에는 새해의 태양이 뜨고, 우리에겐 세상의 모든 소망을 다 가질 수 있는 무한권한이 있다.

 정치권이 잠잠하리라는 바람은 아예 접어둔다 쳐도, 또다시 소망해 본다.

 집 안 사고 기다렸으니 혹시 새해엔 집을 살 수 있을까, 혹시 행운이 무더기로 쏟아질까, 혹시 백마 탄 왕자가 나타날까…. 동아일보 독자 여러분, 새해에도 여러분의 재능으로 이 세상 많이 응원하시고 큰 복 받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