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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쟁이 / 박 금 아

장대명화 2025. 4. 8. 01:01

                                           담쟁이 / 박 금 아

 

따개비 지붕을 한 가게들이 어깨를 겯고 있다.

 

신림동 6동 시장.

 

입구에서부터 일백여 미터 이어지는 골목시장은 양옆으로 가게를 끼고 냇물처럼 흐르다가 이따금 오른편 상가들 사이로 흘러들어 작은 골목을 만들고, 작은 골목은 또 넘쳐 큰 골목으로 흘러나와 합류하기를 반복한다.

 

작은 골목들은 큰 골목이 낳은 일란성 쌍둥이 같다. 나란히 선 집들은 지붕마다에 굴뚝을 세우고서 옆구리에는 사시사철 죽부인처럼 생긴 LPG 가스통을 끼고 있다. 큰 골목으로 이어지는 어귀마다에는 난전이 있는 것도 꼭 닮았다.

 

노점 구경을 좋아하는 나는 상점 물건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 시퍼런 겨울 바닷물색 앞치마를 두르고 "싱싱한 횟감이요!" 를 외치는 목포상회에서 조기와 가재미 몇 마리를 사고 주욱 길을 오른다. 중간 쯤에 이르러 시장에서 제일 큰 대성마트에 들러 공산품들을 주문하고 나오면 그때부터는 산동네로 난 시장길을 따라 오르며 장바닥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노점에 놓인 물건이래야 비둘기가 물고 가다 떨어뜨린 모이 같다. 그나마 검정 비닐 봉지에 싸여 오므리고 있어서 눈길을 보내 상인이 펼쳐 보여야 그 속을 아는 정도다. 길바닥에 작은 화분 몇 개를 놓고 파는, 내가 ‘패랭이꽃’이라고 부르는 짧은 파마머리 여자를 지나면 파란 비닐 위에 돌미나리와 부추, 상추 등 푸성귀를 놓고 언제나 “오늘 아침에 캐서 가지고 왔다."고 소리치는 ‘더펄이 아줌마’를 만난다. 사시사철 공중에 여자 속옷을 내걸고 있는 메리야쓰 가게를 지나고, 한 켤레 5,000원이라고 붙인 신발가게를 지나면 오른쪽으로 담벼락을 타고 담쟁이가 자라는 작은 골목이 나온다.

 

골목 입구에는 생닭과 닭똥집이 든 작은 저온저장고 하나가 놓여 있고, 그 아래 장바닥엔 녹두와 찹쌀, 황기, 엄나무 등 삼계탕에 필요한 재료들이 간조롱하다. 발길을 멈추고 잠시 살피면 동그란 통나무 도마 뒤에 할머니 한 분이 멀찍이 앉아 소녀처럼 온화한 미소를 짓고 있다. 시장 사람들이 ‘토종닭집 할머니’라고 부르는 그 할머니는 16년 전 내가 처음 보았을 때도 그 모습이었다.

 

햇빛 한 자락 들지 않는 어둑한 자리, 그 언틀먼틀한 시장 바닥에서 시린 한뎃바람을 받아내면서도 사시사철 피어나는 걸 보면 한순간도 멈추지 않고 가풀막을 오르는 담쟁이가 떠오른다. 봄날의 할머니는 이제 막 잎새를 돋우며 담벼락을 오르는 연둣빛 새순이었다가, 복날쯤이면 진초록으로 일렁인다. 쥐구멍에 반짝 볕 든 며칠이 지나면 이내 불어온 강쇠바람에 이파리를 붉게 물들인다. 그도 잠시, 낙목한풍(落木寒風) 한 자락이면 속수무책. 붙들었던 것 다 떨구고 맨손으로 시린 벽을 움켜쥐고서 삼동설한을 앙버틴다.

 

겨울이 깊어 사람들의 발길이 뜸해지면 좀체 의자에서 몸을 일으키는 일이 없다. 깡마른 등줄기를 꼿꼿이 붙이고서 허공에 눈동자를 고정한 채로 있다. 그런 때 할머니는 까맣게 익어 담벼락에 달라붙은 담쟁이 열매 같다. 어쩌다 닭을 사러 오면 의자에서 일어나 저장고에서 닭을 꺼내어 들고 해사하게 웃으며 묻는다. “도리탕을 하실래요? 죽을 끓이실래요?” 닭볶음탕을 만들 거라는 말에 도마에 닭을 올려놓고 내리치면 작고 앙상한 손은 도끼처럼 생긴 큰 칼을 놓쳐버릴 것만 같다. 토종닭 한 마리도 들기 버거울 듯한 할머니에게 볶음탕용으로 손질해 달라고 주문할 때는 왠지 미안한 생각이 든다.

 

무심코 걷다가는 닭집을 지나치기 십상이다. 어둑진 데다가 골목 안으로 들어가 있어서다. 시장 쪽으로 조금 나와서 앉으라고 해도 가게 세 내고 장사하는 사람들하고 같은 자리를 넘보면 되겠느냐며 손을 저을 때는 눈동자가 닦은 방울 같다.

 

할머니는 두 아들이 초등학교에 들어가기도 전에 난전으로 나왔다. 남편을 잃고 막막했을 때 이웃이 권했다. 첫날, 함지에 닭 세 마리를 담아 보따리에 싸서 이고 집을 나섰을 때는 걸음이 안 떼어지더란다. 장바닥까지 왔지만 꺼내 놓지를 못했다. 가게 주인들이 자신의 상점 앞에서 팔아도 된다고 했지만, 숨어든 곳이 지금의 자리다. 골목 귀퉁이에서야 닭을 꺼낼 수 있었다. 그러나 부끄러워 얼굴을 들지 못하고 바닥에 놓인 닭만 쳐다보았단다.

 

할머니는 그때나 지금이나 자신을 숨겨주는 골목이 고맙기만 하다. 마흔 해가 지나는 동안 다른 자리를 꿈꾸어 본 적이라곤 없다. 매나니로 시작했지만, 닭을 팔아 번 돈으로 아들 둘을 대학까지 보내고 그 배움으로 밥벌이까지 할 수 있게 키운 자리인데 어찌 떠날 수 있겠냐며 선하게 웃는다.

 

한파가 몰아친 정초(正初) 어느 늦저녁이었다. 외출했다가 버스를 타고 오는데 닭죽 생각이 났다. 토종닭 한 마리 사다가 끓일 생각으로 6동 시장에서 내렸다. 파장한 듯 가게들은 거의 셔터가 내려져 있었다. 저 멀리에서 대성마트만 환했다. 그 너머로는 불빛이라곤 없었으니, 닭집 할머니도 있을 리 없었다. 대성마트에서 살 생각으로 가다 보니 마트 위쪽, 닭집 할머니가 앉는 골목께에서 담쟁이 한 장이 흔들리고 있었다. 누군가를 부르는 손짓 같아 호기심이 일었다. 대성마트를 지나쳐 골목 귀퉁이에 서니 어둑하여 선득한 느낌마저 들었다. 컴컴한 어둠 속에서 토종닭집 할머니가 정물처럼 앉아 있었다. 닭을 사러 왔다는 말에 의자에서 몸을 일으킬 때까지 할머니는 액자 속에 담긴 사진처럼 고요했다. 담벼락 아래 언 땅에 겨울 담쟁이가 뿌리를 내릴 때처럼.

 

할머니는 새해 인사를 온 며느리들에게 두어 마리씩 들려 보내고 한 마리가 남았는데 팔아주어서 고맙다며 장바닥에 놓인 물건들을 담았다. 닭 한 마리를 팔기 위해 얼마나 오랜 시간을 컴컴한 침묵 속에서 보냈을까 생각하는 사이, 어느새 길바닥에 놓인 물건들을 갈무리했다. 할머니는 나와 반대방향이었다. 잘 가라 손을 흔들며 산동네로 향했다. 한 발짝 한 발짝 장바닥을 내딛는 걸음이 꼭꼭 발자국을 찍으며 강파른 시멘트벽을 오르는 담쟁이 흡반(吸盤) 같았다.

 

또 한바탕 바람이 불어왔다. 6동 시장 골목 벽에 매달린 담쟁이넝쿨 위로 음력 섣달의 칼바람이 지나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