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매수필

시인과 나무 / 김대규

장대명화 2011. 3. 3. 03:48

 

                                                                            시인과 나무 / 김대규

 

 한 시인이 있었습니다. 시인의 집에는 오래된 나무 한 그루가 있었습니다.

 

시인은 아침에 일어나면 나무에게 "잘 잤니?" 하고 인사를 합니다. 그러면 나무는 그렇다는 듯 잎을 팔랑입니다. 집을 나설 때는 "나갔다 올 테니 집을 잘 보거라" 하고 당부를 합니다. 나무는 맘 놓고 다녀오라고 가지를 흔듭니다. 시인은 다른 가족이 없었습니다.

 

 어쩌다 좀 늦는 날이면 시인은 "아무 일도 없었니? 너 혼자 심심했지?" 하면서 나무를 어루만져줍니다. 그런 날이면 나무는 할 이야기가 참 많았습니다. 전화벨이 한 차례 울렸다는 것, 집배원이 그냥 지나갔다는 것, 아이들이 날리며 놀던 종이비행기가 담 너머로 날아왔다는 것, 갑작스런 소나기로 새들이 몰려들었다는 것…. 그러나 시인은 잠시 앉았다가 "잘 자거라" 하고 안으로 들어갑니다.

 

  그러던 어느 날 시인은 밤늦게 몹시 취해서 돌아왔습니다. 여느 때와는 달리 인사도 없이 나갔기 때문에 나무는 걱정이 많았습니다.

 

  시인은 나무 밑에 앉아 한참 동안을 흐느꼈습니다. 나무가 아무리 말을 해보라고 재촉했지만, 시인은 알아듣질 못했습니다. 그리고는 서서히 일어서면서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나무야, 살아가기가 정말 힘이 드는구나!"

 

  시인은 힘없이 방으로 들어갔습니다. 나무는 너무 안쓰러워 온 힘을 다해 위로의 말을 해주려고 애를 썼습니다. 어찌나 힘을 썼던지 가지 끝마다 달린 꽃망울의 껍질이 터질 지경이었습니다.

 

  이튿날 시인은 아주 늦게 일어나 창문을 열었습니다. 나무를 보던 시인의 맥빠진 얼굴빛이 환해지기 시작했습니다. 나무가 온통 꽃으로 뒤덮혀 있던 것이었습니다.

 

 그제서야 시인은 그 꽃들이 자신을 위로해주기 위한 나무의 말이었음을 알아차렸던 것입니다. 나무의 말을 알아듣기에 참 오랜 세월이 걸렸습니다. 시인은 뛰어나가 나무를 껴안았습니다.

 

  나무는 참 행복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