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천우수 수필

단상 / 김상주

장대명화 2011. 2. 19. 08:44

 

                   단 상 / 김상주

 

  1. 그리움

 그리움이란 무엇일까요? 메아리의 후손인 양 한마디의 말도 못 건네는 것을. 아니, 왜 못 하여야만 하나요? 보고싶은 얼굴, 그렇게 그리운 얼굴도 만나면 기쁨도 감격도 얼어버리고, 덧없이 보고만 있어야 하는 것은 웬 일일까요? 얼마나 신통한 독심안(讀心眼)을 가졌기에 마음을 알아보며, 얼마나 예리한 눈을 가졌기에 감정을 주입할 것입니까? 그녀의 순간적 감정에 좌우되는 것은 내 감정의 집착이 상실된 탓일까요? 그러나 이 모든 것은 지나친 그리움에 병적 과민이랄 수밖에 없습니다. 하기에 언어엔 어눌하고 눈엔 미진하니, 편협한 마음은 사랑을 그저 옹졸하게 만들 따름입니다. 옹졸함이란, 애정지수에 반비례하기에 오늘 밤, 그대 생각에 잠 못 이룹니다.

 

   2. 연인(戀人)

 그대의 반짝이는 커다란 두 눈이 심연처럼 맑고 빛나면, 나의 마음은 거울처럼 밝아옵니다. 당신의 빨간 앵두 같은 입술이 오물거리면, 나의 마음은 언제나 새콤한 과일의 뒷맛처럼 달콤해 옵니다. 당신의 보드라운 두 볼이 복숭아 빛 곱게 물들면, 나의 마음은 새파란 잎새처럼 젊어옵니다. 당신의 까만 머리카락이 밤 물결처럼 출렁이면, 나의 마음은 전설 속의 귀공자처럼 꿈이 서립니다. 그대 귀여운 아가씨 내 곁에 영원히 있어준다면, 은방울 같은 그대 말소리 굳이 듣지 않아도 무슨 말인지 내게 들려옵니다. 그러나 그대의 사뿐한 낮은 발소리 요정처럼 다가오고, 너울거리는 옷자락 향기바람이 일면, 나의 마음은 옛날 용궁 이야기에 아련한 꿈을 깨고 맙니다. 그대 귀여운 나의 아가씨여.

 

  3. 당신

 내가 당신을 사랑한다는 것은 당신이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밤낮으로 당신을 그리워하는 것도 당신의 얼굴이 아직 내 눈동자에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오랫동안 헤어져 있을수록 그리움의 정이 더해간다는 것은, 서글픈 향수(鄕愁)의 가락에 지나지 않습니다. 나의 사랑을 발견한 것은 당신의 모습을 보았을 때였으며, 당신의 모습을 다시 볼 때에 나는 당신에 대한 나의 사랑을 확인합니다. 사랑은 한낱 환영(幻影)이라고 믿음이 가지 않을 때에는, 나는 손을 내밀어 당신의 실체를 만져봅니다. 이것은 결코 사랑은 꿈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예민한 나의 촉감이 보드라운 당신을 느낄 때면 흐뭇한 체온이 교류됩니다. 나의 박동하는 혈맥은 당신에게 뻗어가고, 당신의 뜨거운 혈액은 나의 심장에 와 닿습니다. 우리가 우리를 날마다 느낄때, 우리의 애정은 깊어가고 인간의 밀어가 찬미됩니다. 내가 당신을 사랑할 수 있다는 것은 당신이란 실체의 대상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서로 믿을 수 있다는 것은, 우리가 서로 체온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내가 당신 없이 당신을 사랑할 수 없다는 것은, 당신이 나 없이 나를 사랑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당신도 나도 없다면 또한 우리의 사랑도 없을 것입니다.

 

 4, 연인에게

 눈앞에 아롱거리는 너의 모습, 눈뜨면 호수처럼 가득하고 눈감으면 더욱 뚜렷하구나. 몇 십 년을 두고 살아갈 것인가, 몇 년을 두고 살려고 보챌 것인가? 마음 속에 두고두고 서러워하며, 그저 안타까워 울고만 싶구나. 나 혼자만이 잊지 못할 사랑의 죄에, 나 혼자만이 간직한 사랑의 미래 때문에 -.

 너의 눈동자는 옥처럼 맑고, 너의 눈동자는 내 눈에 가득하구나. 너의 시선의 매력 속에 그리움만이 나의 마음을 어지럽게 하는구나. 마음의 방황은 항상 잊지 못할 젊은이의 낭만이기는 하나, 그 방황은 영원한 하늘의 뜬구름의 길과 같구나.

 바닷물은 견디지 못할 심장에 덮쳐 오르고, 파도는 애달프게 죄없는 해변을 원망한다. 바람이 불면 바람으로 마음을 달래고, 바람이 불면 바람에 내 마음을 호소한다. 그래도 마음이 풀리지 않으면 차라리 바람에 기원해 본다.

기원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라면, 기원도 필요가 없는 것이라면, 사랑의 비너스는 나를 외면함인가? 사랑은 증오의 시초인가? 그리운 이여, 나에게 축복을 주오! 구세주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5. 잃어버린 것

  길을 가다가 문득 생각이 나서 한쪽 주머니를 만져본다. 나의 소중한 것 하나가 없어졌다. 며칠 전에 되찾은 내 사랑. 그녀, 언제 어디서 다시 잃어버렸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알 수 없다. 어쩌면 알고 있기에 지금 찾아 헤매는 것인지 모른다. 그래, 나는 찾아야지. 암, 찾아야 하고말고. 나는 목 메이게 그녀의 이름을 불러본다. 그러나 대답이 없다. 형체도 메아리도 되돌아오지 않는다. 어디로 깄을까? 어디서 찾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찾을 길 없다. 저 푸른 산 아래 영롱한 무지개 보인다. 이번엔 꼭 그대 손잡고 무지개 찾아가야지 다짐하지만, 그녀는 찾을 길 없다. 진정 잃어버린 것일까? 어쩌면 형체 없는 허상을 나는 찾고 있는 것인지 모른다. 다른 주머니는 다음에 뒤져보자. 아니, 뒤져보지 말자. 어쩌면 잃어버린 것이 더 많을는지 모르기 때문이다. 두렵다.

 

 

  6. 사랑의 관성(慣性)

 내가 그대를 잊으려 하는 것은 그대를 잊을 수 없기 때문이며, 그래도 내가 그대를 잊지 못하는 것은 그대를 몹시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어쩌하여 그대가 나로부터 떠나려 하는지 나는 알 수 없어도, 어차피 우리가 헤어져야 한다면 헤어져야 함이 타당하겠지요. 그러나 사랑이란 밀고 당기는 서로의 게임이 아니던가요. 그러므로 그대가 나로부터 떠난다 하여도 나는 그것을 인정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나는 그대를 보내고 싶어도 보낼 수 없고, 잊으려 해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나라고 그대를 미워하는 마음이 없을 리야 있겠습니까 마는, 그래도 그대를 사랑할 수밖에 없는 것은 아직도 당신과 나 사이엔 태양과 지구처림 사랑의 관성이 작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