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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영혼

장대명화 2011. 2. 20. 20:48

 

  사랑과 영혼

 

 내가 지방병원에서 인턴으로 근무할 때 이야기다.

공사장에서 추락 사고로 뇌를 다친 28살의 한 젊은이가 응급실로 실려왔다. 이미 의식을 잃었고, 얼굴과 머리는 심하게 손상되어 원래 모습을 알아볼 수가 없었다. 서둘러 최대한의 응급조치를 했으나 살 가망은 거의 없어보였다.

 식물인간이 된 상태나 마찬가지인 그가 호흡기를 달고 중환자실에 누워있는 그날 아침, 나는 심전도를 체크하는 기계 쪽으로 시선을 돌리다 문득 가슴이 무거워졌다. 규칙적이고도 정상적인 심장 박동을 나타내던 심전도 곡선이 갑자기 웨이브 파동으로 바뀌었고, 점차 약해져가고 있어 곧 죽음이 가까이 오고 있음을 직감할 수 있었던 것이다. 보통 이런 심전도 곡선이 나타난 후에는 10분 이상 살아있기가 어렵기 때문에 나는 서둘러 가족들에게 환자가 운명할 때가 되었으니 와서 지켜보라고 일렀다.

 그런데 다른 한자를 보고 잠시 후 그 중환자실을 지나면서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1시간이 지났는데도 그의 심장 박동이 느린 웨이브 파동(ECG)을 그리면서 살아있는 것이었다. 나는 순간 신기한 일도 다 있구나 하고 생각했지만 곧 쏟아지는 응급 환자들을 돌보느라 더 이상은 그를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응급실은 거의 매일이 전장의 야전병원 같은 분위기였다. 피곤한 몸을 이끌고 자는 둥 마는 둥 그날 밤을 보낸 후 다음날 아침, 무심코 중환자실에 들렀는데 그때까지도 그가 살아있었다.. 더없이 나약하지만 끊이지 않는 ECG곡선을 그리며 그의 영혼은 여전히 그의 몸을 떠나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또 하루가 지나고 나는 알 수 없는 영감에 쌓여 다시 중환자실에 들렀다. 심전도를 나타내는 모니터 화면이 나의 예사롭지 않은 느낌을 뒷받침해주고 있다고 느낄 때 갑자기 한 젊은 여인이 중환자실로 들어섰다. 이제까지 보호자 중에는 없었는데, 아마 멀리서 갑작스런 연락을 받고 급하게 온 듯 했다.

 여인은 마치 넋이 나간 사람처럼 제대로 환자를 쳐다보지도 못하고 곧 쓰러질 듯 창백한 얼굴로 서 있었다. 나는 그의 곁으로 가까이 다가갈 수 있도록 옆으로 비켜주었다. 젊은 여인은 말없이 눈물을 흘리며 가까스로 침대 옆에 섰다. 바로 그 순간, 갑자기 그의 심전도 파동이 심하게 흔들리더니 딱 멈추고 말았다. 모니터 화면에서 끊임없이 지속되던 웨이브 파동이 한순간 사라지고 마치 전원이 꺼진 것 같은 한줄기 직선만이 화면에 나타나 있었다. 이틀간 미약하게나마 뛰어왔던 그의 심장이 바로 그때 멈춘 것이다.

 내 가슴은 순간 서늘해지면서 웬지모를 감동에 휩싸여 중환자실을 나왔다. 그의 임종 소식을 전하고 나는 보호자 중의 한 사람에게 방금 온 그녀가 누구인지 물어보았다.

 결혼한 지 3개월 된 그의 부인이었고 임신중이라고 했다. 다음 순간 내가 해야 할 행동이 무엇인지를 깨달았다. 그녀가 나오기를 기다렸다가 나는 그녀에게 다가가 말했다. 세상을 떠나기 전에 당신과 뱃속의 아기를 만나기 위해 그가 얼마나 오랫동안 죽음과 삶의 경계에서 사투를 벌이며 기다렸는지, 얼마나 힘겹고 가슴아픈 영혼의 기다림이었는지를. 그리고 그것은 부인과 그의 아기에게 전하는 그의 이 세상 마지막 메시지라는 것을….

 오열을 참으며 듣고 있던 그녀의 눈에 피눈물 같은 액체가 솟구쳤고, 나는 순간 내 가족이 일을 당한 것처럼 가슴이 떨렸다. 애절하고 아름다운 사랑을 간직한 한 영혼이 바로 우리 곁을 떠나는 순간이었고, 냉정하려 애쓴 나 자신이 사랑의 힘과 영혼의 존재를 믿게 한 잊을 수 없는 경험이었다.

 

 

                                                            영동 목요신문 감고을 에세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