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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의 완성 / 이 상 수

장대명화 2025. 6. 23. 23:33

                                                   초록의 완성 / 이 상 수

 

산수유 꽃눈이 초록 왕관을 쓰고 있다. 팥배나무 종아리에 물이 오르고 붓순나무가 엷은 기지개를 켠다. 겨우내 칩거를 끝낸 연둣빛 은자들이 눈을 뜨는 시간. 차가운 침묵으로 버티던 얼음은 수런대는 소리에 스스로 봉인을 풀고, 위세를 떨치던 동장군도 산골짜기로 흰 꼬리를 감춘다. 새가 알을 깨고 나오듯 가만히 한 세계가 열린다.

 

삼월의 숲속을 거닐다 보면 초록은 피는 것이 아니라 번지는 것이라는 걸 알게 된다. 화선지 같은 등성이마다 발묵하듯 천천히 제 존재를 넓혀나간다. 양지에서 음지로, 산 아래에서 등성이로 차곡차곡 봄을 채색하고 상심한 골짜기를 메운다. 보이지 않는 뿌리론 찰진 흙을 삼키며 아찔한 향기를 공중에 흩뿌리며.

 

비제 ‘아를르의 여인’을 들으면 플루트, 여섯 개의 구멍마다 투명한 새싹이 돋는다. 얕으면서 깊고, 좁은 듯 넓으며, 낮은 듯 높은음은 끊어질 듯 이어진다. 종달새 소리 같기도 하고 개울물 소리 같기도 한 미뉴에트는 모음곡 중 가장 청아하고 아름다운 곡이다. 그럴 때 플루트는 한 번도 가보지 못한 프로방스 지방의 아름다운 봄날 속으로 나를 데려간다.

 

초록은 공감각적이다. 떨어지는 빗방울을 텀블링하듯 경쾌하게 튕겨낸다. 낮이면 햇살 목욕을 하고 밤엔 달빛으로 마사지를 한다. 손금 같은 잎맥도 이때쯤 그어져 여신 티케는 희고 가느다란 손으로 그의 운명을 결정한다. 물고기 뼈 같은 빗살무늬엔 오롯이 한 생이 새겨진다. 가끔 굵고 가느다란 선 위로 구름이 흘러가고 바람이 무늬를 남기기도 한다. 방랑과 정착, 격정과 고요 사이에서 잠시 갈등을 겪지만 이내 평상심으로 돌아오고 마는 것은 삶을 응시하는 그만의 특성 때문이다.

 

고흐가 노랑의 천재라면 세잔은 초록의 화가로 불린다. 그의 수욕도 연작에는 어김없이 나무들이 등장한다. 마치 수액으로 목욕을 하는 듯하다. 초록은 세잔에서 시작되고 세잔에서 완성된다. 피카소는 세잔의 수욕도를 본떠 아비뇽의 처녀들을 그렸다 한다. 신이 세상에 내려준 최초의 색은 초록이 아니었을까. 자연을 상징하는 원초적인 색, 이것은 인류의 먼 조상이기도 하다.

 

초록에 대한 세상의 평가는 다양하다. 칸딘스키는 ‘움직임이 없는 특성 때문에 휴식의 시간이 지나면 쉽게 싫증’날 수 있다 했고, 에바 헬러는 ‘전혀 움직이지 않고 누워있는 뚱뚱한 소’라고 날 선 공격을 퍼부었다. 셰익스피어는 ‘질투는 초록색 눈을 가지고 있다’며 심리학적 접근을 했다. 하지만 그는 어떤 변명이나 대꾸도 하지 않는다. 왜냐면 초록은 그냥 초록이기 때문이다.

 

풋풋한 새내기 시절, 캠퍼스에서 그를 만났다. 이제 막 이파리를 매단 마로니에 가로수길 사이로 운명처럼 한 남자가 걸어왔다. 좌절과 시대의 우울과 불확실한 미래를 안고. 잔디밭에서, 도서관에서, 막걸릿집에서, 때론 자취방 앞에서 우린 서로에게 몰입했다. 정치적인 상황이 좋지 않았다. 길거리엔 최루탄이 난무했고 그는 서둘러 입대를 했다. 다시 캠퍼스에 나타났을 때 나는 사회의 거친 풍랑을 만나 표류하는 중이었다. 그는 무지개 저쪽 이상을 좇았고 나는 현실에 분주했다. 마로니에 이파리가 우거질 때 우리는 더 이상 서로를 그리워하지 않게 되었다.

 

초록은 동색이지만 개성 없이 복제된 청춘이 아니다. 파랑과 노랑의 비율에 따라 청록이나 황록, 암록으로 구분하듯 가장 폭넓은 스펙트럼을 가진다. 연못 위로 삼삼오오 떠다니는 개구리밥과 바위 위를 수놓는 애기솔이끼가 같을 수는 없다. 파랑과 노랑을 섞으면 발현되는 색이지만 어느 한쪽에 예속되지 않는다. 초록은 인공의 반대, 문명에 대한 거부를 나타낸다. 메마르고 딱딱한 것과 대조를 이룬다. 차가운 회색의 도시인들은 초록을 신처럼 경배한다.

 

초록은 양면성을 가진다. 상황에 따라 다양한 변주를 한다. 한하운은 보리피리를 불며 돌아가지 못하는 고향을 떠올렸다. 보리밭에는 해맑은 그의 영혼과 황톳빛 밭둑이 어우러진다. 애니메이션 영화 에픽 <숲속의 전설>에서 초록은 숲의 정령으로 등장한다. 숲을 파괴하려는 거대한 세력과 용감하게 맞서 싸워 이를 지켜낸다. 그럴 때 초록은 단호하다. 화면은 시종일관 초록으로 가득 채워진다. 이처럼 초록은 깊은 영혼의 울림을 가지는 현자이면서 불의에 맞서 싸우는 전사가 되기도 한다.

 

갓 뜯어온 풋나물로 겉절이를 한다. 봄동이며, 유채, 풋마늘을 고춧가루와 식초, 참기름을 넣고 버무리면 알싸한 냄새가 코끝을 찌른다. 살짝 데친 두릅순이며 머위잎도 곁에 놓는다. 겨울 풍상을 이겨낸 봄동은 상큼하고 유채는 약간 아릿하다. 어린 두릅순의 첫맛은 달짝지근하고 머위 잎은 씁쓰름하지만 은은한 향기가 입안에 오래 남는다. 어떤 이파리는 태만한 삶을 깨우고 어떤 것은 살신성인 약이 되어준다. 초록을 싸서 한입 가득 넣는 친구의 입가에 봄이 묻어난다.

 

초록은 마중물이다. 계절의 밑바닥까지 저를 내려보내 마침내 신록을 길어 올린다. 겸양지덕의 자세는 언제나 타인지향적이다. 인내한 자의 영광을 스스럼없이 열매에게 양보한다. 저라고 왜 화려한 주연이 되고 싶은 적이 없었을까. 갈채와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무대에 서고 싶은 적은 또 없었을까. 그러나 그는 자신의 경계를 결코 넘어서는 법이 없다. 중심을 탐하거나 과욕을 부리지 않는다. 지지불욕 지지불태(知足不辱 知止不殆), 만족할 줄 알면 욕되지 않고 그만둘 줄 알면 위태롭지 않다는 노자의 말을 가장 잘 실천하는 종족이다.

 

봄의 막이 내리면 초록은 일말의 주저도 없이 무대를 떠난다. 자신에게 주어진 생을 빈틈없이 채운 후 단 하나의 박수갈채도 없이 퇴장한다. 늙어가는 모습을 대중에게 보여줄 수 없다며 인기절정에 은퇴한 배우 그레타 가르보처럼. ‘가야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아름답다’는 시는 그를 위해 바쳐진 헌시다. 하지만 에메랄드 반짝이는 레이디 엘리엇 섬, 달빛 아래에서 바라보는 페리도트 보석, 청머리앵무새의 꼬리깃털에서 초록은 영원히 살아있다.

 

오월, 회화나무 그늘 속에서 소쩍새가 울 때 초록은 마침내 자신을 완성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